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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 (막 14: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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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을 받으신 예수님 (막 14:48-51)

막14: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막14: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막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막14: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막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들을 데리시고 예루살렘의 다락방을 나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그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던 도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슥13:7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성급하게 나서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자신을 지나차게 과신한 나머지, 다른 제자들을 무시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려고 들자,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강조하시면서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지지 않으려는 듯이, 자기 말에 힘을 주면서 이와 같이 응답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서, 다른 제자들도 똑같은 말로 예수님에게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들 모두 큰 소리를 쳤지만, 그저 말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경고하신 대로였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서 버림을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하여,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막14: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예수님이 무리에게 잡히시는 것을 보면서, 베드로가 갑자기 자기에게 있는 칼을 뺏습니다. 그리고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쳐, 그의 오른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무모한 짓을 막으시며, 말고의 귀를 만져서 낫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무리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무리 중 로마의 군대는 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경비대는 몽치, 곧 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강도라고 여겼습니다. 막15:7에는 바라바가 나옵니다. 그는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였습니다. 요18:40 말씀을 보면, 이 바라바를 강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강도는 민란을 꾸민 반역자를 뜻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이 민란을 꾸민다고 모함했습니다. 이에 따라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반역자인 예수님을 잡아오도록, 천부장을 비롯한 로마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여기에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성전의 경비대가 합세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대대적인 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반란군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도록, 큰 무리를 이루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나왔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강도가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에 대항해서 민란을 꾸미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5:44 말씀처럼,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강도가 아니고, 내가 반역자가 아닌 것을 너희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마치 강도를 잡는 것 같이, 큰 무리를 지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구나.”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나온 무리와 또한 배후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막14:49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들의 위선과 음모를 밝히 드러내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막14: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예수님의 사역은 주로 갈릴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맞아,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기간 동안, 날마다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강도라면, 예수님이 로마의 반역자라면, 왜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로마의 군대나 성전의 경비대가 예수님을 잡지 아니했습니까? 그들도 예수님이 반역자가 아니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예수님에게 이와 같이 물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그들은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예수님이 백성을 선동해서 가이사에게 반란을 일으킨다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즉시 예수님을 반란죄로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와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예수님의 말씀에 모두가 놀라기만 할뿐, 아무도 예수님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반역자가 아니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큰 무리를 파송했습니다. 큰 무리는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위선적인 짓입니까? 이는 앞뒤가 전연 맞지 않는 음모였습니다. 

본문 49절 끝 부분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그 동안은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잡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허락하셨습니다. 

요18:6 말씀을 보면, “내가 그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예수님을 잡으러 나왔던 무리가 다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감히 그 누구도 예수님에게 손을 대어 잡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마26:53 말씀처럼, 예수님은 당장에라도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열두 군단은 72,000명입니다. 왕하19:35 말씀을 보면, 한 천사가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열두 군단의 천사는 그 힘이 엄청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밤 예수님은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이는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이셨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은 힘이 없어 잡히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이루시기 위하여 스스로 잡히셨기 때문입니다.  

그 날 곧 금요일 오후 세 시가 되면, 성전에서는 수많은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도 바로 그 때 십자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셔야 했습니다. 바로 그 시각을 맞추시기 위해, 예수님은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이로써 시41:9 말씀, 곧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고 한 성경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사53:12 말씀, 곧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한 성경도 이루어졌습니다. 

아울러 슥13:7 말씀, 곧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한 성경도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심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성경말씀들이 모두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셨고, 성경대로 잡히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경대로 살며 성경대로 행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의 평안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평안한 가운데 늘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막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예수님이 무리에게 잡히실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때 “다”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제자들 모두가 다 예수님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겟세마네 동산 입구를 지키던 여덟 제자만 예수님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산 안으로 들어갔던 세 제자들조차도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이로써 막14:27 말씀, 곧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신 예수님의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이 때 제자들의 행동은 이해가 갑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무리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남은 길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도망하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는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무리에게 잡힐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제각기 감람나무 숲 사이로 몸을 날려서 쏜살같이 도망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을 과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도 또한 부인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힘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시험이 닥쳤을 때, 그들의 실제 행동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했던 말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시험에 임해서 실제로 보여준 행동은 “그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니라”였습니다. 

왜 제자들이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까? 그들은 시험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자느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3∼16장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제자들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기도를 마음에 깊이 새겼어야 했습니다. 그러했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따라, 그들이 필요한 것을 기도하며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했더라면 그들은 구한 대로 다 응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말씀을 따라 깨어 있어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시험을 이길 준비가 전연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시험에 들어서,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말씀과 기도를 무시하면, 우리도 시험에 들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합시다. 그리해서 어떤 시험이 닥치더라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아가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고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창19:11에서 하나님이 소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셨던 것과 같은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리는 땅에 엎드린 채 대답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 예수님이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신 것은 무리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18:8∼9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제자들은 무리를 땅에 엎드러지게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도록 지키시리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을 신뢰했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사 무리가 그들을 잡으려 해도,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했습니다. 예수님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시험에 들어, 예수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으로, 은혜로 그들을 모두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이후 그들은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회복의 역사, 또는 변화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막14: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이 내용이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마가복음에만 나타납니다. 요한복음에는 기록자 요한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는 식의 익명으로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의 “한 청년”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마가복음의 기록자 마가라고 추정됩니다.  

행12:12 말씀을 보면,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행1:13∼14 말씀처럼, 그들이 유하며 기도하던 곳은 그 집의 다락방이었습니다. 분명 그 곳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드셨던 다락방이었을 것입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그러니까 잠옷차림이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 산으로 떠나신 후, 마가는 잠옷인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떠들썩한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가룟 유다가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그 곳을 떠나신 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무리와 함께 예수님을 추격해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습니다. 

마가는 얼른 이 사실을 예수님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급하게 잠옷차림으로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알면, 밤중에 아들 혼자 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가가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마가는 무리가 예수님을 결박해서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마가는 무리에게 잡혔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런데 낯선 청년 하나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무리는 마가를 예수님의 첩자나 연락책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막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는 청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반응도 순간적이었습니다. 마가는 무리가 그의 잠옷인 베 홑이불을 잡았을 때, 재빨리 그것을 버리고 그들의 손에서 자기 몸을 빼냈습니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 마가는 자기의 몸놀림이 빨라서,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이 마가를 무리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가가 무리에게 잡혔더라도, 예수님은 그에게 피할 길을 따로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 때문에 마가도 예수님의 또 다른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날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스스로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셋째로,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잡히시고, 버림을 받으시고, 홀로 되신 것은 다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잡히심으로, 우리는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가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찾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홀로 되심으로,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거느리시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신 것처럼, 오늘 우리 모두도 회복시키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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