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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십자가 (마 27: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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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마 27: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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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ing ServicesMore Text 오늘은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Palm Sunday)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튿날에는 명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그를 맞으러 나가서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 (요 12:12-13)

그러나 오늘은 또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고난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구체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고난 주간을 “Passion Week"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주간 중에 집중적으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기 위함이고, 또 이 기간을 다른 영어표현으로 "Holy Week"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도들은 이 한 주간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의 상징이자,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의 죄가 얼마나 중하였던 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십자가는 흉악범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죄를 진 사람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죄의 대가(代價)가 죽음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죄인인 우리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죽음”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2) 둘째로, 십자가는 우리가 달려 죽어야 할 그곳에 예수께서 대신 달리셔서 우리들의 죄 값을 치러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부활절 칸타타 중에 “증인들의 고백”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바라바”의 고백이 있습니다. “바라바”는 흉악한 범죄자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처형을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자, 예수를 풀어줄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를 따라서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 주랴?” 빌라도는 군중들이 당연히 바라바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 “바라바”는 당대의 흉악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중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바라바”는 얼떨결에 놓임을 받았습니다. “바라바”는 군중들에게 떠밀려 골고다 언덕으로 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는 예수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대체 저 사람이 누구요? 저 사람은 무슨 큰 죄를 진 것이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대답합니다. “나도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잘 모르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저 사람은 당신이 달렸어야 할 바로 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요.” 우리들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 곳에 내가 달렸어야 했었는데”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십자가는 우리들을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범하지 않으셨습니다.”(히 4:15) 

죄 없으신 분이 최고의 죄목에 해당되는 십자가의 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극진히 사랑하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롬 5:7-8)

결혼식에서 부부는 사랑의 상징으로 반지를 교환합니다. 반지를 교환할 때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These rings are the outward visible sign of the inward and invisible love.” 그리고는 그 사랑의 상징인 반지들을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십자가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무한한 사랑이 가장 구체적인 상징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십자가를 귀하게 여깁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반지를 볼 때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듯이,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넷째로,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화목 시켜 주는 “화해의 다리”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롬 3:23)

죄로 인하여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강과 같은 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강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다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십자가의 다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십자가)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십자가),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려는 것입니다.(엡 2:13-16)

(5) 다섯 번째로, 십자가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승리(역전극)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역전극을 펼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끝을 냈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행 2:36)

하나님의 이러한 역전극은 십자가의 믿음을 갖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삶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약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십니다. 우리도 그의 안에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아나서, 여러분을 대할 것입니다. (고후 13:4)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십자가에는 처형당하시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회가 사용하는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가톨릭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하지만, 개신교의 십자가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십자가가 잘못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들을 위해 대신 고통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는 역전극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지금도 역전의 기적을 일으키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입니다.

(6) 여섯 번째로, 십자가는 우리들의 옛사람이 죽어야 할 곳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것이,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압니다. (롬 6:3-6)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 2:20)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갈 5:24)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탕에 뒹군다"라는 성경이 말씀(벧후 2:22)이 있듯이, 우리들은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자꾸 다시 옛사람의 옷을 입습니다. 사탄이 자꾸 우리가 벗어버린 옛사람의 옷을 찾아서 우리들에게 다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다시는 그것을 찾아다가 우리들에게 던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7) 일곱 번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십자가는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는 능력입니다. 없는 자를 풍성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추한 자를 정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천한 자를 높여 주시는 능력입니다. 병든 자를 일으키시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을 때에 우리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8)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일깨워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여러 차례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제자의 길”과 연관 시켜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 10:38-39)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성화의 과정”중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화의 과정”은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육신이 하자고 하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용어를 빌리자면, “성령의 소욕”대로 살기 위하여 “육신의 소욕”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개인적인 나의 야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꼭 해야 하는 것(have to do)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want to do)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이기적인 생각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얻기 위하여 땅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구별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삶의 무게나 짐”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삶의 무게나 짐”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지고 가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십자가”입니까? 아니면 “삶의 짐”입니까? 일터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야 하는 것이“십자가”입니까? 아니면 “삶의 짐”입니까? 그것들은 “십자가”가 아니라, “삶의 짐”들입니다. 

또한 우리는“십자가”와 “책임”을 혼동해서도 안 됩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십자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에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남들과의 싸움에서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자존심을 누르고 인내하며 손해를 볼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크리스천들이기 때문에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라고 가르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멍에가 곧 우리들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감당해야 할 책임이 우리가 지고 가야 할 멍에요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그 멍에를 메고 가면 오히려 가볍게 느껴지고 복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기 쉽게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십자가의 의미를 다 포함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C: Confirming God s Love (하나님의 사랑 확인)
R: Reversing Power of God (역전극인 승리의 상징)
O: Obedience (제자의 길: 순종) 
S: Sin (우리의 죄를 상기시킴) 
S: Salvation (구원의 다리)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마다 이러한 귀한 의미들이 항상 새롭게 깨달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위로 받고, 새 힘과 능력을 얻으며, 참 제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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