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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사 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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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사 55:1-9)
   
오늘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초청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누구든지 와서 복음의 혜택을 값없이 받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목마른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모든 목마른 자들을 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돈 드는 것이 아닙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어느 곳도 공짜로 들어오라는 곳은 없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값이 매겨져 있고, 돈을 주고 사야만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싼 가계라도, 다이소 상점에서 저렴한 물건을 팔아도 다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어느 곳에 들어가려고 하면 반드시 입장료를 내어야 들어갑니다. 시내에 있는 어떤 카페에 들어가서 냉수 한 대접 얻어 마시려 해도 공짜가 없습니다. 호텔이다, 콘도, 리조트 휴양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고급스럽게 꾸며놓고 편히 쉬고 즐기려면 비싼 돈을 내야 하는 멤버십을 가져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골프장, 콘도와 리조트에 자유롭게 다니고 싶습니까? 돈을 내면 됩니다. 멤버십을 가지고 있으면 자유 출입입니다. 돈을 냈기 때문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세상에 무이자 할부라는 것도 사실은 상술이고 이자 부분을 이미 원가에 반영해놓고 인심 좋게 깎아주는 것처럼 합니다. 주유소의 상술 중에 어느 곳은 10만 원 이상을 넣으면 한 5000원 정도 적립을 시켜주다가 그 돈이 쌓이면 현찰로 내주거나 적립된 돈으로 기름을 넣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니 휘발유 값이 가장 비싼 주유소였습니다. 가장 값이 저렴한 곳과 비교해보면 가득 넣으려면 15,000원 정도가 차이가 났습니다. 

돈을 적립시켜 주는 주유소는 다른 주유소보다 많이 받아 이윤도 남기고 또 올려 받아 또 남기고 그 중에서 아주 적은 금액을 돌려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돈을 돌려주는 곳도 있다고 좋아하였는데, 알고 보니 정말 나쁜 악덕상술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과 세상이 주는 일락으로 즐기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돈 쓰는 것으로 행복한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목적을 상실하면 오로지 돈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가진 것은 돈만 있다고 하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고 했습니다. 곡식을 많이 쌓아두고는 자기 영혼에게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고 살기를 바랍니까?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요, 물질만 풍족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목마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돈쓰는 재미에 빠진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서 행복을 찾고 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목마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의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사람도 목마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을 힘입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목마른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 자기의 의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궁핍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신세를 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는 썩 괜찮은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은혜를 사모하고 예수님의 덕을 보려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마음껏 이용하고 써먹으라고 하십니다. 도와주시기 위하여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다 내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사는 즐거움에 빠지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십니다.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멸망에 처할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3:19에서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거머리와 같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욕망과 목마름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월세 살던 사람은 전셋집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전셋집을 얻으러 돌아다니던 사람은 내 집을 장만하고 싶습니다. 20평에 사는 사람은 30평에 살고 싶고, 30평에 사는 사람은 40평, 50평에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무엇을 이루었나 하면 거기에 또 다른 갈증이 있습니다. 무엇을 차지했나 싶으면 아직도 빈공간이 자리가 많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물질이 해결되었다고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양식이 되지 않는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그 은을 귀하게 여기고 금을 아래로 여겼습니다.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은이라고 했습니다. 은을 달아준다는 말은 온갖 노력과 정성과 힘을 다 쏟아 붓는 것을 말 합니다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허망한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문제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지금 허약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건강합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신적인 성향은 세계가 알아주어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언젠가 강화도 선원사라는 절에서 소를 ‘우 보살님’이라 부른 적이 있답니다. ‘보살’이라고 하면 불교에서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강화도 선원사에서 기르는 소들이 여물을 먹으며 고개를 쳐들면서 음~메하는 하는 소리가 마치 묵직한 목탁소리처럼 들렸다 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소를 ‘우 보살님’이라고 하였고, 소에게 빌면 복을 받는다며 돈을 내고 그 앞에 복을 빌었습니다. 3마리의 소를 길렀는데, 다 보살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목탁소리를 내면서 ‘우보살’로 유명세를 탔던 소 3마리가 결국 구제역 파동을 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습니다. ‘우보살’과 ‘신우보살’, ‘광양우보살’ 등 소 3마리를 살처분하여 사찰 뒷산에 묻었다고 합니다. 무슨 우보살입니까? 

21세기 첨단 과학문명 시대에 살면서 바위나 산에 가면 촛불을 밝히고 비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습니다. 무지요, 어리석은 미신입니다. 이사야 당시 강대국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헛수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출세하는 일, 부귀영화를 꿈꾸며,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눈이 새빨갛습니다. 올인(All In)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을 ‘올인’이라고 합니다. 도박판에서 테이블 위에 있는 돈을 모두 배팅한다고 하는 말인데, 저는 그런 도박에 올인하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지만, 도박에 미치면 자신이 가진 패를 보고는 올인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올인하는 것만 확실한 보장이 있구요, 세상에 올인한다고 하여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출신인 사진작가인 크리스 조던((Chris Jordan/미국,1963~)은 알바트로스 새와 기러기들이 플라스틱을 주워 먹고 폐사하여 죽은 모습에서 시체는 부패하고 남은 플라스틱을 대조하면서 인간의 우매함을 꾸짖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영상도 있습니다. 미드웨이 새사진을 몇 장 보겠습니다.)

KBS에서는 북태평양의 한 중간에 있는 미국령 미드웨이섬(Midway Atoll)에서 소리 없이 벌어지는 비극을 소개했습니다. 죽은 아기 새들의 배를 갈랐더니 인간들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으로 가득했습니다. 어미 새는 먹이인줄 알고 갖다 먹였지만 아기 새는 뱃속에 찬 플라스틱 때문에 질식 혹은 중독되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그 섬에는 주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모이는데 그 절반이 일본에서 흘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섬에 들어온 쓰레기가 해류 때문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잘게 부서져 새나 물고기의 먹이가 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식이 아닌 것을 먹으면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질식하여 죽게 됩니다. 목이 마르십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와 살아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먹고 마심은 결국 이처럼 허무한 종말로 끝나게 됩니다. 

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이니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 언약을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로 인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마고 약속하신 새언약입니다. 옛날 죽은 다윗을 말하지 않고,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의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옛날 다윗을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우셨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을 일시적인 인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우리 예수님이 만민의 증인으로 세우시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가 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우리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올 것이요, 주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에게 우리의 시간, 물질 건강 사업, 정욕 우리의 전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의 보장도 말씀하셨지만, 하늘에서 상급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8-29)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너무나 값이 나가서 그 값을 가지고 올 사람이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죽게 하시고는 누구든지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고 초청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는 것은 능동태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자의로 수고하든지, 억지로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사람이든지,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에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셨지만 그 선물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호의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부르시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처음 초대받은 유대인들이 거절할 때에, 주인이신 하나님은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이신 왕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베풀어놓은 잔치에 공짜로 참석하라고 하십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십니다. 산해진미로 잔치를 준비하였으니, 오라고 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반드시 목마른 사람이어야만 그 초대에 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목마른 모든 자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유대인이나 이방인까지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마르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고 있습니다. 영적 구원을 강력하게 사모할 때에 목마르다고 합니다.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은 그의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은혜받아야 합니다. 

시편84:2에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호와의 궁정이 어디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궁정을 성전이라고 생각하시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왕이시오, 내가 영원히 사모하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여 나올 수 있습니다. 

시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시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시대가 있습니다. 바로 은혜주시는 때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기회를 잘 선용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후회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기회가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7절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하나님은 악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죄악과 불의를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돌이키기만 하면 용서하십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빽빽한 구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다시는 기억지도 아니하십니다. 

8-9절입니다. “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경륜, 섭리를 항상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생각, 내 생각, 하나님의 길, 나의 길,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묵상합니다. 

저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지금 성공하였다고 우쭐거릴 것입니까? 지금 실패하였다고 하여 낙심하십니까? 한 가지 일로 웃고 울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만 멀리 내다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어. 난 구제불능이야. 난 안 돼’그런 생각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처럼 인색하신 분이 아닙니다. 널리 용서하기를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이 용서받을 죄악이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성품, 사랑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용서하기를 기뻐하시기에 용서해주십니다. 이 죄는 용서받을 죄고, 이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하늘과 땅 차이로 우리와는 생각이 다르고 길이 다르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늘만큼이나 높고 넓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사모하고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지불하지 말고,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찾으십시오. 가까이 계신 오늘,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더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생각에 맡겨야 합니다. 나의 길을 가지 말고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온전히 돌아서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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