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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초의 성찬식 (마 26: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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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성찬식 (마 26:17-30)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기독교의 성례식 또는 성례전은 세례와 성찬식 두 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월절 만찬의 준비와, 만천 도중 가룟 유다의 배신 예고 및 최초의 성찬식 제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난 2월 10일 주일에 ‘그리스도인의 명절’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린바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 드라마에서, 제 1막은 구약이고, 제 2막은 신약인데,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사건이고,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구약에서 복음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대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애급 전역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밤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뿌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밤에 애굽 사람들은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은 다 죽게 되었습니다. 애굽 온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가 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의 집이든 목동의 집이던, 강도의 집이던, 창녀의 집이던 상관없이, 양의 피가 뿌려져 있는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볼 때에,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갔던 것입니다. 마침내 애굽의 바로는 항복을 하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금 패물을 주며 어서 빨리 애굽을 떠나라고 해서, 드디어 430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맛보게 됩니다. 

유월절을 사건을 통하여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인 정월 14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 무교병만을 먹어야했습니다. 무교절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은,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바, 부패와 옛 생활을 상징하는 애급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이 섞인 유교 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절기가 돌아오니까 17절에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시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에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아무개의 집에서, 유월절 음식을 드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아무개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핍박이 심했기 때문에, 유월절 장소를 제공해 준 사람을 보호해 주기 위해 익명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이 사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곧 물동이를 지고 가는 주인으로서, 큰 다락방이 있는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월절 만찬을 준비한 숨은 제자를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도, 나귀를 제공한 숨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한 여인은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 곁에는 열두 제자 외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하는 숨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교회가 은혜롭게 성장하고 부흥하려면, 이렇듯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숨은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봉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송정 중앙교회에 이렇듯 아름다운 일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하는데 필요한, 유월절 양에 대한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어린양 가운데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병들었거나 온전치 못한 것은, 결코 유월절 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양에는 완벽한 상태의 어린 양이 요구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은, 죄인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구원받는 것을 예표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의 계기가 된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유월절 희생양이 요구되었듯이,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은, 유월절 어린 양이 흠이 없고 완벽해야 했듯이, 죄와 허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18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고 했고, 20절에 보면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언제인가 하면 곧 수난주간 목요일 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 마지막 만찬을 잡수시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소위 ‘최후의 만찬’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누가 자신을 팔게 될지를 이미 알고 계셨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25절에서 주님은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묻는 가룟 유다에게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누가 자신을 팔자인가를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가룟 유다의 악한 의도를 지적하여, 그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은 유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실로 뻔뻔스럽게도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하면서, 자신의 범행의도를 끝까지 숨겼습니다. 이렇듯 마지막으로 주신 회개할 기회마저 놓쳐버린 가룟 유다는,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제게 좋았을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팔려고 하는 가룟 유다에게 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신 주님의 마음이 바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셔서, 누구라도 죄로 인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을, 당장에 심판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는 것은, 죄인들이 회개함으로 멸망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죄인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무한히 베풀어 주시어,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완악한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멸시하여, 주어진 기회를 헛되게 허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런 핑계도 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멸시한 일로 인하여, 가중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 때, 그것을 악용하여 죄를 범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회개치 아니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그들 중에서 배신자가 나오리라는 말을 듣고 몹시 근심하며 각각 “주여 내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표어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사람들이나, 또는 이단 사설에 빠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 중에는 처음에는 자타가 인정하는 탁월한 신앙인이 많았습니다. 전도도 잘하고, 헌금도 잘 드리고, 충성 봉사도 열심히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룟 유다만 해도 그 재능과 충성이 탁월했기에, 주님께서 그에게 중요한 ‘회계’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주님을 파는 배신자가 되었음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도 완전무결한 신앙인이었으나, 쉽게 사단의 계교에 넘어가 하나님을 배신했고, 이스라엘 왕 사울도 그 신앙과 용모가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쉽게 타락했으며, 지혜가 세상에서 가장 탁월했던 솔로몬도, 말년에 우상숭배자로 전락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신앙적으로 탁월했으나, 후에 하나님을 배신한 자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탁월한 자들도, 얼마든지 타락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특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신앙생활이 모범적이며 탁월하다는 칭송을 듣는 성도들일수록, 늘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 탁월함 때문에 교만한 죄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 열심 때문에 이단사설에 미혹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만심에 빠지기 쉽고, 공로주의 신앙심으로 비뚤어지기 쉽습니다. 그런즉 성도 여러분, “주여 내니이까?” 라고 했던 제자들의 질문을 항상 자신에게 적용하여, 내 안에 배신의 요소는 없는지, 늘 자기 신앙을 점검해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을 자기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의뢰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주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그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바로 자신과 동고동락하던 제자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한솥밥을 먹던 자가 주님께 가장 큰 상처를 입히는 배신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시편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시 41:9절을 보면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큰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는 신앙인에게 영원히 의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절대로 주님처럼 의뢰할 수 있는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가 전도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지, 의뢰할 대상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아주 친근한 사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석 간에 변하는 것이 부패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균 때문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들을 하나님처럼 의뢰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사람을 의뢰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사람으로 인해 큰 실망과 상처를 입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내 마음도 내가 의뢰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동고동락한 사이일지라도, 성도는 그를 의뢰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사랑을 베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대인관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는 성도가,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큰 시험에 드는 일을 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주님은 자신은 비록 성경의 예언대로 배신자에게 팔려 죽게 될 것이지만, 자신을 판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실제로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반한 이후에, 주님을 팔고 받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새파란 청춘의 날에 그 삶을 비참하게 마감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배신한 자는, 일말의 긍휼하심도 얻지 못합니다. 이런 배교자들에게는 불신자들에게보다 더 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성경을 보면 배교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배교하기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권고하고 또 징계도 하시지만, 배교한 후에는 무서운 형벌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을 통해 살육과 포로를 당하게 하셨으며, 교회를 해롭게 만들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즉시 처단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배역한 고라당을 불에 태우시고, 다윗왕국을 반역한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비참하게 살육당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반역자나 배교자들에게, 일말의 긍휼도 보이시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알고서도 진리를 배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서도 그 사랑을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약 시대의 배교 행위는, 더욱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피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악이요, 성령님을 거스르는 용서받을 길 없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배교한 자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만과 탐심입니다. 교만한 자가 반역하고, 세상에 대한 탐심을 절제하지 못한 자들이,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만과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털끝만큼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그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배교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최후만찬 석상에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성찬식 장면입니다. 이렇듯 성찬식은 인간이 고안해 낸 무슨 종교의식이 아니라,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친히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기독교의 가장 귀중한 성례식인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또한 구원의 은혜를 이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은혜를 힘입어 구원 얻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를 받아서 먹고 마셔야만, 그 은혜가 내 것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없으면, 주님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은혜가 효력이 미치도록, 그것을 받아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즉 주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고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구주 되심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구주 되심을 의심하는 것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먹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단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구주 되심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만찬을 주시며,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고, 또 잔을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성찬식에서 떼어 주신 떡은, 다음 날 십자가에서 찢기고 상하실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잔은 그 십자가에서 흘리실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회가 행하는 성찬식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최초의 성찬식을 거행하시면서 ‘받아먹으라.’ ‘다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어떤 성도들은, 아직 믿음이 부족하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세례받기를 미루고, 그래서 그 중요한 성찬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실로 귀중한 은혜의 방편을 놓치고 맙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곧 있게 될 성례주일에, 아직 학습이나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반드시 세례를 받으시고,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에도 꼭 참여하여, 믿음이 강화되고 신앙이 크게 성장하는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와 죄와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시기를, 최초의 성찬식을 제정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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