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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롬 8: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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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롬 8:31-34)

로마서 8장은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1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은 도중에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영광의 자리까지 이릅니다. 로마서 8장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롬8:17 말씀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장차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한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절인 롬8:18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무한한 영광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현재에 당하는 일시적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롬8:29∼30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미리 정하셨으니....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구원의 과정이 다섯 단계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미리 아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넷째,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들 다섯 단계의 주어는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일단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끝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다섯 단계는 결코 중도에서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자연히 이들 구원의 다섯 단계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립적이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은 앞으로 되어 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롭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지 않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과거형을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정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기분이나 감정에 좌우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서지 않아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의 확신 속에,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잠시 후에 있을 성찬을 통해서 더 깊은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네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을 막지 못합니다.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본문은 두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여기서 “이 일”이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알아야 하고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마땅한 반응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받은 구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늘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구원을 잘 지키지 않으면 받은 구원이라도 상실하게 된다고 거짓되게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네 가지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연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둘째 질문에서 첫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여기서의 “누가”는 “어떤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 방해받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마10:34∼36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 때문에 서로 불화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럴 경우 믿지 않는 자가 우리를 심하게 박해해서 우리의 구원을 막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전연 없습니다. 이유는 조금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의 학교교육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학교에서는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을 가르칩니다. 신앙을 심는 교육이 아니라 신앙을 떨어뜨리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풍조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우리의 구원을 막으려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했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행20:29∼30 말씀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이 말씀대로, 요즘도 각종 이단이 사나운 이리가 되어 극성스럽게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순진한 교인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며 교회를 분란에 빠뜨립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런저런 사람들 때문에, 과연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만일”은 헬라어에서는 기정사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컨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리지 말고,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의 뜻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으니까,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을 막지 못합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고, 더 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시27:1에서 다윗은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을 막지 못합니다. 이로써 첫째 가능성, 곧 어떤 사람이 우리의 구원을 막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도 우리의 구원을 거두지 아니하십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가 했던 고백이 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을 끼쳐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도로 거두시지는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우려하는 둘째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전연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빌라도가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엄청난 일을 행하시고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본문 하반부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명합니다.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모든 것”이란 이미 받은 우리의 구원을 지켜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말씀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큰 것을 주셨으니까, 그 보다 작은 것을 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지켜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도 당연히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은 로마서 5장에서 이미 잘 설명되었습니다. 

롬5:6 말씀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때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였으며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또한 롬5:8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롬5:10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였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연약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로 지낼 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그러니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날로 강건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날이 경건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어 이미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형편없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은혜로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지금의 더 나은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을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렘31:3 말씀처럼,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구원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둘째 가능성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망을 느끼시고,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도로 거두시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도 영원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사탄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 못합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여기에 사람들이 걱정하는 셋째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행여 사탄이, 곧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탄도 결코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 못합니다. 

계12:10 말씀과 같이, 사탄이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를 참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사탄은 하나님께 우리를 고발하는 일을 합니다. 이 사실은 구약성경 욥기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욥의 믿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욥이 받은 복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이 욥에게서 복을 거두시면, 욥이 그의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욕을 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탄은 욥을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사탄은 욥에게서 가축을 다 빼앗아가고, 자녀들도 다 빼앗아갔습니다. 욥의 몸에는 심한 질병이 생기게 했습니다. 그러자 욥의 아내도 욥을 힘들게 했고, 욥의 친구들도 욥의 마음에 상처만 주었습니다. 

사탄은 욥을 괴롭히면서 욥의 믿음을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욥의 믿음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욥은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 우리를 참소합니다. “저 사람의 믿음은 순전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를 괴롭히면, 그는 분명 자신의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욕할 것입니다. 내가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면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사탄이 욥의 믿음을 없애지 못한 것처럼, 사탄은 결코 우리에게 있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없애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33절 전반부 말씀을 다시 읽어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또한 34절 앞부분의 말씀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사탄이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우리를 고발하며, 또한 우리를 정죄하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사탄에게 그 일이 가능합니까? 아닙니다. 사탄은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33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다시 말해서 다만 우리를 심판하실 이는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정죄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우리이기에,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는 재판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우리를 미리 정하셨으며,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며,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고발해도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로써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셋째 가능성도 사라졌습니다. 사탄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예수님도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롬8:34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제 마지막 넷째 가능성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우리를 내치지는 않으실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본문에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네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죽으셨습니다. 둘째,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넷째,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친히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롬4:25 전반부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해서 지불하시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롬4:25 후반부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또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증된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히10:11 말씀처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겼습니다. 그러나 히10:12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넷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우리를 고발합니다. “저 사람에게 죄 값을 물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이미 내가 저의 죄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원토록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이로써 이제 네 가지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을 막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도 우리의 구원을 거두지 아니하십니다. 셋째, 사탄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지 못합니다. 넷째, 예수님도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찬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시고, 또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깊이 생각합시다. 

아울러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려고,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합시다. 그러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도의 합당한 삶을 굳게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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