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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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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고전 15:50-58)

올해 부활절은 특별한 감동이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을 준비가 달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주간의 뜨거운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와 성금요일 행사, 청장년연합회, 남선교회 회원들 교회 대청소, 여선교회 회원들의 섬김, 장로님들의 남한산성 전도와 산상기도, 부활절 새벽을 준비하려는 어린이 워쉽팀, 청소년들과 젊은이교회 찬양팀, 성가대의 칸타타 준비, 부활란 전도를 위한 준비 등 부활절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지 않았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면 믿겠습니까? 안 믿는 것이 정상이고 안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한사코 믿으려 하지 않은 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고백하기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겠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무슨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좋은데, 아예 기념일처럼 지키는 것은 또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절은 삼일절이나 광복절 같은 날입니다. 그것은 부활절에 담긴 중요한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밀 하나를 말해 주겠다고 합니다.
51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
솔깃합니다. 무슨 말인데 비밀이라고 할까요?
51절 ...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예수님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에 대하여 그렇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어머님께서 연세가 90이 넘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두 가지를 진지하게 물으시더랍니다. 
첫째는 38년 전 교통사고로 먼저 돌아가신 아버님과 천국가서도 부부로 지내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천국에서는 시집도 장가도 안 가고 다 천사들 같을 것이라 하셨는데 천국에서 아버지와 부부 사이가 아니고 남남 같이 되면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의 남편이나 아내와 천국에서도 또 부부 관계로 다시 사는 것, 그것도 영원히 그렇게 사는 것이 걱정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부활한다는데, 죽을 때 모습으로 부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많이 다치셔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모습으로 부활하면 너무 끔찍할 것 같고, 또 아버님은 53세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90세도 넘으셨기에 죽을 때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다면 부부 사이가 모자 사이 같이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몸이 부활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 몸이 다시 살아? 영원히 산다고?’ 차라리 죽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영생을 얻었으면 되잖아요? 이 땅에서 꼭 다시 이 몸으로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 사람들도 몸의 부활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당시 세계관에 의하면 물질세계는 가장 저급한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체도 물질이므로 저급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이면 됐지 육체 구원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활절을 기념식처럼 여기는 것은 우리 몸의 부활을 진정 사모하며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그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정도로만 알기에 사모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뿐 아니라 우리 몸도 부활할 것을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영혼만 구원받고 몸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영혼과 육신을 구분하는 것은 무서운 이단의 사상입니다.

부활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사는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부활은 몸이 다시 살되,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흔히 ‘나사로의 부활’, ‘야이로의 딸의 부활’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이 다시 살았지만 전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죽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을 때, 멋있고 사랑스럽게 변화될 것입니다. 사고로 크게 다쳐서 죽든 불에 타서 죽든 다시 살아날 때는 건강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상태로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타락 이전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네 가지 없는 것’?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이전과 달랐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벽을 통과하기도 하고 순간에 사라지기도 하셨습니다. 외모도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였을 정도였습니다.
42절에 보니 부활한 몸은 ‘썩지 아니하고’ 했는데, 곧 늙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53절에서는 죽지 않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43절에 보면 부활한 몸은 영광스러운 몸이고 강한 몸이며 44절에 보면 신령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몸은 부활의 몸과는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 몸을 ‘썩을 몸’ 또 ‘약한 몸’ ‘욕된 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지만, 육신은 여전히 약하고 병들고 죄성을 가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소욕으로 인하여 엄청난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탄식하였습니다.

롬 7:15 ...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은 이 갈등 때문에 쓰러지기 까지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위선자 목사의 고통을 아십니까? 저는 위선자요 가증한 자라는 자책감에 몸부림쳤습니다. "자격이 없으면 강단에서 내려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몇 번이고 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탄식하며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사모하는 부활은 외모가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마음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겁고 자연스러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괴롭고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려고 사랑하려고 음란하지 않으려고 욕심을 버리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기쁨이고, 사랑할 자를 사랑하고 해야 할 일이 하고 싶고, 감사하고 기뻐할 일을 기뻐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싫어지면 무엇이 힘이 들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사모할 몸의 부활입니다. 진정한 성화, 완전한 성화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진정 구원이 완성된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겠습니까?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51-52절 ...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것이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이 재림 전에 이미 우리 안에 임하셨습니다.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오순절 성령 하나님께서 마가다락방의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게 하신 부활의 영이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이미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여전히 죄 중에 있지만 더 이상 육신과 죄의 종노릇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오늘 부활절 새벽예배 때, 임향자 교장선생님께서 간증 설교를 하셨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을 전했더니 안 믿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정말이라면 북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성령을 받고, 얼마나 놀랍게 변화되었는지 모른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모든 믿는 자들 안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그 증인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필리핀 이주 노동자 헬렌 자매입니다.
[헬렌 자매 간증]

우리의 몸은 병들고 욕심많고 음란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시는 여러분,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도 완전히 구원받을 때가 옵니다.
부활절은 기념일로 지키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도 부활할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교회가, 나라와 민족이 열방이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중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명령이 있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가 이 땅에 부활의 능력이 임하기를 기도하고, 예배당을 중보기도 센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임재웅목사,“언제까지 6충에서 새벽기도할 것인가?”책망하였습니다.
임재식목사,“선한목자교회에 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줄 아느냐?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중보기도 사명 감당하라는 뜻이다. 깨어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본당에서‘하나님의 나라와 선교완성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통일을 위하여,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성도들의 삶에 부활의 능력이 임하기를 위하여 중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부활절 새벽예배 때, 간증한 탈북 청소년 자매가 기도 요청을 하였습니다. “교회와 믿는 자들이 이 땅의 죄악을 대적하여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탈북 청소년들이 3-4시간 자고 공부하면서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에 빠진 날은 그렇게 안타까와 한다고 하였습니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월요일부터 시작하자!” 
그러나 “조급하지 말라. 충동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이 지나서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활의 능력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간 준비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5월부터 본당에서 새벽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임하기를 중보하려고 합니다. 민족성전으로서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준비기도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120문도가 될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날을 사모하며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온 성도들이 부활의 몸으로 일어나기를 기도합시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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