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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맡은 자에게 구할 충성 (고전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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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 자에게 구할 충성 (고전 4:1-13)

1. 교회는 본래 이름이‘에클레시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불러내신 장소’라는 뜻입니다. 즉, 죄악에 찌들며 지옥길로 달음질치던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택하시고 불러내시어서 천국 들어갈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진리의 교회로 불러 모아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사명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영적인 내세소망을 가꾸는 곳으로 활용돼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조직을 통하여 장로, 안수집사, 권사, 회장이니 하는 직분과 직책을 앞세워 계급의식을 나타냅니다. 섬기는 자세는 갖추지 못하고 교회가 마치 돈이 있고 권세가 있어야 대접을 받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폐단이 생겨나 그것이 결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교회는 돈을 벌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죄인이 와서 진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영적인 소망을 갖고 사는 곳입니다. 주님 앞에 설 그날 더 나은 자격, 떳떳한 자격, 영광스러운 자격으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여 교회에서 맡긴 직분과 직책에 충성하고 그 성과로 교회는 운영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은교회를 1970년 10월 세우게 하시고 여러분들을 불러 모으시고, 진리 안에서 하늘소망을 허락하셔서 여러 모양으로 직분과 직책을 맡겨 오셨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심의 영적 소원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자고 애써 오신 분들도 많이 있고 아직까지 겉돌면서 내세 소망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눈치 보아가며 적당히 교인 행세는 하지만 성도의 자격을 갖추진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때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택함 받은 백성이라면 영감적인 설교를 듣고 회개 안할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 조직은 진리정통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소망과 은혜, 사랑이 뜨겁고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늘소망을 목적으로 살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목자와 신앙노선이 일치하고 영감적인 체질신앙이 일치하고, 또 성은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일치하는 믿음을 잘 받들어 나갈 수 있을 때 교회는 힘 있는 교회, 강한 예수님의 몸을 이룰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2. 고린도전서 4장 1절에 보면 일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군이라는 말은 헬라어‘휘페레타스’로 종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를 이르는 말입니다.

교회의 목자도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목자로 더불어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들도 교회에서 직분을 받거나 직책을 맡으면 그 시간부터 예수님을 위한 ‘휘페레테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바울이 자신을 표현하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마음을 가졌기에 항상 성령이 충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죽인다는 위협 속에서도 그의 입술은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에서  투성이가 되고, 발목에 쇠고랑이 채워지고, 온몸에 쇠사슬이 묶인 상태인데도 밤중에 실라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곳에 지진을 일으키시어 감옥이 다 허물어지게 만드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를 때린 간수장이 바울에게 우리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물었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며 담대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육신의 입장을 완전히 초월하여 영적인 소망에 취하여 사는 사도 바울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저도 사도 바울과 같이 교회에 필요한 일을 직접 하며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의 ‘휘페레타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섬기고, 교회와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중에 목양지간에 영적소망을 더불어 가꾸면서 진정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내세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목자와 모든 것이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그 사람에게도 똑같은 사명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고, 이 목자에게 계신 성령이 그 사람에게도 함께 하기 때문에 공감(共感)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통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에 여러분들도 함께 아멘으로 답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목자의 사역에 기쁜 마음으로 조력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영적 공동체이며 예수님의 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몸이라 했습니다. 새끼발가락 하나만 아파도 온몸이 통증을 느끼는 것은 신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형제, 자매 중에 누군가가 고통에 처해 있으면 그 고통을 모두가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훼페레타스’의 신분을 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듯 교회의 직분 중에 장로가 가장 높다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그 직분이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 있는 것임을 기억하셔서 항상 겸손하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로, 찾아서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성실히 충성된 종노릇 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오래 다니고 믿음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확실히 복음화된 생활을 보여주면서 복음을 전해야 전도의 성과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 하단에 있는‘비밀’이라는 말은‘무스테리온’인데 감추어 있던 ‘하나님의 계획이 성령의 계시에 의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 이것은 공개된 비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란 이 교회의 직분자들과 직책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은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기대와 소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세움 받은 종들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거듭난 사람과 같이 옛사람과 그 행실은 다 없어져서 생각이 건전하고, 말이 진실하고, 행동이 성실함으로 확실히 달라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을 일군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아들을 희생시켜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성령의 계시를 주시고 구속의 도리를 깨달아 회개하게 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 하늘나라로 가게 하시는 구원계획 입니다.


3. 2절의 ‘맡은 자’는 헬라어로‘오이코노모이스’우리말로는 집사(執事)로서 ‘하나님의 일을 손에 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이 일을 놓지 않고 잡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쥐어주신 일로 생각하고 직분과 직책을 감당할 때 온전히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이라는 말은‘나누어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거리를 손에 잡았다면 그것을 손에서 잠시도 내려놓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수직적인 연결고리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직분을 빼앗기고 자살을 하였을 때 예루살렘의 모든 이들이 그 처참함을 보게 되었고 그는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그 직분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직분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충성은 중심의 정성을 모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오로지 주님만을 위하여 더 잘 섬기자는 목적으로 내 생활이 그 소원에 끌려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고 건강과 물질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와 더불어 세웠습니다. 이후에 고린도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이 사도 바울로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그곳들에도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고린도교회가 목자가 필요하게 되자 베드로도 갔었고, 아볼로도 갔었으나 그 교회 교인들이 영적 지도자를 구분하며 말썽을 피웠습니다.

목자들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영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주장이나 이론을 내세워 그들을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하여 말을 만들어 험담하고 패당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패당 짓는 것을 없애기 위해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3~4절) ”고 했습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회개해서 그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음으로 되는 것이지, 내가 죄 지은 것이 없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여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곳에 바울을 나쁘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즉,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해서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지도자를 자꾸 판단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지도자를 통해서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최고학부를 마친 그 시대에 세계가 존경하는 석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내외를 통하여 진리를 깨달아 성령을 받고 그 이후에는 사도 바울의 제자로 영적 지도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6절에서는 이런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패당을 일삼고 또 그 패당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모략중상을 하면서도, 자신은 은혜 받고 구원 얻은 성도라고 떠벌리니 바울 사도는 7절에 이들에게 네가 성령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느냐고 꾸짖고 있습니다. 패당을 짓는 것은 왕초가 되고 싶거나 그 왕초 그늘에서 행세하고 대접받고 싶어서 일 것입니다.


4. 고린도교회의 입지적 여건은 동양과 서양의 교차 지점으로 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곳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장사꾼들로 돈이 많아 생활 속의 궁핍함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돈으로 교회 안에서도 행세하며, 패당을 일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걱정하신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는 구절입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는 말씀은 목자는 제쳐놓고 교회를 자기 맘대로, 생각대로, 욕심대로, 혈기대로 쥐고 흔들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이 말하는 우리가 진실로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원한다함은 순교적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다가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할 수 있기 위해 너희가 진정한 자격을 갖추어 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입니다. 순교를 하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쓰여 있습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28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에게서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주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죽음에 처해가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선교를 하는 이유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함 때문이요, 순교적 사명 의지 때문으로 섬김의 재물이 되자고 애쓴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이 세우시고 맡기신 일에 순교적 신앙을 다짐하며 종의 자세를 가지기 바랍니다. 섬김의 재물이 될 수만 있다면 예수님과 함께 천년 왕국에서 왕노릇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목양지간에 신앙노선이 일치해야 합니다.
과거 어떤 교회에서 신앙 지도를 받았던 간에 다시 이교회로 보내셨다면 이 교회에서 성령님이 말하게 하셔서 선포되는 말씀의 신앙노선과 일치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체질신앙으로 일치해야 합니다.
즉, 같은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성은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기대, 교회적 사명의지에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입니다. 이렇듯 선교하는 일에 합심 전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재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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