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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시몬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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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시몬 (눅 5:1-1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 내용입니다.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였습니다. 그의 동생 안드레도 어부로서 동업자였습니다. 두 사람 다 순수하고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로서 얼마 전에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동료 한 사람과 더불어 세례 요한의 곁에 섰는데, 마침 예수님께서 근처를 거닐고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이에 두 제자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하시니 두 사람이 말하기를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 보라” 하시니 그들은 그 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안드레는 자기 형인 시몬을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시몬을 보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게바는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인데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도 시몬은 여전히 어부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나가시니 큰 무리가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자꾸 좁혀오므로 더 이상 말씀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물가를 보니 두 배가 있는데,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배에 오르시고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셔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르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여 두 배에 채우니 잠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밝은 대낮에 두 배 가득히 고기를 잡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 광경에 어부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뜻밖의 횡재(橫財)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을 보십시오. 그는 배의 고물에 앉아계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시몬”이라는 말씀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빈 배에 찾아오십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신 것이나 시몬의 배를 타신 것은 우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성의 차원에서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시몬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실 뜻을 갖고 계셨습니다. 시몬이 밤이 맟도록 수고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 역시 주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간밤에 평소처럼 많은 고기를 잡았더라면 물고기를 처분하느라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빈 배로 돌아와서 그물을 씻는 것 외에는 바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을 배에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몬의 배는 비유하자면 우리 인생과도 같습니다. 배에 물건이 가득 실려 있으면 다른 물건을 실을 수 없듯이, 우리 마음이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차있으면 주님을 모실 여지가 없습니다. 배에 새로이 물건을 실으려면 먼저 실은 짐을 육지에 부려야 하듯이, 우리 마음에 주님을 모시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세상이 가득하면 천국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빈 마음이 될 때에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우리를 빈 배로 만드시기도 하십니다. 유라굴로와 같은 광풍이 일어나면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무거운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 “이것은 비싼 물건이니까 버릴 수 없어!” 그럴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항해에 필요한 배의 기구들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건강에 광풍이 불어 닥치기도 하고, 경제적인 광풍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또는 가정과 자녀 문제로 인하여 광풍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쳐오는가?” 원망,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배를 비우고 주님을 모시라고 하시는 신호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빈 배 곁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시몬은 마음이 울적했을 것입니다. 혹시 그에게 급히 목돈이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에 그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적에 주님께서 오셔서 고쳐주신 적이 있지만, 그 동안 장모를 치료하느라 든 약값이 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간밤에 빈 배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그러니 빈 배가 그에게 축복이 될 줄이야 상상이라도 하였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여러분의 인생 배에는 무엇이 실려 있습니까? 만약에 세상에 대한 집착과 재리에 대한 욕심,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 따위가 여러분의 인생 배를 가득 채우고 있다면, 먼저 그 같은 것들을 내어버리고 빈 배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빈 배에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리할 때, 여러분의 인생은 새롭고 복되고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제자 삼으려고 일부러 게네사렛 호수가로 찾아오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열 두 제자 중에 자원해서 주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주님께서 한 사람씩 불러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상에 70억이 넘는 사람 가운데 특별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고르고 택하셔서 제자로 삼아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 날 예수님께 배를 내어드렸던 시몬은 그물 씻는 일을 멈추고 곁에 서서 무리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시몬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을 적에 지체치 않고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온 시몬의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는 주로 밤에 불을 밝히고 잡습니다. 깊은 물에는 고가가 잘 놀지 않을 뿐더러, 환한 대낮에는 물고기들이 배 그림자를 보고 숨어 버리기 때문에 잡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잘 놀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시므로 고기 잡는 법에 관해서 노련한 어부에게 충고한다는 것은 이치상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 호의는 고맙습니다 마는, 사정이 있어서요. 저 때문에 너무 마음 쓰지마십시오. 오늘 밤에 고기를 잡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정중하게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어부로서의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순종하지 못합니다. 사실이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옳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였듯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데 열심내시기 바랍니다. 한번 실천해 보십시오. 믿음이 몰라보게 자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신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은 한 동안 설교를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주 말씀을 듣다보면 언제부턴가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믿음이 자랐다는 증거입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게 느껴지고 또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면에 예배생활을 등한히 하는 신자는 말씀 들을 기회가 없으므로 그만큼 믿음이 자라기 어렵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믿음마저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귀한 일이나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면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때 비로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여러분께서는 시몬처럼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기에 힘쓰심으로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게 됩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어찌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동무들에게 손짓을 해서 와서 도와 달라고 하여 그물을 끌어올렸더니 두 배에 가득 채울 만치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 요한, 모두 다 놀랐습니다. 단 한번 그물을 내려서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물고기를 팔면 간밤에 손해 본 것을 보충하고도 한 동안 편히 지낼 수 있는 돈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 어부가 고기를 많이 잡아서 두 배에 가득 채웠으면 이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만선가(滿船歌)라도 부르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일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조용히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젊고 참신하고 인품이 고상하신 랍비로만 알았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 앞에 엎드린 시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선생님”이 아니라 “주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이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란, 하나님께 대한 호칭이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통해서 자기 앞에 앉아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나고 나자 너무 감격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대번에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와 보라”하니 친구의 낯을 보아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나다나엘이 아무도 모르게 무화과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 나다나엘이 대답하기를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적에 마침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도마가 돌아오자 제자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주님을 만나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모두 집 안에 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대답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자기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시몬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을 때 자기 앞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신성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기가 추악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의로운 자로 여깁니다. 그것은 검은 옷에 검정이 묻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흰 옷에는 아주 작은 오물이라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죄인의 추악함이 인간들 사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 더러운 죄인이니까요.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타락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셔 서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고 찬송했습니다. 그들의 찬송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가 절박하게 외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처럼 경건한 사람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대면하자 자신이 죄인임을 절감하고 절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인이 되려면 시몬처럼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눈을 밝혀주셔서 우리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해 주셔서 주님 앞에 죄인 됨을 고백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게 해 주십니다.

넷째로,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두려워 떠는 시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지금까지는 육신의 삶을 위해서 물고기를 잡았으나 이제부터는 네가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삶의 차원과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뜻대로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삽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지금까지는 이기적인 삶을 추구했으나 이제부터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까지는 대접받기만을 좋아했는데 이제부터는 먼저 남을 대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소유의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아니, 주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희생하시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사 53:11).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동족의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을 적에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하였습니다. 돈이면 다인 줄 알고 살아온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그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섯째로, 주님을 위하여 살려는 결단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더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시몬뿐 아니라 동생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이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아무리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신 다음,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시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귀히 보시고 이르시기를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바를 실행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부자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결단했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위한 위대한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단지 위대한 랍비로만 알았지 주님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알았으므로 제자을 길을 가려는 결단을 하지 못하고 쓸쓸히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더라면 전 재산을 다 버리고서라도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을 위해 살기를 결단하십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지그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시몬에게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도 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시몬은 초대교회 당시에 사람 낚는 어부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저와 성도님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을 하고서 주님을 따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시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지 않으시고 갈릴리의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신 데 대하여 감사합니다.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던 시몬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만나야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하였습니다. 시몬처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이제부터 시몬처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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