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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더라 (눅 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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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더라 (눅 2:40,52)
 
유아세례는 소중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저도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았다는 기억은 전혀 없지만, ‘부모님의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세례를 받았구나!’하는 감사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좀 불편했습니다.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입으로 결단하여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어머니, 아버지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한 후부터 유아세례를 받은 사실이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내게 신앙을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셨을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아세례에는 ‘네가 내게 와져서 고맙다. 네가 내게 축복이 되어서 감사하다’는 신앙적 결단과 사랑이 배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위해서 기도하셨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유아세례는 참 복된 세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예수를 믿었다는 확인이고, 그 신앙의 유산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고 있다는 하나님 축복의 역사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보석과도 같은 선물이며 축복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남긴 ‘어른들의 영혼은 아이들과 함께 있음으로 치유가 된다’는 말처럼, 아이들은 그 자체로 기쁨과 위로가 됩니다. 

아이들은 기쁨과 위로를 줍니다. 

어떤 가정에 웃음소리가 있을까요? 어른들이 많은 곳에는 오히려 싸우고 다투는 소리가 나오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있으면 그 모습만 보아도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도대체 어린이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런 것일까요? 

어린이들에게는 에너지 넘치는 활력이 있습니다.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이 있습니다. 토라져서 울다가도 금방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해서 “엄마 저게 뭐야, 아빠 저게 뭐야?” 하고 끝없이 물어봅니다. 세상에 대한 경탄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끌립니다. 

아이들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반추하고 그 세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어른들 안에 맺혔던 마음이 풀립니다. 상처 난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을 치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깨닫게 되고, 영혼의 맑음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아야겠다는 열망도 품게 됩니다.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는 치유인 셈입니다. 

저는 손자, 손녀가 셋이 됩니다. 이들을 만날 때면 해맑게 웃는 모습이 그냥 보기만 해도 설레고, 참 좋습니다. ‘언제 우리 아들, 딸들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는가? 아니 내게도 저런 때가 있었겠지...’ 아이들의 모습은 제 굳어졌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풀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기쁨이요, 상처의 치유라는 말을 자주 실감합니다. 

어린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시면서 어린 아이의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어른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그 어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보시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럽게 자라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사랑스러웠다’고 표현하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보면 볼수록 영혼이 맑아져서 더 보고 싶고, 더 함께 있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귀히 여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예수님의 모습이 마음에 드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을 보시면서 치유를 받으셨구나. 위로와 격려를 받으셨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주어도 도망가고,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라고 해도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치 자기 잘난 맛에 그리 된 줄 아는 인간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그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상처를 받고,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습니까? 

우리도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야, 내가 네게 쏟아 놓은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사랑을 쏟아 내고, 돈을 쏟아 내고, 기도와 정성을 쏟아 내고... 그런데 네가 나를 떠난다고?’ 우리에게도 섭섭하고 아픈 마음이 때로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자라는 모습을 보시면서 위로를 받으신 것입니다. 아들의 모습을 보시며 ‘예수가 내 뜻을 이루겠지’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신 것입니다. 아들 예수가 자라는 모습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가슴으로 안으시며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되라,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어린 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전한 마음으로 나오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 아이들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 손자, 손녀들을 손으로 가슴으로 안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내 속의 부끄러움과 상처 나고 찢기고 어두워지고 더러워진 것들을 회복시키는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건강은 부모의 첫 번째 바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녀들을 향한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무엇을 제일 먼저 기도합니까? 내 자녀, 세상에서 일등하게 해 주세요. 세상에서 높은 자리 차게 해주세요.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이것이 첫 번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40) 

예수님도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와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예수님은 건강하게 지나셨습니다. 첫째는 육체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키가 자랐고, 강해졌다’고 기록합니다. 건강함의 증거는 성장과 성숙입니다. 어려서는 키가 자라고, 나이가 들어서는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곧 건강한 것입니다. 

이 건강에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회복 능력입니다. 우리는 감기에 걸릴 수 있고,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습니다. 때론 수술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하는 능력이 있으면 잠시 아프고, 또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건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키가 자라는 성장과 더욱 강해지는 회복력을 모두 갖춘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정신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풍성한 자녀로 자라났습니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2 더하기 4는 몇이지? 하고 물었을 때 옳은 대답을 하면 부모들은 박수를 칩니다. 글자 하나를 읽고, 말을 할 때마다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처음으로 ‘아빠, 엄마’라고 부를 때는 감격합니다. 정신적으로 지혜와 총명이 자라는 것의 확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에 대한 바람은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더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건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머물렀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이 영적인 건강입니다. “인생은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의 은혜가 동반되어야 한단다. 하나님이 이끄셔야 된단다.” 이렇게 이야기하며 자녀들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인생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믿음의 부모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자녀를 위하는 부모는 기도합니다. 

한 7∼8년 전에 읽은 시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더해져서 여러분에게 소개하려 합니다. 칼릴 지브란이 쓴 어린 아이들에 대한 시입니다. 

그대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의 아이는 아니오. 
아이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이니, 
아이들이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오. 
그러므로 아이들이 지금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오.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이 머무를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이 머무를 집은 줄 순 없다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가 꿈속에서라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에. 

그대가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쓸 수는 있지만 
아이들을 그대처럼 만들려고 애쓰지는 마시오. 
왜냐하면 삶은 되돌아가지도 않고, 
어제에 머물러 있지도 않기에. 

우리의 자녀들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사랑하면서 살도록 우리에게 잠깐 맡겨주신 보석과도 같은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마음껏 쓰임 받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부모들의 책임입니다. 

자녀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지 못하셨으면 이번 기회에 밥이나 같이 먹자고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한꺼번에 부르지 마시고 일대일로 부르셔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세요. 그리고 자녀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내게 주신 자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선물로 주신 자녀를 위해 부모는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건강하게 해 주세요. 지혜롭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칭찬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 자녀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존재로 성장, 성숙하기를 기도하는 귀한 부모님들, 어르신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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