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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높아지는 길 (막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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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길 (막 10:35-45)  

예수를 섬기는 제자들 간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높으냐는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로비를 합니다. 예수께서 왕으로 다스리게 되면 좌우에 앉게 해 달랍니다. 이를 듣고 다른 제자들은 화가 났어요. 그러면 자기들은 뭐냐는 것입니다. 누구든 높이 되고 싶은 게 기본 마음입니다. 높아지려고 권력이나 돈을 찾아요. 

그때 예수께서 진짜 높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자신이 섬김 받으려고가 아니라 섬기려 오셨답니다. 어느 정도인가? 목숨을 버리기까지입니다. 그렇게 낮아질수록 최고로 높아진답니다. 이해도 실천도 어려운 주문입니다. 아니, 죄 많은 인간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아요.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최고 비밀로 초대합니다. 

1. 영광의 존재가 되는 길 

누구나 높이 되고 싶어 합니다. 최초의 인간부터 그래서 타락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요 아주 낮은 존재라는 걸 어린 아이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평생을 높아지려고 투쟁합니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누가 높은지 어디서나 내가 존중 받는지 늘 확인합니다. 예수님 제자들까지도 예수처럼이 아니라 지위로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 키재기가 모든 불안과 전쟁의 원인입니다. 누가 내 자리 뺐지 않을까, 내일은 나빠지지 않을까, 어떻게 올라갈까? 미국 대통령 비서관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잠을 잘 때나 목욕할 때에 백악관 출입증을 지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백악관 직원들이 다 비슷한 증세를 보였답니다. 

말단 직원은 백악관에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우쭐댑니다. 다음엔 케네디 센터 극장에서 대통령 홀에 앉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백악관 지하실 체육관 열쇠를 탐냅니다. 이어서 대통령 행차 시 대통령 차에 얼마나 가까이 가느냐에 신경 씁니다. 회식 중에도 무전 호출기로 대통령이 부르는 것처럼 위장합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어요. 

권력에는 특권이 따릅니다. 특별 대접해 줍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선물도 많고 돈도 생깁니다. 이 맛도 한번 보면 손을 놓을 수 없어요. 말로는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림입니다. 결국은 내려놓아야 할 줄 아니까 더욱 불안해집니다. 예수님 좌우에 앉으면 아주 오래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까지 동원해 로비하는 겁니다. 

예수는 자리와 상관없이 높아지고 늘 최고 되는 길을 말해줍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할 마음도 힘도 없고요. 그러나 예수 믿으면 할 수 있어요. 정말 높아집니다. 기분도 능력도 그래요. 


2. 낮아질수록 높아진다 

낮은 사람은 낮아질 수 없어요. 종이 종노릇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왕이 종처럼 섬기면 겸손이요 감동입니다. 높아야 낮아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왕 만드셨어요. 더 높아질 게 없어요. 이 사실을 안다면 높아지려 난리치지 않습니다. 믿으면 효력이 나옵니다. 이제 예수처럼 낮아질 것만 있습니다. 천국은 낮아질수록 능력입니다. 

성경에 겸손, 섬김, 사랑, 인내, 기쁨이 나와요. 그것을 인간 힘으로 하려면 시늉뿐입니다. 결심해도 지탱할 힘이 없어요. 교만하고 욕심내고 싸우고 술 취하는 건 본래부터 육체의 본성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겸손하려면 한계가 있어요. 그러나 성령의 열매로 하면 달라요. 하나님의 겸손이요 인내요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있어요. 

워치만 니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신자가 가뭄 때 하루 종일 물을 퍼 논에 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나가보니 아래 논 주인이 그 물을 다 빼서 자기 논에 채워놓았습니다. 화가 나지만 참고 다시 자기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또 그 물을 다 빼갔습니다. 싸우려가다가 먼저 목사님에게 들려 상담합니다. 

목사님은 예수 의지해 예수 방법으로 해 보라고 합니다. 그는 다시 논으로 가서 먼저 아래 논에다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논에 물을 채웁니다. 밤이 늦어 피곤했어요. 그 다음 날 아침 자고 있는데 아래 논 주인이 찾아왔습니다. 자기도 교회 나가겠다고요. 이상한 것은 피곤한 데도 힘이 나고 기쁨이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와 함께 섬기면 비참한 게 아니라 기뻐요. 세상 영광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힘이 옵니다. 부잣집에서 자란 젊은 수녀가 테레사에게 고백합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 몸을 만졌습니다.” 구더기로 덮인 버려진 남자를 치료 했답니다. 테레사가 대답합니다. “예수는 이제 내 손을 통해 섬기십니다.” 예수 경험합니다. 


3. 주와 함께 섬기라 

예수 믿고 그 힘으로 살면서 잘난 척하고 권세 부릴 수 없어요. 자연히 섬깁니다. 그의 왼 편이건 오른 편이건 왕이건 장관이건 섬깁니다. 그러면서 주의 권능과 행복을 맛봅니다. 무디의 말입니다. “얼마나 많이 섬김 받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섬겼느냐로 사람을 평가하라.” 그만큼 예수 힘으로 영원한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1957년 25세 때 신부가 됩니다. 서품식 하이라이트에서 추기경이 성배를 줍니다. 이미 신부가 된 삼촌이 금으로 장식된 자기 성배를 추기경을 통해서 넘겨주었어요. 그는 이 감격을 평생 간직합니다. 장애자 시설에 있으며 그들에게 성만찬을 베풀 때 창으로 찌르듯 말씀이 옵니다. “네가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영광의 잔인 줄 알고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잔은 고난이었습니다. 낮아지고 죽기까지 아니 지옥에까지 내려가는 종의 길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랴! 그 길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습니다. 죽는 것 같지만 살고 망하는 것 같지만 감격이요 권능입니다. 예수께서 모범을 보여 모든 무릎을 꿇게 만듭니다. 

나우웬은 성만찬을 “잔 붙들기(Holding the cup)” “잔 들기(Lifting the cup)” “잔 마시기(Drinking the cup)” 라는 3단계로 설명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잡습니다. 그를 높이 올리고 입술을 댑니다. 그리고는 그의 전체를 마십니다. 그렇게 그와 하나가 됩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함께 섬김을 시작하며 그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예수와 하나 됩니다. 그를 붙들고 높이고 입 맞춥니다. 그의 전체를 마셔 한 피 한 몸 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예수로 섬깁니다. 섬길수록 더욱 예수가 되고 권능과 복이 누려집니다. 믿음의 섬김은 우리 힘이 아닙니다. 예수요, 구원이요 천국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처럼 영적 권세로 열매 맺고 풍성해 집니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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