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히 13:8-21)

첨부 1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히 13:8-21)

히브리서 강해설교를 시작하면서 첫 설교 제목이 “예수님이 최고입니다”였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주제입니다. 오늘 마지막 설교도 그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본문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깨달아졌다면 히브리서는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라는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아무 생각없이 반응하니 그렇습니다. 어쩌면 정말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찌 한결 같으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계실 때나, 사람으로 이 땅에 계실 때가 다르고, 갈릴리 호수가에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무리들에게 선포하실 때나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다르고, 지금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계시지 않은가 말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으면 감옥에 가고, 가족들이 헤어지고, 재산을 다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결같으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진실로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공생애 중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눅 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를 앞두고 이해가 안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

제자들로서는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은 결단만 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순종하려 해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뜻은 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여서,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는 부활 승천 전이나 이후나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승천 이후가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자신들의 힘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예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님을 믿고도 자신의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속에서만 읽고 봅니다. 현실 생활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조차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도 실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번 유럽 여행을 함께 가신 목사님 한 분이 독일에서 유학하시면서 목회하실 때, 새벽기도회 시간에 교인 40여 명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였답니다. 그 때 마음은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빼 먹은 것입니다. 그 교인이 그 다음부터 교회를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그 교인을 달래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모른답니다.
잘 해 보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능력이나 노력으로 하는 것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한국 부흥이 1907년 평양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1903년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의 회개를 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로 꼭 110년이 됩니다.

원산 부흥이 하디의 회개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전에도 이미 훌륭한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의사였던 그는 대단히 신실한 분이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되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인들에게서‘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안타까와하던 중 은혜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1903년 여름 선교사 수련회 때, 하디에게 강의를 부탁했는데, 하디가 강의를 준비하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가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의 학력과 의사라는 직업, 영국 시민이라는 교만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뜻이 좋고 목표가 바르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님이심을 간과하고 자기 힘으로 하려 했기 때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디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번째 요구는 내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그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하디는 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하디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동안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선교의 결실이 없었던 원인이 자신의‘교만과 강퍅함,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공개적으로 통회했습니다.

하디의 고백을 들은 동료 선교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들도 회개하였습니다. 하디는 한국 교인들 앞에서도 낱낱이 고백하고 눈물로 참회하고 회개하였습니다. 한국 교인들도 하디의 회개에 큰 충격을 받고“강력한 회개 운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디에게 임한 부흥과 회개의 핵심은 주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원산, 개성, 서울 등에서 하디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회개와 부흥의 바람이 불었다. 1906년 8월에 평양에서 선교사들의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의 강사로 초청된 하디는 자신이 경험했던 은혜를 간증했다. 하디는 은혜를 받기 전 얼마나 자신이 교만했는지, 그런 자신에게 어떻게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자신을 변화시켜주셨는지를 진솔하게 회중들에게 전해주었다. 

이날 하디는 이렇게 외쳤다. "인간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잘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 슬프도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역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되는가!'

선교사들은 이 때 부터 1907년 연초에 모일 겨울 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기도의 열매가 1907년 평양대부흥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월 첫째 주일에 성찬식을 합니다.
성찬식에서 떡을 떼어 주고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위해 찢긴 것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위해 피를 쏟으신 것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한 마디로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그 순간 다시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는 주 예수님이 2천년 전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죽으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이렇게 주님을 기념하라고 정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세례를 받는 사람은 다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하여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과거 2천년 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하여 지금 다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친히 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 예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시기에 우리는 나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시험될 일이 없고, 해결 안될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약속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28:15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신 31:6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수 1:5 ...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

대상 28:20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습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시 121:4-6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주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이 약속의 실현입니다. 
성탄하실 때 천사가 예수님에 관해 전해준 말씀이 있습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늘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 28:20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 예수님이 이처럼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할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9절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주 예수님이 여전히 함께 하심을 모르니 이런 저런 교훈에 귀가 얇아 방황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핍박과 고난이 커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커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임마누엘하시는 주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방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마지막에 와서 말할 수 없는 핍박으로 배교의 위기를 맞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2-13절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받는 것은 좋은데, 불편한 것은 싫고, 희생도 싫고, 책임지는 것도 싫은 분은 주 예수님의 눈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한결같으시니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찬양만 하며 사는 것입니다.

15절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요즘 목요일 새벽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모임이 뜨겁습니다. 새가족도 많이 늘었습니다. 장인이 사위를 강권하여 참석시킬 정도로 은혜로왔다는 말입니다.
강사이신 최영수목사님의 강의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누군가 목사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자 목사님이 박수를 쳐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박수를 쳤지만 의례 하던대로 박수를 치라니 쳤고, 한 두 번 치다가 말았고, 손을 늘어뜨리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최영수목사님이 정색을 하면서 전심으로 박수를 쳐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왕 박수를 치는 것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축하하고 격려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좀 멋쩍었지만 목사님께서 시키는대로 힘을 다하여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분위기가 확 달랐습니다. 믿사남 장소가 야구경기장처럼 열기가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 내내 환호성과 박수로 강의는 진행되었습니다. 박수 열심히 친 것 하나로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깜짝 놀랐습니다.

최영수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뜨겁게 박수쳐 주는 사람이 되라고 도전하였습니다. 마음이 깊이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뜨겁게 박수를 보내고, 아내가 남편을 향해 뜨겁게 박수를 보내면 부부관계가 달라질 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고, 자식이 부모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면 부자관계가 달라질 겁니다.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고, 직원들이 고용주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면 직장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이렇게 반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뜨겁게 박수를 쳐야 할 대상 중 가장 먼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향한 저의 태도가 너무나 미지근하고 무기력하게 쳐져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죄송하였습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역사인데, 정말 기쁨으로 감사로 적극적인 순종으로 하나님께 반응하였던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제 반응은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금요일 새벽에 알람이 울렸습니다. 몸이 몹시 피곤하였지만‘이 얼마나 복된 소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자리를‘박차고’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주여 감사합니다. 기도할 건강주시고 기도할 믿음주시고, 함께 기도할 교인들을 주심에 감사합니다.”하나님께 박수를 치는 심정으로 씩씩하게 일어나 감사를 드렸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나오면서 하나님께 열렬히 박수를 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새벽은 정말 이전 어느 날 새벽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처럼 충만함을 느껴본 적이 흔치 않았습니다.
이제야 주님과 동행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깨달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핍박도 있고 유혹도 있지만 여전히 주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십니다. 

‘하나님 한번도 우리를 실망 시킨 적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은혜로 지켜주셨습니다 
지난 세월들 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지키실 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살전5:16~18) 승리의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오 신실하신 주

(유기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