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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감격을 회복하라 (눅 24: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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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감격을 회복하라 (눅 24:13-27)

남태평양 한 가운데 괌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섬이 있습니다. 괌에 신혼여행으로 다녀오신 분들도 꽤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괌이라는 섬에 요코이라고 하는 작은 동굴이 있습니다. 1972년 거기에서 한 노인이 발견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속에 짐승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았더니 그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30년 전 제2차세계대전 때에 일본군으로 괌에 왔다가 전쟁이 끝난줄도 모르고 무서워 동굴 속에 갇혀 살다가 3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주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30년 후에서야 그는 구조를 받고 그리고 일본 자기 고향으로 자유의 몸이 되어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30년 전에 끝났지만 이 사람은 30년 동안 전쟁 가운데 살아 갔습니다. 자 이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이미 우리에게 자유가 선포 되었는데 아직도 그 자유의 소식을 듣지 못해서 두려움과 공포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참 답답한 거예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그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혹 아직 동굴에 갇혀 있는 분은 없습니까? 옆에 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혹시 동굴에 갇혀 있지 않으십니까?” 죄와 공포의 동굴에, 죽음과 사망의 동굴에 아직도 갇혀 있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이 증거될 때 우리는 이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가 갇혀 있는 이 죄의 동굴을 뛰쳐나와서 참된 자유의 몸으로 부활 생명의 기쁨을 누려야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러분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오늘 이 아침에 부활 하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뉴스, 오늘 기억해야할 가장 중요한 설교의 주제는 우리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옆에 분들과 인사합시다. “우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인사하세요. “우리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것만 한 백번 했으면 좋겠어요. 왜 종종 잊어버리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자꾸 잊어버리신다니까.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자주 잊어버리신다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꾸 절망하거든요.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거든요. 이것만 기억하면 되는데 안타까운 거예요. 우리 예수님은 오늘 새벽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함으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는 형벌을 가져오고, 형벌은 곧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파멸을 가져오는데 아직 그 부활의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거예요. 예수님의 부활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왜?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이 마지막 말씀이 뭐예요?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 타이” “내가 너의 모든 죄의 빚을 다 갚았다.” “내가 너의 죄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 그러니까 부활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몰라요. 

우리 자막에 로마서 8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의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더 이상 죄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죄에서 자유함을 받은 것 이것이 최고의 승리고 최고의 기쁨입니다. 죄만이 아니에요. 우리를 죽음의 권세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더 이상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분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보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적으로 죽는 것 같지만 영혼은 주님께로 돌아가고 때가 되면 우리 주님이 다시 재림 하실 때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줄 믿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우리에겐 두려운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고린도전서 15장 54절 5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 부활 전에는 사망이 최고예요. 죽음 앞에 장사가 어디 있어요. 왕도 죽으면 끝이예요. 이 사망의 침을 한 번 맞으면 마치 독사에게 물리는 것처럼, 독사의 독이 몸에 퍼지면 끝나는 거예요. 사망의 독이 퍼지면 사망이예요. 그러나 이제는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어요. 왜?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는 그 말씀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사망을 삼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되었어요. 이제는 죄와 죽음이 더 이상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없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이 진정으로 부활하셨다면 저와 여러분의 삶은 과거와는 달라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달라져야 되요. 여러분 사람들도 달라지잖아요. 가난하게 살던 사람은 아끼고 절약하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만은 어느 날 소식을 들으니까 자기 모르던 큰 아버지가 자기한테 유산을 천억을 남겨주었다. 

그러면 예전처럼 그렇게 살겠어요. 라면 봉지 하나 얻으러 다니고 연탄 하나 아침에 꾸러 다니고 그렇게 살겠어요? 그렇게 안 살잖아요. 그 순간부터 삶이 달라지는 거예요. 나는 이제 엄청난 재산의 상속자가 되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천국의 상속자가 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애가 달라져야 되는 거예요. 

더 이상 죄와 절망의 동굴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공포와 두려움의 동굴에서 여러분 뛰쳐나오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너희가 새것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험한 시험과 역경이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새로운 소망과 용기가 넘친다” 시험과 역경이 와도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능히 감당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중요해요. 더구나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거예요.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한 주간을 너무 분주하고 피곤하게 보냈습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한 주간을 너무 분주하고 너무 피고하게 보냈습니다. 토요일에 서재에 앉아서 설교를 준비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꼬박꼬박 졸다가 그만 꿈을 꾸게 됩니다. 참 목사들은 꿈을 꿔도 이상한 꿈을 꿉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세요? 저는 주로 꿈을 꾸면요,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왔는데 원고를 놓고 온거예요. ‘아이고 이거 어쩌나 큰일 났네?’ 막 그러다가 꿈이 깬 적이 있어요. 원고를 놓고 오다니, 물론 원고 없이도 설교를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당황하는 거지요. 또 어떨 때는 막 꿈속에서 전화가 와요. ‘목사님 큰일 났어요. 11시 30분 예배가 시작됐습니다.’ 아! 제가 글쎄 그 때까지 자고 있더라구요. 아 그래가지고 일어나서 옷을 입는데 옷이 입혀져야지요.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자고 나면 산발이 됐는지, 이걸 감아야 하나 어떡하나 막 정신없이 하며 가보면 예배가 이미 끝났대요. 그럼 그렇게 황당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게 꿈이었으니 다행이지 말이예요. 이 목사님들도 종종 꿈을 꾸면 참 신기한 꿈을 꿔요. 

이 미국의 목사님이 졸다가 꿈을 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늘 익숙한 교인들인데 저쪽에 한 남자 분이 전혀 모르는 분이 앉아 계시는 거예요. ‘아 저분이 누굴까? 새로 오신 분인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예배 끝나고 달려가서 ‘누구시냐?’고 알아보려고 했더니 그냥 먼저 가버렸어요. 그래서 못 찾았어요. 

안내 위원에게 ‘아니 그 분이 누구시냐고? 혹시 아시냐?’고 했더니 ‘아! 목사님 그 분 모르세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목사님이 꿈 중에서 깜짝 놀라가지고 꿈을 깼어요. ‘아 우리 예배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는구나!’ 바로 이 회중 가운데 예수님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구나. 그것을 목사님이 새로 깨달았어요. 왜? 지금까지는 그것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목사님이 주일에 그것을 공포했어요. 제가 꿈을 꿨는데 이렇게 신령한 꿈을 꿨습니다. 바로 이 예배의 자리에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앉아 계신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때부터 교인들의 예배 생활이 달라졌어요. 주님이 계신데 내가 성가대 석에서 졸 수 없지! 내가 낙서 할 수 없지. 다른 생각할 수 없지. 예수님이 여기 계시는데 찬양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고 설교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이예요.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의 싱크대 부엌에도 여러분의 침실에도 여러분의 직장에도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보고 계시는데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그런거죠.

여러분 성경에는 우리가 부인 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셨어요. 그래서 절망한 제자들을 만나주셨고 그들에게 사명을 맡기셨고 그리고 저 디베랴 바다까지 가서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어요.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이런 아름다운 흔적들이 성경에 그대로 보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계셨던 일들이 성경에 그대로 존재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텅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공자의 무덤도 그대로 존재합니다. 마호메트의 무덤도 존재합니다. 석가모니의 무덤도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왜? 그분은 부활했기 때문에. 더구나 그 부활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겉옷은 잘 개켜져 머리 옆에 있고 또 예수님이 입었던 옷은 그대로 있는거예요. 

여러분 그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나방이 날아갈 때 그 껍데기를 그대로 두고 속만 쏙 빠져 나온 것 같아요. 예수님이 입었던 옷은 그대로 있는데 예수님만 쏙 빠져나온 이것은 도저히 벗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건데 예수님은 신령한 몸이라서 그 옷을 그대로 두고 그대로 빠져 나온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빈 무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더군다나 그 빈 무덤은 큰 돌로 막혀 있어서 몇 십 명의 장정이 거기에 동원 되지 않으면 그것은 옮길 수가 없어요. 더구나 빌라도의 인봉이 거기에 붙여 있기 때문에 누가 건드릴 수 없어요. 더구나 철통같은 로마 군인들이 4*4, 16. 16명이 교대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겁 많은 제자들이 거기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 빈 무덤 이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본 제자들은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어서 그들은 산산이 흩어져 버립니다. 다락방에 가서 문을 잠그고 숨어서 주위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제자들은 고향으로 낙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 다시 몰려들고 다시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 받고 세계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그들은 순교를 기꺼이 기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의심 많았던 도마! 나는 예수님을 만져 보지 않고는 안 믿을거야! 하던 도마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고 그분의 상처에 손을 대보고는 변화되어서 그는 인도로 돌아가서 도마 교회를 세우고 거기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흔적이 거기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거짓된 것을 위해 여러분의 생명을 바칠 분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요? 이익이 될 때에는 몰려들었지만 이익이 안 될 때에는 모두 흩어져 버린 거예요. 그러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들의 인생이 달라진거예요. 

제가 오늘 새벽에 여러분에게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 남자 분들에게 제가 싫은 소리를 좀 했습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그 컴컴한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남자였습니까? 여자였습니까?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 기도는 여자가 더 잘 나오는 줄 알아요. 여자 분들이 새벽에 나오기가 더 무섭고 두려운데 주로 새벽 기도는 여자가 나오지 남자들은 잘 안 나옵니다. 

그 많은 제자들은 한 사람도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열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 때문에 자유함을 얻은 그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무덤을 찾아서 향품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 보세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자입니까? 여자 입니까? 여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 당당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 수제자들은 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나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두려워 다 도망가 숨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감한 이 믿음 좋은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이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떠날 수가 없어서 거기서 슬피 울다가 결국 주님을 만난거예요. ‘마리아야!’ 하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음성을 듣고 처음에는 동산지기인줄 알았지만 ‘아 이분이 예수님이구나, 라보니여!’ 선생님하고 여인은 부르게 됩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얼마나 겁쟁이 입니까? 저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진짜 겁이 많습니다. 저는 어떨 때 보면 저희 집 사람이 저 보다 훨씬 더 용감한 거 같아요. 남자들이 훨씬 겁이 많아요. 더군다나 남자들이 50대만 넘으면 여성 호르몬이 생겨가지고 더 겁이 많아진대요. 그래서 큰일은 다 부인들이 한 대요. 50대만 넘으면 부인들이 다 집안일을 주관하지 남자들은 그저 의견만 묻지 뭘 더 못해요! 왜요? 여성들은 더 남성다워지고 남성들은 더 여성다워지거든요. 

자 이런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위해서 감히 복음을 들고 나서겠습니까? 못하거든요. 그건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우리 누가복음 24장에서 글로버와 다른 한 사람의 제자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자 이 사람들 아마 12명의 제자 안에는 못 들고 70명의 제자 안에는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이 기대하던 예수님이 아니었어요.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뭔가 큰 출세를 하고 왕이 되시고 우리는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줄 것 같았는데 그분은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부끄러운 모습으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흉악한 강도가 달리는 그곳에 예수님이 함께 달리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들은 너무 실망했어요. 3년 동안 너무 헛고생 했네. 더구나 그들이 바랐던 메시아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여겼노라. 우리는 그 분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실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는 겁니다. 제자들의 기대가 잘못된 거예요. 그들은 성경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구원하시고자 오신 분이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려고 오신 분이 아니에요. 그런데 제자들이 오해한 거예요. 그들의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들은 실망을 했어요. 더구나 그들은 성경에 무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성경을 가르쳐주셨는데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난 위에 영광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은 고난이 있는 줄을 몰랐어요. 그래서 영광만을 기대했어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제자들의 무지에요. 이미 구약성경에서는 이 땅에 오신 메시야가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부활하실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시편 22편 다윗의 시를 보면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라고 예언 돼있어요.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그들은 영광만을 바라봤어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영광 뒤에 고난이 오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당장 복 받는 것이 아니고 복도 받고 축복도 받지만 우리에게는 고난도 있어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이겨낼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부활의 영광도 있고 천국에 들어가는 기쁨도 있는 거예요. 신앙생활에도 고난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 없는 영광만을 기대했기 때문에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보지 못했어요. 왜 눈이 가려졌습니까? 욕심으로 욕망으로 아집으로 지나친 슬픔 때문에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했어요. 어찌보면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는 다른데 관심이 있어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여러분들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해 계시고 여러분들과 동행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조금 더 예민해야 해요. 우리가 세상 관심에 꽉 차 있을 때는 우리의 눈이 욕심으로 가려져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깨닫거나 볼 수 없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 다급하시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 이르시되 미련하고 마음에 더딤있는 자들이여. 하면서 모세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선지자에 대한 모든 글로 시작해서 예수님에 관한 메시야에 관한 모든 성경을 자세하게 풀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더냐. 성령의 감동 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음을 나중에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너무 친절하게 말씀을 주니까 고마워서 지나가다 보니까 어두워지고 여관이 있는데 선생님 저희하고 같이 가서 좀 주무시고 식사도 함께 하시면서 좋은 말씀해주시죠. 예수님과 함께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둘러 앉았는데 그 동행하시는 분이 빵을 떼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그 손길을 통해서 아 이분이 예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았어요. 그들의 눈이 밝아졌어요.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떡을 떼는 그 손길을 통하여서 예수님이 풀어주신 메시아에 대한 그 말씀을 깨닫게 되면서 눈이 열려졌어요. 주님을 발견했어요. 하지만 주님은 사라졌어요.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다시 그 저녁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우리가 주님을 만났다고 내가 부활의 주님과 동행했다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달라졌죠? 그들은 예루살렘을 등지고 낙심한 채 터벅터벅 걸어가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대화하는 동안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부활의 확신을 갖는 순간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달라졌어요.

오늘 여러분 어떤 모습으로 여기 오셨습니까? 오늘 이 시간 곡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부활의 새로운 역사가 여러분들 가운데 가득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배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52절에 보니까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그렇습니다, 이제는 예배하는 자가 됐어요. 진정으로 예배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기쁨이 넘쳤어요. 52절에 보니까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진정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건이에요. 인도의 성자로 불리면 썬다싱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썬다싱이 영국 국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아주 특별한 기회죠. 아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이 끝났을 때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당신은 뿌리 깊은 힌두교에 유명한 학자이고 철저한 힌두교인 줄로 아는데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습니까? 그 때 썬다싱은 이야기 합니다. 예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나의 인생이 바뀌었고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소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그가 섬기는 교회 한 성도님이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을 집례하려고 장례식 설교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뭘 참고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느 날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은 장례식 가서 뭐라고 설교하셨나 보니까 장례식 설교를 찾을 수 가 없었어요. 왜? 어느 장례식이고 예수님이 가시면 그 장례식이 취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상여가 나갈 때 예수님은 그곳에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상여를 붙들고 젊은이야 일어나라. 그랬더니 젊은이가 죽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장례식이 취소되었어요. 회당장 아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가셔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소녀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음식을 달라고 하셨어요.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 지났지만 예수님이 가셔서 가사로야 나오너라 했더니 나사로가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셨으니 다행이지. 그냥 모든 송장은 나오너라 했으면 큰 일 날뻔 했어요. 

여러분 오늘 주님은 다른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셨고 예수님 자신이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나와서 우리 영원한 생명의 주가 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절망이 없습니다. 이제는 두려움이, 불안이 없습니다. 불안과 죽음의 동굴에 뛰쳐나오시고 예수님 주시는 참된 평화와 믿음과 희망 가운데 이 부활의 복음을 여러분의 이웃에게도 가족에게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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