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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맷돌보다 먼저 날아간 것 (시 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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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맷돌보다 먼저 날아간 것 (시 27:1-6)

(1절)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절)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절)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절)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절)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성경은 골리앗에 대하여 그의 키와 투구와 갑옷과 기타 무기 등등,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삼상 17:4-7). 키가 무려 2.95m에 달하는 그는 당시 사울 왕을 비롯한 온 이스라엘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삼상 17:11). 

그때에 목동 다윗의 태도는 과연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 상황에서 그 어떤 겁이나 두려움, 주저함 없이 혈혈단신 담대하게 물맷돌 하나 들고 골리앗을 향해 돌진했을까요? 과연 그랬을까요? 

골고다 십자가란 골리앗 앞에서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주님조차도 자신의 골리앗 앞에서 무척 큰 심적 부담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예외였단 말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다윗은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시 55:5). 시편 55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그도 역시 두려움, 떨림, 공포가 엄습할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도 골리앗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시편 3편부터 다윗의 기도를 정독해 나가다가 27편에 와서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읽으면서 이 시야말로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기 전에 그가 했던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악인, 대적, 원수’(2절), ‘군대, 진, 전쟁’(3절)이라는 전쟁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자들은 다윗이 지금 개인적인 어떤 원수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원수와 싸우는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때가 언제일까요? 어떤 싸움일까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보통 부모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나이 많아 늙은 후에는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소년시절, 목동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시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소년시절의 작품이라면 어떤 전쟁이 자연스레 떠오릅니까? 골리앗과의 전투입니다. 그 전투 앞에서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독일의 유명한 구약학자였던 헤르만 궁켈(H.Gunkel,1862~1932)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은 시편 27편이 독자적인 두 시가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편집 당시 1~6절, 7~14절이 서로 바꿔진 것이 아닌지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후반부인 7절 이하는 큰 문제 앞에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부르짖는 모습, 즉 애가(哀歌)요, 전반부인 1절 이하는 기도 후에 확신에 찬 모습으로 원수를 향하여 마주 대항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후반부를 먼저 살핀 후, 전반부로 돌아오는 것이 훨씬 더 깊이 있는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반부는 어떻게 시작합니까? 전쟁이 일어나 골리앗이 조석으로 나타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간담을 서늘케 합니다.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바로 그때 다윗은 먼저 하나님을 찾았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시 27:7-8). 그러자 마음에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시 27:13).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향해 외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4). 

드디어 그는 원수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칼도 갑옷도 방패도, 함께 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가슴에 붙인 것은 ‘여호와의 이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3). 

이렇게 외치며 나아갔던 다윗의 조그마한 물맷돌 앞에 거대한 원수는 픽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물맷돌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까요? 물맷돌보다 먼저 날아간 것은 없었을까요? 먼저 날아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 다윗의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가 먼저 날아갔습니다. 그 기도가 골리앗을 경직되게 했고, 약점을 노출하게 했고, 그 기도가 먼저 날아가 물맷돌을 그 약점 정중앙으로 빨아들인 것입니다. 

오합지졸의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모세의 기도가 먼저 날아가서 승리하였습니다(출 17:11). 야곱 앞에 에서라는 골리앗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예물을 잔뜩 실어 먼저 보내고, 식솔들을 보내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께 매달려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먼저 에서를 향해 날아가니, 오히려 에서가 먼저 달려와서 목을 안고 입 맞추고 엉엉 우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창 33:4).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기도가 무덤을 향하여 날아가고(요 11:41),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 나사로가 살아나왔습니다(요 11:44). 

아브라함 링컨(A.Lincoln,1809-1865)이 남북전쟁 중 불리한 전세(戰勢)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각료들도 그의 기도에 동참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편이 되어주십시오.’ 그러자 그 기도를 듣던 링컨은 정색을 하고서 이렇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승리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며, 그가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우리 편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분의 편인가? 그분과 함께 하는가? 그분을 인정하는가? 그분께 간구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끝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는 길은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물맷돌을 던지기 전에 기도를 먼저 날리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맷돌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물질입니까? 직위입니까? 달란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부모입니까? 자신감입니까? 그러나 그것들은 물맷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물맷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셔야 합니다. 기도가 먼저 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물맷돌과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나의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시는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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