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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 신앙 (행 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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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 (행 2:22-32)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첫 번째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외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행 2:36)"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첫 번째 설교를 하는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다가 어려움이 오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사람입니다. 고기나 잡으며 살겠다고 돌아가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인생이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하면서도 힘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까? 왜 신앙 생활하면서도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습니까? 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지못해 예배에 참석합니까? 왜 예배를 드리면서도 아무런 감격도 감동도 없습니까?  부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영원한 나라가 있고 곧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산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까?  성경의 말씀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화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이 말하면 잘 믿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전문가가 나와 채소가 좋다하면 무조건 채소를 먹습니다. 걷기 운동이 좋다고하면 만보기가  불티나게 팔립니다.  비타민이 좋다고 하면 약국에 비타민이 동이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의하여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이론에도 불구하고 부활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증거가 많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빈무덤은 전설의 산물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역사적 자료들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성경은 그 빈 무덤을 여인들이 발견했다고 증거하는 점이 성경의 신빙성을 뒷받침해줍니다. 여자들이 믿을만한 증인들로 간주되지 않던 문화적 상황에서 만일 꾸며서 쓰려고 했다면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 빈무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무덤 자리는 제자들뿐 아니라 적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즉각 직접 조사해 볼 수 있었습니다. 

넷째, 당시 로마 지도자는 물론 유대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시신이 여전히 무덤에 묻혀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두려움에 뿔뿔히 흩어져 달아난 제자들이 로마의 군인들이 밤낮으로 지키는 무덤에서 시신을 훔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다섯째, 바울같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사람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처럼 의심을 품고 있던 이들이 회심하고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다닌 일을 부활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십자가 처형이 발생했던 바로 그 도시에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교회가 기적적으로 출생하여 들불처럼 급속도로 번져나갔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많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부활신앙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흔들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권능에 대한 승리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부활절은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고 승리하신 날입니다. 인류에게 생명의 빛을 던져 준 날입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신 날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날입니다. 회의가 변하여 확신이 되는 날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이 되는 날입니다. 무능력한 삶이 변하여 능력있는 삶으로 향하는 날입니다. 증오가 변하여 용서가 되는 날입니다. 어두운 죽음이 변하여 밝은 생명이 되는 날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부활을 믿습니까? 부활을 믿으면 여러분에게도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모두 확실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지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1. 부활 신앙을 소유하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28)

오늘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부활을 증언한 후(22-24) 바로 이어 다윗을 예로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미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하여도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삽니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부활을 믿고 살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그날에 다시 살리시고 다시는 죽음이 없는 그 나라로 인도하실텐데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기쁨이 가득한 삶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부활절아침인데도 아직도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살 그 나라를 보고 기쁨이 회복되기기 바랍니다.

구기자 전설을 아십니까? 한국 남자들이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어깨가 축 늘어지고 얼굴이 다 어둡고 일그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약을 잘 못 먹어서 라고 합니다. 그 한약에 구기자가 들어가서 그렇답니다. 다 구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는 생기가 돌고 어깨를 쭉 펴고 얼굴을 활짝 피고 활기찬 삶을 살더라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아내에게 "무엇을 먹였겠습니까?" 물어 보니 [피자]를 먹고 그렇게 되었답니다.
  
오늘 부활절입니다. 얼굴이 활짝 피고 기쁨으로 충만해지기 바랍니다. 모든 근심 걱정 부활하신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근심한다고 머리 한치 자라게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6:22)"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살면 그 누구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2. 부활 신앙을 소유하면 소망이 충만하게 됩니다(26). 
  
다윗은 부활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비록 자기는 이 땅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소망입니다. 26절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진 다윗의 신앙 고백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마음이 기뻐합니다. 입술이 즐거워합니다. 육체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있습니다. 영혼은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않고 썩음을 당치 않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다윗의 얼굴은 희망으로 빛났습니다.  

북한을 자주 다녀오는 어떤 목사님이 북한에서 당의 고위층 인사를 만났는데 "당신이 우리를 열심히 도와주는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하여서 "제발 그리스도인들 잡아 죽이지 좀 마시오. 지난 해에도 수 십명을 처형했다면서요? 그리스도인을 색출하여 죽이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지원을 하겠소." 했답니다. 그러니까 "그건 안됩니다."  "왜요?" "가장 지독한 반동입니다." "어째서요?" "예수쟁이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상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어찌나 부활신앙으로 무장되었는지 하나같이 어서 순교당하여 천국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늘의 소망이 넘칩니까? 부활을 기대하며 마음에 거룩한 희망으로 가득하여 눈빛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까? 
  
어느 부활절 무렵, 영국의 한 마을에 목사가 새로 부임을 해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새로운 목사의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며 하나 둘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어머니를 여읜 소년과 그 소년을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지요. 어느 날, 소년은 소년의  친구와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에 둘이 타고 있던 배에 금세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등대지기였습니다.
  
등대에서 바라보다가 아들이 탄 배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가까운 곳에 매어둔 보트에 몸을 싣고 아들이 있는 쪽으로 힘껏 노를 저었습니다. 아들에게로 갔지만 아버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아들이 탔던 배는 뒤집혀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고, 자기가 탄 보트에는 한 명 밖에 더 태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을 모두 태운다면 배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아들의 친구는 포기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손을 거두었습니다. 아들은 놀란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미안하다... 너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네 친구는 아직 주님을 안 믿잖니..."
  
아들은 아버지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띄었습니다. "그래요.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지는 배에 아들의 친구를 태우고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있는 힘껏 육지까지 노를 저어왔습니다.
  
목사의 설교는 끝이 났고, 그의 눈은 촉촉히 젖어 있었습니다. 찬송가가 시작되는데 교회 뒤쪽에 앉은 동네 불량배 몇 명이 자기들끼리 소곤거렸습니다. "뭐야, 저런 이야기. 다 지어낸 거잖아."  "누가 믿어." 
그때 그들의 뒤에 앉아서 그윽한 눈으로 설교를 듣던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나직히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네. 젊은이들. 내가 그 아버지고, 저기 서 있는 목사가 바로 내가 구한 아들의 친구라네."

3. 부활 신앙을 소유하면 확신에 찬 증인이 됩니다(36).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이제 그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일평생 살았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셧느니라'고 말씀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37절 보십시오. 마음이 찔렸습니다. 

41절 보십시오. 3000명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부활의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통해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으로 삶의 원동력을 삼겠습니까? 무엇에 끌려 살겠습니까? 
  
지나온 과거에 억매여 인생을 허비하겠습니까?  두려움에 끌려 다니며 살겠습니까? 물질의 욕심에 끌려다니며 인생을 허비하겠습니까?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에 끌려 다니며 인간의 노예로 살겠습니까? 잠시 잠깐 후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납니다. 인생이란 풀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자식에게 평생 붙들려 살겠습니까?   너무 내 자식 내자식 하면서 근심 걱정으로 인생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슴을 조금 넓게 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며 부활의 증인으로 한 평생 헌신하다가 주님 만났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독일 하바노시 공동묘지에는, 굉장히 큰 화강암과 대리석을 덮개로 하여 시멘트에 튼튼한 쇠고리를 걸어 놓은 묘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한 여인의 무덤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여인은 유언하기를, '부활이 있더라도 무덤에서 일어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해서 그녀의 묘를 견고히 만들었던 것입니다. 비석에 새긴 글은 "이 무덤은 결코 열지 못하리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씨 한 알이 무덤의 돌 사이에 떨어져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땅 속에서 흙 사이로 돌을 밀고 나왔습니다. 줄기가 커지기 시작하자 그 큰 돌바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결국은 쇠고리가 풀어져 버렸습니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씨알이 나무가 되어 큰 돌을 밀어 버렸던 것입니다.
작은 씨 안에 생명이 어느 날엔가 무덤 속에 있는 육체들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나타낸 게 아닐까요? 바닷속에 빠져 죽었던 사람도 살리시고, 화장되었든지 어떤 방법으로 죽었든지 죽어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살리실 그런 능력 말입니다.

부활신앙을 소유하면 그런 생명의 씨앗이 여러분안에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어떤 강한 권세와 저주의 사슬도 끊어버리는 강력한 능력이 여러분안에서 역사합니다. 여러분, 부활신앙을 소유하고 기쁨이 충만하며 소망으로 빛나는 그리고 부활의 예수님을 삶속에서 만나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 강력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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