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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신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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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신 6:1-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교회가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가 어린이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린이들을 정말로 귀하게 여긴다면 일 년 내내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여간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깔깔대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놀이터에서도 어린이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동네 골목에서도 어린이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출산율 저하 때문일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 내지는 세 번째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기를 많이 낳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28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실제로 번성해야 합니다. 애굽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여 그 땅에 가득하게 되자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국가적으로도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번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신명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을 보낸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아라바 광야에서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행한 설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신명기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선포되었는가 하는 것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 말씀이 죽은 말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명기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 광야 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출애굽을 통하여 자유를 얻었고 또 만나와 메추라기로 기본적인 삶은 보장되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광야 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이 순간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기회임과 동시에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금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광야 생활과는 전혀 다른 가나안의 문화와 새롭게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지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어느 정도 불안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정착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이 마음의 중심을 잃기 쉬운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모세는 다시금 하나님의 명령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황, 즉 광야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가나안 정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삶의 매우 근본적인 면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 그들은 생존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치나 향락 따위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극한적인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삶을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들이 정착하게 될 가나안의 문화는 달랐습니다.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다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꿈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째서 점쟁이를 찾아갑니까? 복을 받고 번성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한 그들이 복을 받고 번성했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들이 망했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복을 받을 수 있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번성할 수 있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바른 길로 가지 않았습니까?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신명기 6장 4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면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바알이 될 것이 분명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모세는 여호와 한 분만이 하나님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여호와 하나님에게 집중하라고 거듭 외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로는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전 존재를 걸지 않는 한 그 믿음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전 존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인간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실태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힐 것 같으면 영원한 생명과 같은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만이 새롭게 맞게 될 모든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생존하며 또 번성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복을 받고 번성함에 있어서 어린이들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맡김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뿐 아니라 받은 바 복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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