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창 27:27-29)

첨부 1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창 27:27-29)  
  
창 27장은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살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불러서 별미를 만들어 오면 에서를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겠다는 말을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듣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지만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두 아이를 가졌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위장시킵니다. 에서가 털이 많은 사람이기고 야곱은 털이 없는 매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염소 털로 야곱을 위장시켜서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입니다. 이삭은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고 에서처럼 털을 붙이고 자기 앞에 나타나니 야곱을 에서로 알고 야곱을 축복합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은 후에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이삭에게 줄 별미를 만들어서 이삭 앞에 나타납니다. 그때서야 이삭은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알지만 이미 축복을 해버렸기 때문에 에서를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로 에서는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에서의 계획을 눈치 챈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보냅니다.
   
도대체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리브가는 남편을 속이고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 야곱은 염소 털까지 붙여가며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았으며, 77세나 된 에서는 야곱이 자기를 대신해서 축복을 받았다고 아버지 앞에서 소리를 높여 울었을까요?
   
야곱이나 에서가 이 축복의 의미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축복은 굉장히 중요한 축복이었습니다. 그 당시 장자는 다른 형제들의 2배의 재산을 받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1억을 받는다면 장자는 2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축복은 단지 장자가 다른 형제들보다 2배의 물질적인 복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축복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느냐 못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축복이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야곱을 기점으로 하여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분리 작업이 종결되었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아담의 자식인 가인과 셋 중에서 셋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 중에서 셈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스마엘, 이삭 중에서 이삭을 선택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손들 중에서 그의 백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까 택한 혈통을 위해 자손들을 계속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에 이르러서는 달라집니다. 혈통의 분리는 종결되고, 이제부터 선민 혈통의 확장이 시작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부터는 모두가 택한 혈통의 반열에 서게 되잖아요? 야곱은 바로 이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언약가문의 계승자로서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삭이 베푸는 축복은 단순히 장자권만이 아닙니다. 지금 야곱이 받으려는 축복은 지상에서 유일한 언약가문의 계승자로서의 배타적인 지위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축복이 중요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다가 리브가의 꾀에 속아서 야곱을 축복하게 된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년이 더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어린 시절부터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삭의 청소년기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음성에 순종해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 때 이삭은 아버지의 칼을 받아드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리브가를 아내로 얻게 됩니다. 이삭의 늙은 종이 밧단아람에서 리브가를 데리고 올 때 이삭은 들판에서 기도하다가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결혼하고 20년 이 되었지만 리브가가 아이를 갖지 못하니 이삭이 기도하여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됩니다. 그 두 아들이 뱃속에서 싸우니 기도하여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창 26장에서는 가나안에 가뭄이 들어서 이삭이 식솔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삭이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으면 짐승들은 다 죽게 되고 이삭의 목축업은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그랄에 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해에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나 거두게 하셨고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랄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그랄에서 쫓아내니 그들과 다투지 않고 그곳에서 나옵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면 그랄 사람들이 우물을 막아버리고, 또 우물을 파면 그랄 사람들이 자기들 것이라고 빼앗아버립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손해를 보고 물러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삭을 도와주셨고 결국은 그랄 사람들이 이삭에게 무릎을 끓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거기까지는 보기에 참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창 27장에 와서는 이삭의 영성이 바닥으로 추락했던 것입니다.
   
이 때 야곱의 나이가 77세입니다. 이삭은 야곱보다 60세가 더 많으니 137세입니다. 그런데 창 35:28 이삭이 180세에 죽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 이후에도 이삭은 43년을 더 살게 됩니다. 이삭은 아직 죽을 날이 43년이나 남았는데 곧 죽을 사람처럼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이삭의 영성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의 잘못을 정리해보면 첫째,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했을 때 뱃속에서 쌍둥이가 다툽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복중에 두 민족이 있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큰 자인 에서를 사랑했고 에서에게 장자권을 주려고 했습니다. 둘째, 이삭의 두 번째 잘못은 자식을 편애한 것입니다. 그 당시 족장들은 자녀를 축복할 때 자녀들을 다 불러 모은 후 한 사람씩 축복을 해 주고 장자에게는 좀 더 많은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삭은 맏아들 에서만 가만히 부릅니다. 에서에게 모든 축복을 다 해 주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인 야곱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 중요한 장자권을 주면서 이삭이 원했던 것은 별미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축복을 받는 자의 신앙적인 면이나 됨됨이 등을 살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먹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영성이 떨어지고 육신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말년이 더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지금보다 더 성숙해지고, 지금은 혹 육신 중심의 삶을 살아도 앞으로는 더 신령한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외모는 나이가 들면서 늙고 쭈그러들어도 인격적으로 더 존경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년이 더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인간적인 수단보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창 25:23에 보면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삼상 15:29에 보면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바꾸시거나 변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리브가와 야곱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야곱은 이삭에게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몇 가지 속임수를 썼습니다. 15절에 보면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습니다. 16절에 보면 야곱이 털이 많은 에서로 변장하기 위해서 염소 새끼의 가죽을 몸에 붙입니다. 

19절에 보면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20절에 보면 염소를 잡아서 요리해 놓고 사냥을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또 20절에 보면 자기가 그렇게 속히 음식을 준비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사냥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까지 팔아먹습니다.
  
이삭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서를 축복하려고 해도 리브가와 야곱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섣불리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야곱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야 했으며,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과 해어져서 살아야 하는 아픔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나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현실에 괴리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흔히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따라 움직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가나안에 가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당시에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숨을 거는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붙잡아 노예로 삼을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가족들의 생명이나 자신의 생명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믿음의 결단을 하고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갔던 그 해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아직 믿음이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그의 믿음이 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환경을 보고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했던 것이 물이 풍부한 애굽 땅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사라를 탐내다가 자기를 죽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애굽 왕 바로에게 사라를 빼았기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내를 다시 찾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는 기도응답을 5만 번이나 받으면서 수천 명의 고아들을 길러냈던 죠지뮬러를 존경합니다. 그가 존경스러운 이유는 첫째, 그의 기도 때문입니다.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입니다. 둘째, 그의 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는 52년이라는 세월동안 변함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던 사람입니다. 셋째, 그의 믿음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든든한 믿음으로 서 있었습니다. 하루는 고아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야 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죠지 뮬러는 당황하지 않고 아이들을 식당으로 모으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들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아이들이 먹을 빵과 우유가 도착했습니다. 흔들리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죠지 뮬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있고 하나님께 받은 비전이 확실하다면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견고히 서기를 바랍니다. 

3.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많은 분들이 이삭이 축복 받으려고 하는 자가 야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속아주었다고 하는데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3절에 보면 야곱을 만져본 이삭이 에서처럼 털이 있으니까 분별하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또 33절에 보면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간 후에 별미를 만들어가지고 온 사람이 에서라는 말을 듣고 심히 크게 떨었다고 말씀합니다. 분명히 이삭은 에서로 위장한 야곱을 에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을 보면 축복의 내용이 기가 막합니다. 그것은 총기를 잃어버린 노망든 노인이 할 수 있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삭은 야곱을 에서로 알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웠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대신 발달한 것은 귀와 코와 촉각 등 일 것입니다. 야곱이 입은 에서의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야곱이 에서라고 말했기 때문일까요? 아들 목소리 척 들으면 모릅니까? 야곱의 몸에 붙인 염소 털 때문일까요? 말도 안 됩니다. 사람털과 염소털이 구분이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의 귀, 이삭의 코, 이삭의 촉감을 둔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이삭의 감각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복을 받기를 원하셨는데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삭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고자 하면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충남 해안가의 한 성읍에 세 아들과 함께 월세방에서 사는 가난한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남편은 도박에 미쳐서 집을 나간 지 3년이나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이 마을 저 마을, 이 거리 저 거리를 다니며 “갈치 사세요. 고등어 사세요.”하고 생선을 팔았지만, 그 당시에는 밥만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라 생선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서럽던지 새벽마다 울었습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돈을 정리하는데 100원짜리 동전인 줄 알고 받은 돈이 사용하지도 않는 구닥다리 동전이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어디 속일 데가 없어서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을 속이나?’ 

다음 날 새벽, 그것을 갖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 어디 속일 데 없어서 나 같은 사람을, 이 가난한 사람을 속입니까?” 하며 울었습니다. 그 당시 100원은 꽤 큰돈이었습니다. 땅 한 평에 300원, 400원 할 때입니다. 집사님이 그렇게 울며 새벽기도를 하고 나서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은 제가 속아서 받은 돈인데 목사님께서 가지세요.”, “저, 그것 필요 없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동전 수집 같은 것 안 하세요?”, “예, 안 합니다.”, “그래도 가지세요. 저는 이것 정말 필요 없습니다.”, 목사님이 그것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버리려다가 집사님이 생각나 차마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안국동 골동품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가게에 ‘옛날 돈 삽니다.’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집사님이 준 그 동전이 생각나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옛날 돈 삽니까?”, “예.”, “이것도 삽니까?”, 점잖은 체면에 부끄러웠지만 그 동전을 내놓았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예, 사지요. 얼마 드릴까요?”, 목사님은 ‘100’이라고 적혀 있는 동전이니 200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한 200…….”이라고 하니 주인이 “예, 200만 원을 드리지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만 원을 받아 가지고 와서 그 집사님에게 주었습니다. 집사님이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100만 원은 헌금하고 100만 원으로는 집과 가게를 샀는데 가게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나중에 큰 슈퍼마켓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집 나간 남편이 어떻게 알았는지 집으로 돌아와 교회를 잘 다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하면 막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축복받기로 작정된 존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기로 된 것처럼 우리도 축복을 받기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반드시 저를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비록 지금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저를 축복하십니다. 저를 따라서 해보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축복하신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만 보고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갈 3:13,14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를 받으셨습니까?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우리들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막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불신앙뿐입니다. 


4.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가 됩시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기 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축복이 중요하고 가정에서는 부모의 축복이 중요합니다.
   
삼하6:20을 보면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집에 갔던 이유는 가족들을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 앞에 나오는 내용은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들어어는 내용입니다. 그 때 다윗은 기쁨이 넘쳐서 춤을 췄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축복하는 것이 그의 일이자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큰일을 하고 난 후라 피곤했을 것입니다.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섰을 것입니다. 빨리 돌아가 저녁을 먹고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축복하기 위해 집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가족을 축복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축복하는 자가 되십시오. 가장의 사명은 가족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축복하십시오. 자녀들을 축복하십시오.
  
미국에 게리 스멜리라는 유명한 상담가의 글입니다. 그는 어릴 때 엄격한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어느 날, 늦게 귀가했다가 할아버지한테 매를 두 대 맞았습니다. 맞고 나니 할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조금 후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식사하시러 오라는 말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전하기 아주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방으로 갔습니다. 가니까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는 열린 문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침대 끝에서 기도하며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갑자기 멍해지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우는 일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더욱 충격적인 일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때린 후에 마음이 아파서 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게리! 나도 너를 때리면 마음이 아프단다! 나는 너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너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거야. 네 앞날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할아버지는 기도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인생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그때 그 할아버지의 축복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사랑과 인정과 격려의 말이 넘쳐야 합니다. 특별히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정말 귀한 존재이다”라는 가치 부여의 말을 자녀들에게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입을 열면 무엇을 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라는 말 열 마디보다 축복의 말 한 마디가 훨씬 자녀의 앞날에 복을 불러옵니다.
   
그럼 우리는 자녀에게 축복의 말을 할 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한규 목사님은 세 가지 축복의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소개하겠습니다. 
   
1)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을 합시다. 

27절입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할 때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발의 향취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너는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존재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짜 축복의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축복할 때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보다 “너는 내게 귀한 존재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자주 이렇게 따라하게 했습니다. 같이 해봅시다. “나는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말하십시오.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야” 
   
2) 자녀의 가능성을 격려하는 말을 합시다. 
   
본문 28-29절에서 이삭은 계속해서 아들 야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이삭의 축복을 한 마디로 말하면 “너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감추어진 잠재능력이 있습니다. 애벌레는 보기 싫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나비가 들어 있습니다. 자녀들도 지금은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는 그 가능성을 격려해주고,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낮게 평가하면 아이들은 그 부모의 평가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격려해주면 자녀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자녀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키울 때 격려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남아프리카 정글의 바벰바족은 가끔 누가 범죄하면 그를 마을 광장에 세우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 주위에 큰 원을 이루어 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 죄인의 장점이나 그가 과거에 했던 선행을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때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되고, 비난이나 욕이나 책망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고, 진지하게 칭찬만 해야 하는데, 칭찬이 바닥날 때까지 며칠이라도 하다가 칭찬이 다 끝나면 그때부터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새 사람이 되고, 그래서 그 부족 사회에서는 범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은 비판과 지탄보다는 칭찬과 격려에서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힘써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3) 자녀의 영혼에 긍정과 믿음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가끔 보면 자녀 앞에서 남 흉을 보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녀의 마음과 영혼에는 상처가 생기게 되고, 어른을 우습게 알고, 똑같이 뒤에서 흉보는 자녀로 자라나게 됩니다. 가끔 부부가 사이가 나쁜 경우에는 어머니는 자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공작을 펴서 은근히 아버지를 깎아 내리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말은 자녀의 영혼에 독약을 주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자제하고, 자녀 앞에서 남 흉보는 것도 극히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 식구, 내 이웃, 내 친구, 내 친척을 욕하는 것도 자녀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하고, 심지어는 정치인 나쁘다고 욕하는 것이나 “일본이 나쁘다! 미국이 나쁘다! 북한이 나쁘다!”고 욕하는 것도 미성숙한 자녀의 영혼에는 결코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은 길을 가다가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여보게, 둘 중 어느 소가 밭을 잘 가나?”하고 물었더니 농부가 쟁기를 놓고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대감님! 조용히 말씀하세요. 왼쪽 편 소가 더 잘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황희 정승이 뭐가 무서워 그렇게 조용히 말하느냐고 했더니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대감님! 아무리 소가 미물이라도 자기가 밭을 못 간다고 말하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황희 정승이 깨닫는 바가 있어서 더욱 언행을 조심해서 훌륭한 정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 것 같고 내 기대에 미치는 것 같지 않아도 부부끼리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주십시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드는 법입니다. 누가 내 자녀보다 앞선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항상 앞서는 법도 없고, 항상 뒤쳐지는 법도 없습니다. 앞선 날이 있으면 뒤쳐지는 날도 생기고, 뒤쳐지는 날이 있으면 앞서는 날도 생기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믿음 잃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녀를 믿어주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할 일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몇 가지 들었습니다.
   
1. 말년이 더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인간적인 수단보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4.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가 됩시다.
      1)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을 합시다.
      2) 자녀의 가능성을 격려하는 말을 합시다.
      3) 자녀의 영혼에 긍정과 믿음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