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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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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요 20:19-23)

오늘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맨 먼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먼저 우리 각자의 심령에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졌습니다. 인봉한 돌이었습니다. 그리고 경비병들이 그 앞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은 무덤에서 옮겨지고,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가 예수님의 몸을 쌌던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전혀 세마포를 푼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그대로 세마포 밖으로 빠져나오셨던 것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증거들만으로도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더 직접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몸소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최소 열한 번 이상, 그리고 적어도 오백 명 이상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경우가 세 번 나옵니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후, 예수님은 특별히 도마를 위해서 또다시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신 것은 그가 예수님을 몹시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그들을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도마에게 보이신 것은 그의 믿음을 돈독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듯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내용입니다. 지금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가리킵니다. 그 날은 안식 후 첫날, 그러니까 지금의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 부활하신 예수님은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같은 날 저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고 말씀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는지 모른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믿음이 돈독해지고 난 뒤에, 비로소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 되지는 않을까, 우리의 자녀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에 늘 두려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대문도 닫았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방문도 닫았고, 또한 창문도 닫았습니다. 모든 문에 빗장을 든든히 채워서, 아무도 허락 없이는 그들이 모인 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곳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곳의 문을 두드리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또한 제자들도 예수님을 위해 문을 열어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못할 곳은 전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너무 중한 병에 걸려서, 의사들조차 손을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주십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밝히 보며, 예수님의 음성을 똑똑하게 듣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서시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체험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말씀에 행악자는 너무 황송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너무 송구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야단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신 것은 그들의 행동에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요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못 박히신 손이었습니다. 창으로 찔리신 옆구리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비로소 그들이 평강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뜻이었습니다. “내 손과 내 옆구리를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53:5 말씀처럼, 예수님이 징계를 받으시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평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오사 그들 가운데 서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보이시는 못 박히신 손과 창으로 찔리신 옆구리를 보았습니다. 그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본문 20절 후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들에게 있던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주십니다. 우리의 심령 깊숙한 곳까지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서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평강을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밝히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날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을 뵈옵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늘 큰 기쁨 속에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리고는 맨 먼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신 것은 그들에게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평강을 얻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또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다시 한 번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맨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또한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하셨을까요? 제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평강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채로 지내야 합니다. 그는 성령님도,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평강을 받는 것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오직 예수님만이 평강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다시 한 번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그들에게 보내셨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본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강입니다. 

우리가 받은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고후5:18 전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우리가 받은 평강은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고후5:18 하반부 말씀입니다.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직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고후5:20 말씀을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한 마디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대사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갖고 있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대사로 보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사로 해야 할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자신의 공로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평강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대사로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대사로서, 화목하게 하는 사명에 충성을 다 합시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서, 그들도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합시다. 그리해서 우리를 통해서 구원받는 자의 수가 날로 더해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을 하시고.” 앞 절에 있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앞 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난 뒤였습니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누구나 말을 하려면 숨을 내쉬어야 합니다. 숨을 들이키면서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여기서 예수님이 숨을 내쉬셨다고 표현한 것은 이제 곧 예수님의 입에서 중요한 말씀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마치 예수님은 그 곳에 있는 모든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충만하게 주시겠다는 듯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로 하여금 능히 하게 하십니다. 행1:8 말씀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는 권능을 받습니다. 이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사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16:7 말씀처럼,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시리라는 약속을 재차 밝히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요20:26 말씀처럼, 그 때도 제자들은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성령님을 받았다면, 그들이 함께 모여 문들을 닫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들이 성령님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에 제자들은 모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50일, 곧 승천하신 지 1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들 모두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비로소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는 예수님이 앞으로 곧 그들에게 성령님의 충만함을 주시겠다고 재차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요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권세를 주셨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고 말한다든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네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하고 임의대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뜻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복음을 들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이와 같이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사인 우리에게 이와 같은 권세가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내가 지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을까요?”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고작 이와 같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글쎄요. 죄를 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내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그저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라야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대사라 하더라도,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대사로 보내시면서, 죄 사함의 권세를 우리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의 대사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도 주셨고, 죄 사함을 선포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이와 함께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셔서, 지금도 변함없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서셔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서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밝히 나타내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자신을 밝히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자신을 밝히 나타내시는 예수님을 뵈옵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사로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 화목케 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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