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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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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서구에서 동양의 고사성어처럼 쓰이는 말들 가운데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딴지 근육을 발꿈치에 연결하는 발뒤꿈치 뒤에 있는 강한 힘줄 즉 ‘종골건’(踵骨腱)을 말합니다. 이 말은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그의 발뒤꿈치를 잡은 채로 스틱스 강에 담갔기 때문에 아킬레스의 몸은 불사신처럼 강건하게 됐답니다. 그러나 테티스가 잡았던 발뒤꿈치는 스틱스 강물이 닿지 않아서 여전히 약한 채로 남아있게 됐답니다. 그래서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은 몸에서 유일하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자에게 남아있는 ‘약점’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삼상 8:1-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무엘의 말년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이 늙어 더 이상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사무엘처럼 훌륭하게 영적 지도자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판결을 잘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두 아들 대신 이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거장 사무엘에게도 아킬레스건과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평생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해 온 사무엘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신앙양육만큼은 제대로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두 아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무엘과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녀의 신앙양육이 마치 아킬레스건과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자녀의 신앙양육을 잘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 신앙양육이 인생을 마감하는 때 아킬레스건처럼 여러분을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자랑스런 면류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자녀의 신앙양육을 잘 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자녀의 신앙양육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보살피라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다’라는 말은 원어를 보면 ‘파로르기조’(parorgizo)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원 뜻은 ‘노엽도록 책망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책망을 하는데 그 책망을 듣는 자녀들이 노여워하도록 책망을 한다는 뜻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말의 문법적 특성입니다. 파로르기조라는 말은 문법적으로‘현재 명령형’입니다. 그 뜻은 반복적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노엽도록 책망을 하는데 이것이 반복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 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번번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의 신앙양육을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신앙교육 중에 아이들의 마음을 노엽게 한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양육 중 아이를 노엽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게 됩니다. 이것은 곧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의 설문조사를 본 일이 있습니다. ‘브레인월드’(www. brainworld. com)가 0세~19세의 자녀를 둔 부모 1천774명에게 ‘양육 및 부모교육’에 대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자녀 양육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로 68%가 ‘감정조절’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로 43%가 ‘자녀의 성격’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바라는 엄마 아빠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엄마에 대한 질문에는 1위가 ‘감정조절 잘하는 엄마’이고, 아빠에 대한 질문에는 1위가 ‘많이 놀아주고 대화하는 아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들이 자녀 양육 중 가장 많이 실패하는 것이 감정조절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왜 자녀들을 대할 때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것일까요? 그만큼 가깝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에게 자녀들은 너무도 만만하고 또한 쉽게 여겨지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엄마가 능력 있는 선생님이라고 해도 반드시 자녀에게도 훌륭한 선생님이기 힘이 듭니다. 유능한 미술 선생님이 자기 아이에게 그림 그리기를 제대로 가르치기가 힘이 듭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그리고 욕심이 앞섭니다. 남의 아이라면 그렇게 까지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아이기 때문에 용납하기 더 어렵고, 그냥 너그럽게 지나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양육할 때 우선 감정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호흡을 조절하면 도움이 됩니다. 심호흡을 하며 여유를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은 10분이나 20분 정도 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감정조절을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의 감정은 어떨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면 반드시 아이에게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납득할 수 없게 화를 낼 경우, 부모가 자기의 화풀이를 아이들에게 했을 경우 사과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금 감정조절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가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아이들은 부모를 존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처럼 잘못할 때 사과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둘째, 교훈하라

오늘 본문을 보면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훈하라는 말은 원어로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을 뜻합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엄격한 규율로 교육할 때 이 파이데이아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이 교훈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훈육’(discipline)과 ‘훈련’(training)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다섯 살 때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매를 맞았답니다. 호기심으로 교회의 헌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어린 카터는 그 날의 실수를 평생 마음속에 담아두었습니다.
그 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일을 기억하면서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정말 정직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후일에 카터는 자기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호되게 깨닫도록 사랑의 매를 드셨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훈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잠 13:2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자녀를 양육할 때 훈육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잘못했을 때 징계를 하고, 또 때로는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훈육을 할 때 몇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감정을 담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할 때 대부분 부모는 화가 납니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분노가 치밉니다. 그 때 훈육을 하면 자칫 감정이 담길 수 있습니다. 화풀이로 훈육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 훈육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효과가 납니다.

둘째, 모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할 때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모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로 모욕합니다. ‘네가 그렇지 뭐!’, ‘너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너 같은 게 어떻게 우리 집안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또 손 지검으로 모욕합니다. 머리를 때립니다. 뺨을 때립니다.  결국 아이들이 자존심을 다칩니다.  그러면 그 훈육은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셋째,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많은 부모들은 어떤 때는 그냥 넘어갔다가 또 어떤 때는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이 혼란스럽습니다. 훈육이 그때그때 다르면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일단 매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훈육이 ‘사랑의 훈육’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이 점을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녀 훈육할 때 꼭 명심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른 손으로 벌을 주고 왼손으로 껴안으라!” 분명히 자녀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로 훈육을 하고, 훈육 후에는 자녀를 안아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매를 들 때, 매를 드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동의를 구합니다. 벌을 준 다음에는 안아줍니다. 그리고 대화를 합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셋째, 훈계하라
오늘 본문을 보면,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훈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훈계하라는 말은 원어로 ‘누데시아’(Nouthesia)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말로 하는 교훈을 말합니다. 특히 자녀들과 대화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안데르센은 어린 시절 동화로 우리에게 인생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입니다. 이분의 동화를 덴마크 말로 ‘에벤츄어’라고 한답니다. 동물이나 식물에 인격을 부여해서 의인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담아 이야기로 엮는 형태의 동화라는 뜻입니다.
사실 안데르센은 당시 사회의 계급구조 때문에 좋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고 제대로 된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상상력과 그 풍부한 문학성이 묻힐 뻔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더 할 수 없는 스승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구도 수선공이었던 아버지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서 끊임없이 안데르센과 대화를 했습니다. 밤이면 여러 책들을 읽어주며 교양을 쌓게 했고, 때때로 함께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혀주었고, 많은 질문으로 안데르센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이끌어내 주었습니다.
그는 후일에 위대한 동화작가가 되어 덴마크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어린이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공을 작고한 아버지에게 돌렸습니다.

성경에도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통해 신앙을 전해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창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뜻밖의 명을 받았습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입니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삼일 길을 아들과 함께 길을 갑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두 종을 남겨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산 위로 올라갑니다. 또 깊은 대화가 이어집니다. 특히 제물 문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삭이 선선히 아버지에게 자신을 맡기고 제물로 제단 위에 오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잡으려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로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해 두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일련의 사건 속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깊은 대화가 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를 깊이 신뢰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깊이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이 깊은 대화를 통해 아브라함의 신앙은 아들 이삭에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대를 이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신앙은 훈계가 담긴 신앙적 대화를 통해 자녀에게 전해집니다. 주님께서는 부모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신앙적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실패합니다. 대화의 문이 닫히고 피차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자녀와 신앙적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첫째, 공감적 대화를 시도하라.

우리가 대화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 대화가 지시적 대화요 명령적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대화 방법을 공감적 대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빠 생각에는... 엄마 생각에는...”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랬겠구나...”하며 공감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둘째, 긍정적인 대화를 시도하라.

자녀와 대화할 때 약점과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하는 식의 긍정적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셋째, 축복의 대화를 시도하라.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너는 하나님과 아빠 엄마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녀의 신앙교육이라는 큰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녀손이 믿음의 자녀들로 잘 자라도록 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우리 자녀들이 아킬레스건이 되기보다는 우리의 자랑이요 우리의 면류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자녀의 신앙양육에 더욱 힘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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