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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닭이 울더라 (마 26: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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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울더라 (마 26:69-75)

어느 목사님 목회 하던 교구 내에 주정뱅이며 도박꾼으로 타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이른 아침에 파랗게 질려 목사님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너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일 년 후에 너를 불러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 날부터 그는 술을 끊고, 도박도 끊고,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지나가더니 발걸음이 교회에서 뜸해지고 점점 열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도 다시 조금씩 마시고 도박도 조금씩 손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권하고 그가 본 꿈의 환상을 회상시켜 주었으나 그는 ‘글쎄요’ 하면서 교회에서 더욱 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완전히 이전 상태에 돌아가 권면하는 목사님께 반항적으로 나오면서 “무얼 개꿈을 가지고 그러십니까? 그것에 매여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술집에서 술에 만취가 되어 계단을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떨어져 목이 꺾이어 급사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사님은 일기책을 찾아보니 그 날이 바로 1년 전 그가 자기를 찾아온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잊어버린 결과이었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내용이 단계적으로 나옵니다.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붙잡힌 예수님은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와 다른 이의 틈에 끼어 불을 쪼입니다. 이때 한 여종이 “당신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지요?” 하자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모르겠소”라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여종이 또 베드로를 향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오”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며 다시 부인합니다. 조금 후에 거기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틀림없이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당신 말씨를 들으니 확실하오”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고 부인합니다. 바로 그때에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닭의 울음은 베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닭의 울음소리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소리입니다.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재인식하게 됩니다. 최후의 만찬석에서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말씀하신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하였습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의 예언처럼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고 그는 닭소리를 통해 자신에게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던 주님이 마치 자기 앞에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실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할 베드로의 미래를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닭소리를 들었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되어 다시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이 생각나야 합니다. 

마가는 동일한 장면을 14장 72절을 통하여 묘사합니다. 위급한 상황이 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베드로가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여기의 ‘기억되어’로 번역된 ‘아넴네스데’는 ‘생각나게 하다’의 의미를 지닌 ‘아나님네스코’의 수동태 3인칭단수입니다. 즉 베드로가 외부요인인 닭의 울음소리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입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복된 삶입니다. 지금도 닭의 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생각나 비록 시험에 들어 주님을 배반하고 힘든 시간에 있을지라도 다시 일어서서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자신을 발견케 하는 소리입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사람을 ‘캐릭터’ 라고 부릅니다. 캐릭터는 성격이라는 말입니다. 배우들도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질 때 성격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다르고 반응하는 것에 따라서 운명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누구든지 지옥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다리는 자기의 약한 점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이성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에게 약하고 다 사람마다 누구든지 지옥으로 내려가는 사단의 시험에 걸리게 하는 사다리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약점들을 붙들고 기도하며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못된 성격을 하나님께 합당한 성격으로 고쳐나가야 됩니다. 

75절에 보면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닭이 울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통곡은 주님을 부인했다는데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약한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장담했던 어리석은 캐릭터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연약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모르는 믿음은 결국 베드로와 같이 자신의 열정과 감정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게 되며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를 비교해 보면,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았다는 후회만 있었습니다. 즉 자신이 그럴 수도 있는 인간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인간됨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약한 인간인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베드로는 호언장담하던 자신의 헛된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즉 자신이 얼마나 약하며, 허세를 부리며, 표리부동한 존재인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의 수제자로 3년 동안이나 사랑을 받았는데 보잘것없는 계집종의 질문에 쩔쩔매던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당당하게 예수의 제자라고 말을 못했는지의 후회가 더욱 그를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주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실까’하는 생각이 자신을 짓누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게 됨으로 부족함을 채우시는 주님을 붙잡아 생의 새로운 기초를 놓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도 닭의 울음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하는 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회개할 기회를 부여하는 소리입니다.

한 청년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어느 날 눈병으로 고생하다가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의사는 눈을 정밀히 진찰한 후 “살인적인 독이 눈에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니 다음날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너무나 절망이 컸습니다. 그로인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앙을 가진 친구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의 완악했던 과거의 죄들이 기억이 나서 회개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진찰하던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퍼져있던 독균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독소를 뽑아내어 영과 육을 살려 놓았던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은 이토록 귀중한 것입니다. 

본문의 베드로 역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장면에서 마가는 ‘울었더라’로 표현합니다. 이는 헬라어 ‘에클라이엔’으로 미완료시제로서 울기 시작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흐느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베드로의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후회를 넘어 마음을 뒤집는 참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무릎을 꿇고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에 가면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한 장소를 기념하여 “베드로 통곡교회”가 설립되어 있습니다. 저도 성지순례시 그 자리에 가서 “주여, 저는 예수님을 세 번이 아니라 수없이 부인한 죄인입니다. 저에게 항상 닭의 울음소리를 들려 주셔서 자신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점은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침은 불행중 가장 큰 불행입니다. 스승을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은 것입니다. 

오늘도 닭이 우는 소리는 우리를 향하여 들려옵니다. 우리가 당하는 사건을 통하여 들려옵니다. 환경을 통하여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닭이 수 백번 울어도 그 속에서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베드로의 심금을 울렸던 닭의 울음소리가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들려지기 바랍니다. 그 소리는 영적인 교만을 깨뜨리는 소리입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소리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도록 다짐시키는 소리입니다. 부디 닭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말과 행동으로 부인하고 살아가던 자신을 발견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 다시 쓰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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