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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 (요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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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 (요 21:15-17)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시기와 탐욕과 배신과 음모와 무고와 선동과 매수와 허위증언과 정치적 계산과 온갖 폭력이 결탁한 결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긴 시간을 보내신 후 그 위에서 숨을 거두신지 사흘 만에 예수님께서는 그 참혹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 일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래서 위대한 승리입니다. 대역전의 통쾌한 승리입니다. 시기와 탐욕에 대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배신과 음모에 대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무고와 선동에 대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매수와 허위증언에 대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정치적 계산과 온갖 폭력에 대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사탄의 궤계와 거기에 놀아나는 악의 세력에 대해 완벽하게 승리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시기와 탐욕과 배신과 음모와 무고와 선동과 매수와 허위증언과 정치적 계산과 온갖 폭력의 희생이 되어 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면 무자비하고 처절한 복수의 피바람이 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리는 그 모든 보복의 논리에 대한 승리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평강을 비셨기 때문입니다. 수치심과 낙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사람들에게 평강을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가 또한 언젠가는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부활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 우리가 새 몸을 입게 되는 그 부활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우리에게 주님 다시 오실 그날 이전에 이미 놀라운 변화가 일으켜주십니다. 그것은 회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그 다음날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모여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들을 닫아걸고 있는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서신 예수님께서는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요20:19).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에게 평강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못 박히셨던 손과 창에 찔리셨던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손과 옆구리를 본 제자들은 먼저는 예수님이 겪으셨을 고통을 생각하며, 또 그 고통이 자신들의 비겁함과 배신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자책감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아무튼 예수님이 다시 살아 일어나시고 자기들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 때문에 제자들은 그 주님을 보고는 기뻐했습니다(요20:20).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명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신 것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도구들이 될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다 버리고 떠남으로써 상실했던 제자로서의 사명을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잃어버렸던 평강과 기쁨과 제자로서의 사명을 회복시키실 때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디두모라고도 불리던 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요20:24). 예수님이 그들에게서 떠나시고 함께 안 계실 때 예수님을 뵌 제자들이 도마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자 도마는 대답하기를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했습니다(요20:25). 그런데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문들을 닫아걸고 있었고 도마도 함께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는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6-27) 하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도마는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의심 많던 도마에게서는 믿음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으키신 회복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디베랴 호수라고도 하는 갈릴리 호수에서였습니다(요21:1, 14).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신 것은 그가 예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세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예수님은 이미 안 계셨고 대신 거기서 만난 천사가 그들에게 말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막16:7). 

이 갈릴리에서의 새 만남은 일곱 명의 제자 즉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야고보와 요한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을 때였습니다(요21:2).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었고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채 날이 새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호숫가에 나타나신 것입니다(요21:3-4). 예수님께서는 처음 베드로 일행을 만나실 때와 꼭 같은 시간 꼭 같은 장소 꼭 같은 상황에서 다시 그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새벽 미명이라 아직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없나이다.”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런데 제자들이 그 말대로 했을 때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요21:5-6). 

그때 비로소 제자들은 그가 예수님이신 줄 알아봤던 것입니다(요21:7). 육지에 오른 제자들과 예수님은 거기서 떡과 생선으로 조반을 함께 나누었습니다(요21:8-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시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던 때와 꼭 같은 모습으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들에게 가지셨던 뜻 즉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는 뜻이 변함없음을 확인시켜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제자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물고기 잡는 어부의 처지로 돌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당신의 말씀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소명을 상실했던 그들에게 소명을 회복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조반을 같이 나누신 것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삼 년간 나누신 주님과 제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았던 소명과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회복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이 전하는 일입니다. 

제자들과 조반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본문 15절)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다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예수님도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본문 16절).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또 다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자 베드로는 근심하며 대답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은 그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세 번 고백하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지난 일을 뼈저리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그 세 번의 실패를 완전히 만회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와 화해의 손을 먼저 베드로에게 내미신 것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잃어버렸으리라고 믿었을 사랑과 신뢰를 회복 받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내 양을 먹이라.” 하신 말씀은 베드로에게 주님의 신뢰와 그에게 주어진 소명을 확실하게 회복시키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시며 또 베드로로 하여금 같은 대답을 세 번 반복하게 하신 것은 당시 근동지방의 관행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근동지방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권한과 법적 지위를 지닌 책무를 엄숙하게 부여하기 위해서는 증인들 앞에서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일도 베드로에게 엄숙하게 목양의 사명을 주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서 회복되어야 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진 이 감격스러운 회복의 역사가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너무나 주님을 실망시켰습니다. 수없이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주님의 몸이라 할 수 없을 모습을 보였습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지체끼리 싸움도 많이 하며 갈라지기도 많이 했습니다. 가룟인 유다처럼 물질욕에 사로잡혀 주님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할 소명을 잊어버리고 물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던 제자들처럼 세속화되어서 교회 본연의 일을 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 대한 신뢰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그의 사역에 참여시키시려는 뜻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러셨듯이 오늘 우리 앞에 서계시고 우리가 있을 그 어디에나 먼저 계셔서 우리를 만나실 것입니다. 그 부활의 주님에 의해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회복 받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화해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신뢰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소명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명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섬김과 희생의 정신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회로부터의 신뢰와 존경을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되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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