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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가룟 유다의 배신 (마 2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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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배신 (마 26:14-17)

유월절은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계획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몹시 기다리셨고, 제자들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십니다. 유월절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이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등장하는 부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입니다. 그들은 원래 서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죽이는 방법을 의논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의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 지도자들에게 배신당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어떻게 죽일까?’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유다는 제자 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할 정도로 신뢰할만한 사람이었고, 3년간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차츰 제자의 삶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자신의 이상과 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 공동체의 재정을 도둑질해 갔고, 결국 스승을 은 삼십에 팔아넘기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로 어두워진 온 인류에게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열둘 중에 하나”(3절)라는 표현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 가운데 누구라도 가룟 유다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변화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뜻대로 예수님을 조종하고자 했습니다. 

악한 영은 항상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 성령님과 우리의 관계를 떼어 놓으려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망가뜨리게 합니다. 그런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습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단절 사람 관계의 단절을 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돈 욕심 때문에 그랬다고 해석하기에는 사탄의 계략이 치밀합니다. 

사탄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악한 영은 예수의 신실한 제자들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의 길은 인간적 결심이나 열정만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인간의 열심이나 힘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의 유혹과 시험이 닥쳐올 때 어떻게 그것을 이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일정이 유월절 양잡는 날에 맞춰져 있음을 암시해줍니다. 이는 예수님이 얼마나 유월절을 기다리고 준비해 오셨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에 올라 오셨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셨으며, 함께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특히 유월절 준비과정을 훤히 아시고 이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유월절은 명절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이 세우신 인류구원 계획의 모형이었고, 유월절의 상징이었던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구원을 이루셨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거룩한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우리는 유월절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어린양 되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찬송하자"라는 뜻으로서,유대인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 중 예수의 제자 가룟 유다의 정체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가룟은 유대 남부의 마을 그리욧으로서,헤브론 남쪽 21킬로미터에 있는 그리욧 헤스론을 가리킵니다(수15:25). 이 견해가 옳다면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만 남부 출신으로서,고독한 위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가룟은 헬라어의 시카리오스,곧 라틴어의 시카리우스로서 '자객'이라는 뜻입니다(행21:38). 따라서 가룟 유다는 열심당원 중에도 극렬분자인 암살단원에 속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아버지는 시몬이며(요6:71). 유다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중요한 책임, 곧 무리들의 재정을 맡고 있었습니다(요12:6). 바울이 디모데에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한 바와 같이,가룟 유다는 그 직책 때문에 점차 타락하여 주 예수를 팔게까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느 제자들과 같이 가룟 유다도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신"(눅 6:12~13)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엿새 전까지는 겉보기에 예수님의 충성된 제자였으며 여느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복음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마10:5). 예수님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고 크게 감동하며 예수님을 존경했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셨을 때,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가 열렸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중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였고,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 때 가룟 유다가 말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위선을 아시고 그를 나무라며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예수의 마지막 만찬이 있기 며칠 전에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자리에서 은 삼십을 달아 가룟 유다에게 주었습니다(본문 :14~15절). 

그 당시 은 삼십의 가치는 노예 한 명을 살 수 있는 값이었습니다. 은 삼십을 받은 가룟 유다는 그 때부터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줄 기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배반한 동기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주장되고 있습니다. 

첫째,유다는 열두 제자 중 홀로 남부 출신이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다가 예수님의 신임을 받아 재정을 맡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질투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유다는 열심당원 시몬보다 더욱 과격한 시카리라는 암살단에 속해 있었는데 로마군을 쫓아내고 유대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에게 혁명의 뜻이 전혀 없는 것을 알고 예수를 적들에게 넘기면 예수님도 할 수 없이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알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①유다는 마귀니라 ②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요 13:2),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인간의 마음은 전쟁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육적인 싸움이나 보이는 무력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 13:2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마귀가 심어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눅22:3) 바로, 사단을(요 13:27. 행 5:3)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생각과 기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우리 영혼을 결박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이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4. 잠 16:32) 


끝으로 돈입니다. 하나님이냐? 물질이냐?입니다. 

여기서 물질을 택하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돈은 대단히 좋은 것이다. 부는 힘을 의미하고, 한가(閑暇- 틈, 여가)를 의미하고, 자유를 의미한다." 이는 미국의 시인 로렐의 말입니다. 돈과 재물은 경제적 독립 수단의 기본 수단입니다. 경제적 독립이 안되면 정신적 독립도 안됩니다. 오늘날 돈은 인간의 피요, 목숨입니다. 돈이 없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재물 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망입니다.

그런데 돈에는 마성魔性이 있습니다. 인간이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많은 돈은 젊은이를 타락시킵니다. 황금은 선비의 마음을 시커멓게 만듭니다. 많은 지도자와 인사들이 돈 때문에 감옥에 가고, 인격과 양심이 돈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비극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돈처럼 고마운 것이 없고, 돈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돈을 사모하게 되면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딤전 6:10) 

가룟 유다는 결국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에서 돈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자살과 파멸이었습니다. 

"돈 잃고 사람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돈이 사람을 배신하게 하고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함이 죄요, 배신이요, 불행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어려분!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 믿음의 주요, 삶의 주인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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