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예수님처럼 자라나는 어린이 (눅 2:40-52)

첨부 1


예수님처럼 자라나는 어린이 (눅 2:40-52)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영상을 하나 보시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다음 검색 어린이주일 영상 강아지 똥) 

오늘은 어린이날이며, 어린이주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보물”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강아지 똥이라도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우리 어린이들을 소중한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강아지 똥도 버리지 않고, 꽃을 자라게 하는 거름으로 쓰게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꼭 귀한 사람이요,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유산입니다. 탈무드에 “인간은 때를 단 한 번 경험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과 젊은 날에는 시간이 귀중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시간의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시간이라는 것이 값진 재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돈(금전)이나 시간에 대한 감각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익히게 됩니다. 시간은 여벌이 없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시간을 헛되어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단 한 번밖에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번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하는 말을 막연한 소망이지 다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탈무드에서 배우는 처세술이라고 하며, 마빈 토케이어 박사는 “몸을 굽히면 진리를 줍는다”는 책에는 “시간은 곧 인생”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미국의 격언에 “시간은 돈이라” Time is money 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나 그 말은 잘못된 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격언이 생긴 것은 시간이란 돈처럼 다만 값진 것이라는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빈박사는 그 격언이 틀린 것은 시간은 돈보다 훨씬 더 귀하기 때문에 틀린 말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한 데가 전혀 없습니다. 돈을 저축할 수 있지만 시간을 저축할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돈은 다시 벌 수 있으나, 한 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돈은 빌려주고 또 빌려 쓸 수 있지만 시간은 빌려주지도 못하고 시간은 빌리지도 못합니다. 돈이란 은행에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지만, 인생이라는 은행에는 나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Time is money라는 말은 잘못되었고, ‘Time is Life, 타임이즈 라이프’라고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학교와 백화점에서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날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을 무엇인지 설문조사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어린이날이 되었다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있을 것입니다. 1위: 스마트폰 2위: 닌텐도 게임기 3위: 장난감 4위: 애완견 5위: 용돈이었습니다. 

요즈음 어린이들도 스마트폰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 가지면 그 안에 전화, 음악, 게임, 인터넷, 사진, 문자메시지, 안 되는 것이 없는 만능기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과 스마트폰, 어린이도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생활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도 용돈이 필요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린이들에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초등학교 시절 계속해서 전교 꼴찌를 하다가 학습부진아 반에 들어간 경력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그런 뉴턴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인문고전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이후 뉴턴의 삶은 인물고전 독서로 채워져 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저능아로 취급을 받았지만 천재적인 두뇌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과학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13세 때에 런던의 사립학교인 해로학교에 들어갔는데, 전교 꼴찌로 입학을 하였고, 4년 6개월 동안 재학하는 중에도 내내 거의 꼴찌를 도맡아 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스물세 살에 인물고전 독서를 처음 시작하였는데 하루 평균 4시간에서 5시간씩 책을 읽었습니다. 처칠의 인문고전 독서는 그의 두뇌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3개월만에 퇴학을 당하였습니다. 학교 수업에 따라갈 만한 지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 토머스는 본래 머리가 나쁜 아이라고 하면서 아들 공부시키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당신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아들을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지도로 9살 때에 리처드 그린파커의 ‘자연과 실험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시어스의 ‘세계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의 쇠망사’, 흄의 ‘영국사’와 같은 역사고전을 읽었고,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문학고전도 읽었습니다. 이십대에는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리겠다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 기록인 1,093개의 특허를 따내면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는 제너럴일렉트릭(GE)을 창업하였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독서는 위인전부터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커지고 꿈이 커지고 성품이 좋아집니다. 남은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인문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영재가 되고, 천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시카고 대학은 노벨상왕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890년 설립된 이 대학은 누구나 들어가는 3류 대학이었습니다. 그런데 1929년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장이 되면서 교양교육의 교과과정을 수립하였습니다. 각 분야의 고전 100권의 책을 읽어야만 졸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카고대학의 동문 교수들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명문대학이 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을 모두 가져가는 대학이라는 (싹쓸이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1929-2000년까지 6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렸을 때에 우리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가장 사랑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셨고, 축복하여주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정말 소중하고 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전도서1:4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한 세대는 가지만 여러분 어린들의 한 세대는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어 정치인도 여러분 가운데 나오고 대학교수님도 여러분 가운데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위대한 사상가도 나오고, 정치가도 나올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사람, 소망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독일의 아이제나흐에는 아주 유명한 선생님으로, 요한 트레보니우스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까르멜 수도원의 원장이시면서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교문에 나와서 등교하는 어린이들에게 깍듯이 인사하면서 맞이하였습니다. 수업을 할 때면 언제나 모자를 벗고, 인사를 드리고는 수업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교장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우리 학교에서 배출될 학생들이 장차 총독이나, 장관, 그리고 학자와 선생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먼저 존경을 표하기 위하여 그런 행동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는데, 이 학교, 그의 제자들 중에서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나왔습니다. 어떤 총독보다, 장관이나 학자들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종교개혁자가 그의 제자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들 중에 자라는 어린이는 장차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잘된 위대한 인물들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가 지나가면 장차 훌륭한 학자가 지나간다고 먼저 인사합시다. 

예수회 신부이며, 선교사인 프란시스 사비에르(F. Xavier 1506-1552)는 며칠 밤낮 봉사하는 중에 너무나 지쳐서 그의 수종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좀 자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야. 누가 오더라도,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나를 깨우지 말게” 그리고는 그의 거처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충직한 수종자는 신부의 말을 듣고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면서, 사비에르 신부가 나오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잠깐 내가 말을 실수하였네, 혹시 어린이가 찾아오거든 나를 깨워주게”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만나지 않아도 어린이들은 만나주고, 그를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의지라고 봅니다. 어린이는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의 주인공이기에 무한 가능성이 열려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면서 몇 가지 말씀을 일러주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3-6)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기, 19세는 여자를 발견하였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봅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2천년 전에 사람의 수에도 들어가지 못하던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과거 로마제국에서는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 있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었고, 어려우면 노예로 팔아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BC1세기의 한 군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만일 당신이 낳을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기르고, 계집아이라면 버리시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로마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약하거나 못 생긴 아이는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서는 어린이는 사람의 수에도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 이런 표현을 보면 여성과 아이들은 숫자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 주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10:14)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나 민족은 발전하거나 번영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이 예수님처럼 성장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소년 시절에 대한 기록으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자라나셨으며, 때로는 부모님에게 속을 썩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님의 염려와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절기를 잘 지켰습니다. 그렇게 절기를 귀중하게 여기고, 성실하게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드리고, 함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올라갔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끝내고 해방 받은 날을 기념하는 민족 최대의 절기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본래는 남자들만 절기를 지키려고 올라가라고 하였으나 교법사 힐렐이라는 랍비가 여성들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하여 허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인 어머니 마리아도 올라가고, 어린 예수님도 함께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12살부터는 율법의 아들이라고 하여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 올라가고, 금식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나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6세부터 쉐마라는 말씀을 암송하기 시작하여, 10세가 되면 율법의 해석책인 미쉬나를 배우게 되었고, 12살부터는 율법의 아들이라고 하여 본격적으로 율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되는 해에도 그들 가정은 절기관습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의 부모들은 그것도 모르고 갈릴리 나사렛을 향하여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어린 예수가 갈릴리로 내려오는 일행 중에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간 후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중에서 아들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이란 절기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기에 약 100만 명의 인파가 함께 몰렸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미아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2살 되는 사내아이를 잃어버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12살의 아들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이요, 부모님에게 의도적으로 애를 먹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부모님이 근심하였지만, 엄청난 불순종으로 보지는 말아야 합니다. 오던 길을 다시 거슬러가면서 사흘 후에 성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 예수는 성전의 선생님들과 함께 앉아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그들 선생들에게 묻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가 슬기롭게 말하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경탄하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를 보고는 “얘야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그 때에 예수는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이런 말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그들 부모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님과 함께 나사렛에 내려가셔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시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한 마디로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성장하지 않고, 하늘에서 뚝 무엇이 떨어진 것으로 알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아픔과 고뇌를 가지고 성장하셨기에 우리의 육신의 허물과 죄도 함께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전인적인 성장이 이루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자라가고, 키도 자라가고 종교성이 있었고, 사회성이 있었습니다. 

한양대학교 원목을 지내셨던 전재동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았는데, 하루는 병원정신과 있는 의사선생님이 목사님을 급히 찾았다고 합니다. 정신과 병동에 한 50대 여인이 입원을 하였는데, 도저히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졌다고 합니다. 여인은 하루 종일 머리를 치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고 있었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목사님이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다가가서 친절하게 웃으면서 마음을 열게 하고, 말문을 열게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자식을 죽인 사람입니다.” 
“아니 아주머니가 어떻게 자식을 죽였다는 말씀입니까?” 그 여인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제 아들이 얼마 전에 사형 당하였습니다. 탈영병으로 못된 짓을 많이 하다가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애가 교도소에서 저를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하였고, 저 역시 사랑하는 자식을 마지막으로라도 보고 싶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있는 무밭에 들어가서 무 하나를 뽑아온 적이 있지요?’ ‘그래, 그 때 우리는 참 맛있게 무국을 끓어 먹었지’ 이렇게 대답하였더니, 그 애는 제 손을 잡으며, ‘엄마 왜 그 때 저를 꾸짖지 않았습니까? 왜 좀 나무라지 않았습니까? 한 마디 꾸중도 없이 그 무를 가지고 국을 끓여 먹었습니까? 그 후부터 연필을 훔치고, 노트를 훔치고, 중학교 때는 남의 담을 넘어가서 돈을 훔치고, 온갖 나쁜 짓 하다가 결국은 탈영하고 살인강도로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을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탄식하며,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 정직하고 진실하게 자라야 합니다. 죄를 짓지 말고, 꿈과 소망을 가지고 자라세요. 우리 민족과 세계 평화는 여러분의 꿈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은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예수님처럼 지혜가 자라고, 키가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성장하시고,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