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화해 (창 32:24-32)

첨부 1


화해 (창 32:24-32)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중략)…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세기 32장 24∼32절

인간은 아담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반드시 짐승을 잡아 피를 제단에 뿌려야 일시적으로 죄악이 덮어져 하나님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몸 찢기고 피 흘리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의 단절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단절을 화해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죄의 담을 허물어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가족들의 단절과 화해에 대한 것입니다.

1. 원수 된 형제 야곱과 에서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 쌍둥이가 바로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들은 자라면서 서로 경쟁하고 갈등과 다툼이 대단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장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가문에 내리는 복을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장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단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에서와 야곱은 성격도 매우 달랐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야곱은 욕심쟁이고 꾀가 많고 여러 가지 재주가 있어서 어머니를 많이 도왔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사나이답고 물질에도 별 관심이 없고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아버지와 더 가까웠습니다. 하루는 에서가 산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데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만 달라고 간청하자 꾀많은 야곱은 “형님의 장자의 명분을 내게 주면 한 그릇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주겠다하고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5장 33절로 34절에 보면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샀습니다만 그 다음에 진짜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도 어머니가 야곱의 편을 들어서 축복받게 한 것입니다. 야곱을 위해 어머니 리브가는 꾀를 내었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운 남편 이삭을 속이기 위해 리브가는 에서가 잡아온 것과 같은 들짐승의 맛이 나는 음식을 만들고 야곱의 팔에 양털을 덮어서 에서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에게 “형 에서가 없을 때, 들어가서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도와주니 야곱은 결국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형인 에서가 받아야할 장자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나중에 에서가 그것을 알았을 때 야곱은 이미 그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간 후였습니다. 

야곱은 20년 세월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 20년 동안 형 에서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원한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도 아버지의 축복도 야곱에게 빼앗겼고,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가 연로한데 늙어가는 부모도 돌보지 아니하고 20년이나 집을 떠나 외삼촌 집에 있으면서 안부 한번 전해 오지 않는 동생 야곱이 정말 괘씸하고 미웠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이 오면 단칼에 베어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원래 꾀가 많은 놈이기 때문에 그냥 오지 않고 군대를 거느리고 올거야’라고 생각하고, 형 에서는 400명의 군대를 훈련시켜 야곱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2.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2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이제는 같이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부자가 되어서 그의 짐승떼들이 외삼촌의 짐승떼보다 많아지게 되자 외삼촌의 자식들이 시기하고 외삼촌 얼굴의 낯색이 변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큰 부자가 된 것은 외삼촌과 계약을 맺을 때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계약을 맺어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많은 짐승 떼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해서 고향산천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향산천으로 돌아와서 얍복강을 건널 때였습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서 형에게 자기가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통보를 하라고 하니 종들이 얼굴이 새빨개져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400명의 무장한 에서의 군인들이 형을 배반한 동생을 죽이려고 출발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2장 6절에 보면은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꾀가 많아서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먼저 그는 자기의 처자들과 짐승들을 얍복강 건너로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만 강 반대편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야곱의 생각은 ‘정말 형이 나를 죽이려고 생각한다면 처자를 칼로 칠 것이다. 그리고 내 소유를 칼로써 빼앗을 것이다. 만일 그러면 나 혼자만이라도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자기만 살면 되지 처자들은 다 죽어도 괜찮다는 아주 약삭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참 몰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섬기는 그 부인들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자기만 살고 가족들은 다 죽어도 좋다고 하면은 안되지요.

형 에서는 20년의 원한이 마음속에 상처를 입혔는데 그 원한을 풀 기회가 왔습니다. 더구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으면 형제간에 피투성이 살상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는데 형제의 복수전을 막고 중재해 줄 부모님마저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중재에 나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인 천사였을 것입니다. 천사는 야곱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들을 책임지고 형 에서를 찾아가 회개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천사는 야곱에게 얍복강을 건너라고 하고 야곱은 거부하니 서로 씨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동틀 때가 되어 천사도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는데 야곱이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야곱이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놓아주질 않으니 천사가 손을 들어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만 허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일어나서 걸으려고 하니 그게 됩니까? 자꾸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달아나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천사가 묻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이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천사는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고 바꿔 불러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씨름할 때 우리가 지면 이긴 자가 되고 이기려고 하면 지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무조건 져야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해 사람이 이기려고하면 복은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 주시는 것은 운명을 바꿔 주시는 중요한 전통입니다. 아브람에서 많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많은 민족의 어머니’인 사라로 이름을 바꾸신 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평소에 많이 부르고 늘 적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이 이름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이름도 잘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이 천사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면 될 것인데 야곱이 자꾸 자기 고집만 부리니까 천사가 환도뼈를 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야곱은 도망도 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형 에서의 400인의 군대가 와서 처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를 찾아올 때 두 다리가 성하면 도망칠 수가 있는데 이제 환도뼈가 위골되어 도망도 못갈 처지가 되자 그가 변화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받고도 변화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환경적인 징계가 내려와서 결국 우리를 순종하게 만드십니다. 야곱은 환도뼈를 다치지 않았으면 절대로 형 앞에 거꾸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천사와 씨름

야곱은 천사와 씨름해서 이길 것 같았으나 결국 환도뼈가 위골되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로 25절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은 이기주의적인 자기중심의 삶을 깨뜨리지 않았으나 다리에 상처를 입어 걸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깨어졌습니다. 이름까지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걸을 수 없게 된 야곱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제 그는 ‘변화를 받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 뜻대로 하다가 죽을 것이냐?’하는 양자택일에 상황에 놓였습니다. 야곱으로 남아 있다가 죽을 것이냐? 이스라엘이 되어 변화를 받아 살 것이냐? 변화될 것이냐? 고집부리다 죽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통해 징계를 내리실 때도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고 변화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받고 결국 파멸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드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로 32절은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 앞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고통을 통해 야곱의 인생에 큰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그의 주인의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내가 주인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는 주인의식이었으나 다리를 다치고 난 이후에는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마음의 변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도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면 모든 책임을 홀로 걸머지고 고통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되시면 모든 짐은 하나님께서 맡아 주시고,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여 마음에 결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를 쉬게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기고 피흘린 것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돌아오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스스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의 죄와 불의, 질병과 저주, 그리고 죽음까지도 그 분이 책임지시고 십자가 보혈로 청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면 우리 스스로 책임지고 그 대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내가 변화되면 상대도 변화된다

41장 14절은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은 꾀가 많은 여우같은 사람이었는데 환도뼈가 위골되어 어그러지자 버러지같이 된 것입니다. 마치 굼벵이처럼 꿈틀꿈틀할 수밖에 없는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제 버러지와 같은 존재는 자기 스스로를 도울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져 버러지처럼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살아서 팔딱팔딱 뛰고 하나님께 저항하고 고집을 부리면 자기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되기 때문에 온갖 시련과 고난을 덮어쓰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버러지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짐을 져주시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은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삶을 살았다면 오늘 이 시간에 야곱처럼 회개하고 주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그러운 용서와 참된 자유를 주시고 스스로 책임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 얍복강을 건너 가족들 앞에 자기가 섰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군대를 거느리고 뛰어오자 그 앞에 일곱 번 엎드려 절을 하면서 나갔습니다. 그 당시 일곱 번 절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종의 되겠다는 항복을 의미합니다. 즉, 일곱 번 무릎을 꿇어서 절을 하면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처분대로 하소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짐승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선물꾸러미를 만들어서 형에게 보냈고 형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창세기 33장 3절로 4절에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발로 일곱 번이나 절을 하고 자신에게 선물을 가지고 찾아오는 동생을 보자 형 에서의 마음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측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형 에서가 동생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20년 동안 품었던 원한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순식간에 변화시켰던지 죽일 듯한 원한이 측은 한 마음과 동정으로 변해 동생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조건을 세워놓고 서로 밀고 당겨서 절대로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측은히 여기고 깨어져서 눈물을 흘리면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깨어져서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주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삶 가운데 줄줄이 이어서 나타납니다. 닫힌 문이 열리고,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고, 저주는 축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화의 기적을 통해 은혜를 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1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목을 얻은 사람으로서 화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화목의 직분’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죄인을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놀라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되어 온유하고 겸손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던 야곱과 같이 우리도 그런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 변화를 통해 야곱이 형의 적개심을 무너뜨리고 화목하게 된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적개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인 우리는 모두 거대한 변화를 마음속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받은 것입니다. 영혼이 잘됩니다. 범사에 잘됩니다. 강건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병에서 고침 받고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공합니다.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보좌에 예수님과 함께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복이 넘칩니다. 그러므로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믿고 기대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의 원한관계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으로 변화되어 서로 사랑으로 용납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이 변화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그들도 변화되도록 축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세상에는 진정 스스로 잘난 사람도 없고 스스로 위대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위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받은바 되지 않고, 거꾸러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를 항상 함께 지고 그 생명에 의지해서 사는 우리들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바로 지금 성령으로 운행하셔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