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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금이 즐거우십니까? (고후 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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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이 즐거우십니까? (고후 9:6-15)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오늘 건축헌금의 밤 기도회가 있는 주일입니다. 솔직히 교우 모두가 다 참석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광고보다는 설교를 해야 할 부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월요일 영성일기에 “마음이 힘듭니다.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부담감 충만입니다. 영적인 벽이 느껴집니다.” 하고 썼습니다.
헌금 설교를 하자니 헌금에 부담을 크게 느끼는 교인들이 많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고 어떠셨습니까? 기대가 생겼습니까? 가슴이 답답하셨습니까?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까? 

“헌금 때문에 상처가 많아요!” “무리한 건축으로 헌금하고 또 헌금하느라 힘들었어요.”
교회 재정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여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는 일도 있습니다.
헌금을 너무 강요한 일도 있었습니다. 헌금을 공개하여 은근히 헌금을 하도록 강요하고, 축복과 연관시켜 강요하고 직분자를 세울 때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헌금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닫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헌금바구니를 돌리지 않아서 좋아요!”하는 말에 당황했습니다.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닙니다. 헌금은 준비하여 드려야지, 준비없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은 민족성전을 건축하자는 비전으로 지어졌습니다. 엄청난 헌신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건축 중에 재정 문제로 큰 시험을 겪었습니다. 그러니 헌금에 대한 상처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예배당 건축 이후에 등록한 교인들은 건축비 상환에 대하여 아무래도 마음이 간절할 리가 없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헌금하기가 힘든 이도 있을 것입니다.

저야말로 건축헌금에 대한 상처가 있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예배당 건축이 원인의 하나였습니다. 심장이 안 좋아지셨지만 그 때가 온 교회가 예배당 건축에 매달리던 때라 병원에 가지를 않으셨습니다. 큰 돈이 들까봐 집에서 링거 주사만 맞고 버티다 결국 병을 키워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해야 하는 이유를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마디 질문이었습니다. ‘헌금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이 정상이냐?’
독생자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신 주님 앞에서,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헌금이 즐겁지 않다고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임원을 세울 때, 십일조를 하시는지 건축헌금은 하셨는지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교인이 이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떻게 가르치나? 가만 있는 것은 목사로서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복을 받지만 헌금하는 복이 있습니다. 헌금하는 것이 기쁜 사람입니다,
7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엄밀히 말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것입니다. 

지난 주간, 평신도 선교사 한 분과 식사, 서로 내겠다고, 사랑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주고 싶은 마음, 주는 것이 기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서 얻고 싶으신 것입니다.

건축헌금, 20년 째, 왜 이렇게 오래도록 하게 하시나?
하나님께서 헌금 액수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헌금의 기쁨을 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했을 때, 저희 교회는 건축 중단상태였는데, 부채는 이미 150 억이 넘고 지하 본당이 다 완공되려면 100억에서 200억은 더 들어야 할 상황에 교인들은 600명 정도 남아 부도 직전에 몰려 있었습니다. 
본당 공사를 재개했을 때, 건축헌금 작정에 동참한 이들이 250명이었습니다. 
주일 출석인원이 1,067명이었습니다. 그 중 등록 교인이 청년 포함하여 731명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가정 세대로 따지면 502세대입니다.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이 교회가 커졌습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와 비교하면 10배, 본당 건축을 재개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6배가 성장한 상태입니다.
어떤 때는 100억 헌금하는 사람 두 사람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농담도 했지만. 사실 우리가 헌금이 기쁨인 성도만 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예배당을 건축할 때, 생각은 전 교인이 해마다
 한 사람이 100만원씩 헌금하면 5년이면 다 갚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광고도 했습니다.
2008년 당시 2,500명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약정액이 정해졌습니다. 세계 금융위기 속 , 추수감사헌금이 예산에 크게 미달하였습니다. 2009년도는 어떻게 하나? 낙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 때, 현금 1,000억으로 교회 매매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단이 아니고는 그런 돈 현금으로 지불할 곳이 있을까? 그런 돈이면 자신들이 좋은 땅 사서 예배당 짓지 왜 이 교회를 원하는가? 우리 교회 예배당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위치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구나! 이런 제안에 솔깃할 교인이 있겠구나!
더 이상 악한 자들이 부채문제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하겠구나!

원금상환을 위한 건축헌금을 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교인 전체에게 헌금해달라고 호소하지 말고, 진정 건축헌금하는 것이 기쁜 사람의 헌금만 받으라.’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낮에 헌금작정을 하지 않고 2009년 2월 22일 주일 저녁에 특별기도회로 모여 헌금을 작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예상 인원은 300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000명의 교인들이 모였습니다. 재정위원회에서는 이자를 교회 재정에서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본당 공사 시작할 때 헌금한 사람 250명, 헌금 32억이었는데, 80억원 이상의 헌금이 작정되었습니다,  

모두들 마음이 무겁기보다는 감격스러워 기도회가 끝나고 얼마가 작정되었는지도 모르면서 몸이 붕 뜬 기분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자기 재산을 바치고 즐거워했다는 말이 실감이 되었습니다, 생활비 전체를 바쳐버린 교역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아무리 교역자라도 그저 될 수 없는 결단입니다,

교회 일반재정에서는 이자 갚는 문제, 결단했으나, 이자 13억 정도 추가 부담 40억 예산 규모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일반재정을 결산해 보니 정확히 13억 정도 증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교포를 통하여 당시 은행 이자로서는 최저 금리로 교회 부채를 이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을 기뻐하시는구나!

여러분, 헌금은 결코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가 맞다면 헌금은 즐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헌금이 기뻤습니다.
다윗은 평생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 했습니다. 왕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잘됐다 하지 않고 성전 건축 자재들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그 때도 에스라 1장 6절을 보면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니" 했습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헌물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더 가져오지 말라고 막았을 정도였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발에 부을 때,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성경은 이 일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눅 7:47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자녀를 위하여 쓰는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면 그렇습니다. 자녀를 향한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헌금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헌금에 대하여 안 좋은 경험 때문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받은 사람에게 예배 중에 가장 기쁜 시간이 헌금하는 순서입니다.
7절「…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 논쟁이 있습니다.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냐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믿어지지 않으면 십일조하라는 말은 칼 안든 강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십일조나 헌금을 하지 않으셔도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복음에 관하여 알기를 원하여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거나 확신이 없는 분들은 헌금 때문에 눈치 보실 것도 없고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지도 마십시오. 
괜히 헌금하다가 마음이 상하여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면 더 큰 손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실제로 믿어지는 사람에게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에서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는 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라. 무릎이 닳도록 엎드려서 기도해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심히 전도해라, 그럴 것 같은데 참으로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겠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하나님!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백성들아 회개하라 해 놓고 왜 돈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십자가를 알고도 십일조가 부담스럽고 헌금이 기쁘지 않다면 마귀에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산의 주제 음악 등 많은 드라마 음악을 작곡한 송솔나무 집사님이 큰 은혜를 받았으나 너무나 아끼던 악기를 도둑맞고, 너무나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7년 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온 날, 설교를 마친 후 목사님께서“오늘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일어나십시오.”하는데, 갑자기 주님이 물으셨답니다.‘네가 스위스 기차 안에서 도둑맞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느냐?’‘플루트를 도둑맞았는데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순간 입에서 불쑥“예수님의 첫 사량을 도둑맞았습니다" 하는 말이 나왔답니다. 그리고 깨달았답니다.‘내 마음을 도적질 당했구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줄도 모르고 다른 걸 잃었다고 생각했구나.’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예배가 끝나고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돈에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과 그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집사님, 세금문제, 약간 억울한 세금, 그러나 다 내면 집 사라짐, 다 미리 처분하라! 어떻게? 정직하게 반응하세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습니까? 눈물을 흘렸습니다, 답은 알겠는데, 자아는 순종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였습니다, 

성경이 헌금에 대하여 강조하는 교훈 중의 하나는 헌금은 축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6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 10절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그러나 저는 많은 헌금을 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설교하고 싶지 않습니다. 헌금은 축복을 계산하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하여 드린 헌금에는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거래하시는 정도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복을 다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엇을 더 주실 것이 있겠습니까? 헌금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일 뿐입니다. 

헌금은 강요해서 할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헌금의 즐거움이 되고 있는지 항상 살핍시다.
혈당을 체크하고 혈압을 체크하고 암 수치를 체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드리기 위하여 예배드린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아브라함링컨 대통령이 바쁜 일정 중에도 어느 노부인이 면회 요청을 친절하게 수락했습니다. 노부인이 링컨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으면서 어떻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노부인은 부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종류의 과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는 링컨을 위해 그 과자를 구워서 집무실로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제 집무실에 청탁이나 기대 없이 오히려 제게 줄 선물을 갖고 온 사람은 부인이 처음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통령만 이런 심정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오늘 저녁 [건축헌금의 밤] 눈이 온다는 예보도 있습니다. 더 잘되었습니다. 
우리는 저녁에 쇼핑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 극장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 집에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러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함도 기쁨입니다.
평소 주일도 이렇게 모입시다.

오늘 저녁, 헌금할 돈이 없는 분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라도 오시기 바랍니다. 
헌금 생활 바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깊은 은혜를 더욱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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