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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자라는 부활의 씨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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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부활의 씨 (고전 15:50-58)  

역사상 부활한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있지만 신의 몸으로 부활한 사람은 만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활은 개념으로 그칩니다. 북한에 사는 사람에게 남한의 풍요와 자유를 말해주어도 이해되지 않음과 같아요. 그래도 계속 듣고 적용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미 그 수준의 삶을 맛볼 수 있어요.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승리하고 있어요. 승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승리입니다. 구원이기도하고 부활이기도 해요. 하나님이 예수를 주셨기에 바울은 항상 사용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바울처럼 하면 됩니다. 승리입니다. 

1. 부활을 사모하라 

돈 버는 사람은 돈 버는 재미로 권력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 재미로 연애하는 사람은 연애 재미로 세월과 돈, 정력을 씁니다. 윤리 도덕 다 무시하고 사람들 눈물 나게 만들며 덤벼듭니다. 그러나 그 모두 잠깐의 즐거움만을 줍니다. 장차 올 영원한 시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 두려움을 영혼이 느끼기에 더욱 몰두합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한 무덤에 레닌의 방부 처리된 관이 있어요. 쓰인 글은, “그는 모든 사람,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구세주였다!” 완전 거짓말입니다. 또한 글의 시제는 과거입니다. 다 끝났어요. 세상사람 다 그래요. 누구나 부자 같고 왕 같아도 너무 짧고 과거로 됩니다.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었어요. 

장차 올 세상과 부활을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면 다 이렇게 망합니다. 자궁이 천국처럼 좋아요. 근심 걱정 없어요. 탯줄 끊고 나오는 게 죽음입니다. 춥고 덥고 힘든 세상으로 나갑니다. 여기는 영원의 태입니다. 제대로 성장해야 다음 세상에서 잘 됩니다. 외치세요. “사망아, 나는 네가 안 무섭다. 부활을 가졌기에 나는 죽어도 산다.” 

어느 가게에 갔더니 문을 닫았어요. “내부수리 중.” 여러 날이 걸렸어요. 어느 날 문을 엽니다.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좋은 물건으로 가득합니다. 죽음도 그래요. 곧 내부수리 들어갈 분들 많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문을 열 때는 너무도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영광 말로 다 못해요. 

최고로 좋은 것,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무엇이든 떠올려 보세요. 부활과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사모하고 숭배하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영원한 것들을 바라보며 사용하라고 주신 교재입니다. 돈, 권력, 사랑의 본체인 부활과 천국을 사모하세요. 생각만 하고 있어도 이미 나는 강하고 존귀합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2. 부활을 키워라 

부활하신 예수가 나의 부활입니다. 개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부활이 커지지는 않아요. 내 부활을 크게 하는 존재는 나뿐입니다. 아기가 자궁에 아주 작은 생명체의 씨로 시작합니다. 자랍니다. 심장이 뛰고, 뇌도 눈도 내장도 생깁니다. 내 안의 부활도 그래요. 자라나고 느껴져야 합니다. 

어떻게 자라날까요? 사용해야 성장해요. 운동할수록 근육이 생기는 것과 같아요. 부활을 사용하면 그 힘으로 삶이 잘 됩니다. 내 안의 구원이신 예수 힘으로 사는 겁니다. 공부도 사업도 가정도 교회일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면 일의 차원이 달라져요. 그럴수록 부활도 더 크고 많아집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도 지배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하고 삽니다. 대화하고 문자 보내고 음악 듣고 물어봅니다. 잠 잘 때도 같이 있어요. 그런 친구 그런 도우미가 없어요. 만능일까요? 병 고치나요? 돈을 주나요? 보호해 주나요? 용량도 파워도 실력도 한계가 있어요. 그래도 전적 의지합니다. 스마트폰만큼도 예수를 사용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아요. 

성경은 예수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구원이요 부활이요 보혜사입니다. 보호자요 변호자요 상담자요 도우미요 위로자여요. 항상 함께 있는 절대 믿을만한 친구입니다. 스마트폰은 그림자의 그림자도 안되요. 그런데도 별 도움을 못 받는 건 왜 그럴까요? 몰라서 그래요. 저도 스마트폰 별로 못써먹어요. 주로 전화밖에 할 게 없어요. 

예수는 구원이고 생명이고 건강이고 부입니다. 기쁨이고 감사고 감동이고 성령이고 천국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가 부활입니다. 부활을 이룬 신이신데 내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그를 모시고 있어야 그 날에 부활의 몸을 받을 수 있어요. 그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부활은 상상이 아니에요. 지금 내 안에 자라나는 씨입니다. 


3. 부활을 존귀하게 하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 바울의 소원이 여기 나타납니다. 자기 몸으로 삶으로 부활 곧 예수가 존귀해지는 겁니다. 

서울구치소에서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 간증에 유두영 이야기가 나옵니다. 잔인한 살인범으로 늘 소름이 끼쳤답니다. 이런 인간도 믿을까 했는데 성령이 변화시킵니다. 사형집행 날이면 누구나 안 가려고 발버둥 치며 대소변을 보며 혼이 나갑니다. 그는 예수 믿고 전도자가 됩니다. “죽을 준비 돼 있어?”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결국 사형장으로 갑니다. “할렐루야”를 연발하며 지나가는데 “두영아, 잘 가라” 하니 당당해요. “예, 장로님, 먼저 갑니다.” 전신에서 풍기는 영적권세에 흠칫 물러섭니다. 소장이 인적사항과 죄상을 읽습니다. “부탁합니다. 그 악한 죄는 하나님 모를 때 지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8년 살았는데 용서 받은 몸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임종예배하고 요한3:16 암송하고 장기를 기증합니다. 유언 물으니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예수 믿고 부활하십시오.” 올가미를 겁니다. 어디서 찬송소리가 들리니 그였어요. “하늘가는 밝은 길이.” 모두 감동되어 울었답니다. 사형수도 이럴 수 있다면 평생 예수 믿은 우리는 그 영광 말로 다 못합니다. 부활을 믿고 살수록 더 그래요. 

삶은 기회요 심는 대로 나와요. 예수 위해 몸인 교회 위해 헌금하세요. 영원히 억만 배로 저축됩니다. 세상에 많이 쌓아두면 뭐합니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는 다 이겨요. 예수 때문입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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