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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건강한 가정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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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 (행 10:1-8)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발걸음이 닿는 곳 어디에서나 말씀을 전하시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산, 때로는 들, 때로는 호숫가, 때로는 회당, 때로는 개인집 등 장소를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어린이주일에 Live Oak County Park에서 팔로마가족잔치를 가집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귀한 하루를 보내기 원합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은 많은 경우 부모가 자녀들에게 건전한 본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론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해야만 성공한 인생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을 통하여 가르쳐야할 하나님을 경외함, 이웃을 위한 배려, 자기희생의 삶 등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자녀들은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이 얼마나 건강한 가를 진단해보기 원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온 가족이 믿음 안에서 은혜롭고 복 된 가정이 되려고 힘쓸 때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승리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지만 반면에 그들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들의 자녀들이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1. 사무엘 

엘리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된 사무엘은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잇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사무엘상 8장은 그의 노년에 일어난 스토리를 적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크게 활약했지만 아버지로서 실패했습니다. 사무엘이 연로하게 되자 그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웁니다. 원래 사사직은 제사장직과 달리 세습되는 것이 아닌데 사무엘이 우겨서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백성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아들들의 비행을 제대로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들들의 행동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동기로 작용합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왕정도입을 반대한 사무엘이 간접적이지만 왕정을 시작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사무엘은 아들들에게 사사라는 중요한 직책과 그에 따른 권리를 너무 성급하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중책을 감당할 만한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이 자녀들을 처음부터 너무 높은 자리에서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을 알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는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녀들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2. 다윗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존경하는 왕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그의 아들 압살롬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아들은 교만하게 되어 아버지를 향해 반역을 꾸밉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백성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결국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전쟁으로 내몰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과 백성의 인심이 압살롬에게 쏠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예루살렘에서 황급히 도망합니다. 다윗은 자식과 싸워야만 하는 전쟁, 이겨도 기뻐할 수 없는 전쟁을 치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의 반역을 성공적으로 제압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기뻐했을까요?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목 놓아 울었습니다. 다윗은 “내 아들아”를 다섯 차례나 반복하며 아들 잃은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가이사랴에 있던 이달리아 대의 백부장입니다. 가이사랴는 그 당시 로마인들이 세운 팔레스타인 지방의 행정 수도로 욥바에서 북쪽으로 한 30마일 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 출신의 장교로 이달리아대 즉 팔레스타인 본토인들로 구성된 군인들이 아니라 멀리 로마에서 직접 파송된 이탈리아 출신의 정예군인 백 명을 지휘하는 장교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들은 기독교에 호의적인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의 말씀만으로 자기의 하인의 병이 날 것을 말하였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는 칭찬을 듣습니다(8:1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사형 집행을 담당했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는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에도 보면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도중 폭풍으로 파선할 때 군병들은 죄수들을 죽이고자 하나 호송을 담당한 백부장은 바울을 살려 줍니다.   

1)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자들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한 무리는 유대교에 개종한 무리로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인들과 같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무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불리며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과 유대인들의 윤리적인 태도에 이끌린 사람들로서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성전에 들어가 제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복음을 제일 잘 받아들이고 복음이 전파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넬료가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외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웬만한 유대인들 못지않은 열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가장이 영적으로 든든히 설 때 그 가정이 믿음으로 든든히 서게 됩니다.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집안’하면 아내, 자녀들, 노예들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자기만 하나님을 알고 경외한 것이 아니라 집안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들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데리고 있는 부하에게도 전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고넬료가 하나님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부르러 보내는데 자기의 하인 두 사람과 함께 부하 중에서 경건한 사람을 하나를 택해 보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가정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기에 하나님의 복이 충만합니다. 

물론 건강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질병과 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악한 영은 믿음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고 남편과 아내, 자녀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모든 시험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힘입습니다. 

2)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경건, 기도, 구제 등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행하는 전형적인 종교적 의무들입니다. “항상 기도하더니”는 현재분사 구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넬료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유대인 절기 때 회당에 가서 기도하거나 어쩌다 기분이 내켜 몇번 기도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도 꾸준하게 기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천사를 통하여 그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인 고넬료가 기도에 힘썼으니 온 집안이 그가 항상 기도하는 것을 본받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생명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새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우리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젖을 먹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령한 젖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온 가족과 더불어 말씀과 기도생활을 통해서 자기성장을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 생활은 우리의 영적 생활의 기초입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오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자녀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교회에 다니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니다가 대학에 가면서 집을 떠나면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제사를 드리지도 않고 도리어 망령된 행동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언약궤 옆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 아이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식이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갖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자랑하는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이 언젠가는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게 되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럴지라도 부모가 이미 자녀들에게 성경적 가치관을 전해 주었다면 별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평생 기도해왔고 오늘도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멀리 다른 곳에 가서 생활을 하고 자녀들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이미 엮어진 기도의 줄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주님 안에서 공고하다고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지금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금부터 자녀를 위해 엎드리면 됩니다. 자녀를 위해 매일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요 가장 큰 능력이 됩니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해 주고 품에 안아 주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많이 구제하고”도 현재분사 구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점령 지역에 와 있는 장교로서 군림하고 허세를 부린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난한 유대인들을 위하여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구제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구제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께 기억된 바가 되었다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22절을 보면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종들을 만나는데 그때 종들은 고넬료가 온 유대인들에게 칭송을 받는다고 전합니다. 영향력을 끼치는 가장으로서 고넬료가 다른 사람을 열심히 구제했으니 시키지 않아도 식구들이 고넬료를 본받아 남을 섬기는 자들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자녀가 성장하면서 집을 나가게 되고 자기 생활로 독립합니다. 그런데 자기 가정에서 남을 돕고 사랑을 실천해본 자녀는 그것을 보람과 자랑으로 삼게 될 것이고 그들 또한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온 가족과 더불어 이웃에 봉사하는 기쁨을 나누는 훈련장이 되어야 합니다.   

정리한다면 고넬료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요, 온 가족이 기도하는 가정이요, 온 가족이 이웃을 섬기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건강한 가정이 되는 비결은 몇 가지 더 소개합니다.

- 영적인 질서가 세워지는 가정

아버지가 법적인 가장일 뿐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영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가정이 건강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질문중의 하나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집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응답한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때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이고, 셋째는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였답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바다 건너 한국 땅의 이야기로 그칩니까? 한국에서 아버지의 위상이 세월이 지나갈수록 점점 약화되어 점점 모계사회가 되어간다고 합니다. 전에는 식사를 할 때 아이들이 먼저 밥상에 젓가락을 대고 맛있는 반찬을 먹으려 하면 ‘아직 아버지도 들지 않으셨는데’ 하며 엄마의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서 아버지가 먼저 먹으려면 아직 애들도 안 왔는데 하며 핀잔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빠가 TV 볼륨을 높이면 아이가 입시 준비하는데 하며 낮추라고 엄마가 아빠를 나무란다고 합니다. 물론 극적으로 만든 이야기겠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나 남편을 비하하는 수많은 유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버지들이 영적인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권위를 갖겠다고 주장한다고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부터 먼저 신앙의 본, 경건한 본을 보여야 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내세우는 것은 여성의 영적인 역량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인 질서를 말합니다. 여자가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그 가정의 건강이 좌우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장로님이 이웃 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리자는 것을 당회에 건의하여 당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되는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장로님이 연합예배를 드리자고 하신 것 같은데. 연합 예배는 안 됩니다. 그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들을 통해서 며느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며느리 생각에는 모처럼 드리는 연합 예배가 그 지역에서 교회간의 협조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인상 면에서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목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시어머니 말씀을 듣지 마십시오. 연합예배는 참으로 좋습니다. 연합예배를 그대로 추진하세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권위 질서가 무너져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결정을 쉽게 뒤집는다는 것도 무례한 행동이지만 아내가 남편의 공적인 결정을 뒤집는 것도 문제입니다. 식구 모두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이든 이 질서가 깨어지면 건강한 가정이 되기 어렵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옳은 소리라고 다 덕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 자녀들과 교제를 많이 가지는 가정

식사를 같이 함으로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문제는 식구들이 너무 바빠 식사를 같이 할 시간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아버지는 직장으로 아침에 부리나케 나갑니다. 저녁식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각자의 손에는 스마트 폰이 들려 있어 그거 사용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니 대화가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식구란 말이 바로 상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함께 식탁을 둘러앉는 것은 단순히 먹는 시간이 아닌 대화의 장, 교제의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하루 세끼 다 그렇게 하긴 어려울지라도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의도적으로라도 많이 만들며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훈계만 하려하지 말고 가능하면 자녀의 말을 많이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도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기쁨과 외로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버지들도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았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엄마도 때로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가 있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절대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아버지가 아니라 때로 고통스러웠으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자녀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너 같은 자녀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함으로 그동안 혹시라도 생겼을지 모르는 껄끄러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부모가 바뀌어 자녀들의 마음을 감쌀 때 가정이 바뀝니다. 

 
-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가정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하려면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진정한 복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약속을 붙들고 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복 된 인생을 여는 master key가 들어 있습니다. 말씀 대로 행할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주어집니다. 어려울 때에도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식 농사는 잘 지은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복은 마른 우물과 같습니다. 

비가 올 때는 풍성한 것 같지만 가뭄이 오면 다 말라버립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복의 샘물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4절에 의하면 “주 안에서” 순종하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훈이라 번역된 ‘파이데이야’는 교육, 훈련이란 의미도 있고 체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올바른 징계와 교훈은 성경적이요 참다운 사랑의 표현이요 자녀들을 바로 세웁니다. 둘째가 훈계인데 주로 말로 타이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이 주님을 닮아가도록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먼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병들어 예배의 감격과 기도의 능력과 감격을 잃어버리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반복하면 자녀들은 그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본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모의 권위보다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합니다. 부모들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하며 자녀들을 노엽게 하기보다 격려할 것을 촉구합니다. 건강한 부모는 방황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며 반드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함께 기도하는 가정, 이웃을 섬기는 가정, 영적인 질서가 세워지는 가정, 자녀들과 교제를 많이 가지는 가정,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셔서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기쁨을 경험하며 자녀들은 주 안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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