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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급히 일어나라 (행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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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일어나라 (행 12:1-12)  

 
교회가 세계를 향한 선교에 박차를 가하면 가할수록 사탄의 세력도 그 만큼 강렬하게 복음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이때까지 교회에는 유대 종교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의 박해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세속적인 권력까지 합세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헤롯왕이 손을 들어 성도 몇 사람을 해하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2세 이하의 어린이를 죽이는 잔인한 살육의 칼을 휘둘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대를 이은 헤롯 안디바스는 의인인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이제 헤롯 대왕의 손자요, 헤롯 안디바스의 조카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인 이 헤롯은 지금 교회를 진멸시키기 위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간교한 헤롯은 조심스럽게 그 칼날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대중들이 야보고를 죽인 것을 잘 했다고 하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를 잡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유월절이 지난 뒤에 대중 앞에서 공개 처형되도록 결정된 채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교회는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공개 처형을 당하기 전날 밤,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옥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저는 본문에 나오는 두 구절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3절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2) 5절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1.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3절) 

헤롯왕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그는 초대교회의 최고지도자인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왕은 대중의 박수와 평가에 의존하여 삶을 사는 전형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대중에게 영합하고 있었습니다.

요18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대제사장 가야바를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그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에게 심문을 당했습니다.
그때 가야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이 말은 대중을 위해서라면 한사람 정도는 죽여도 괜찮다는 의미입니다.
가야바도 대중의 박수와 평가에 의존하여 삶을 사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또한 대중에 영합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최고의 성직자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위한다는 백성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된 무리가 아닙니까?

어떤 분이 이런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좋은 글이라 나누고 싶습니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얼마 전 숙취로 속이 쓰려 순대국 집에서 순대국 한 그릇을 기다리고 있는데,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 보아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다음에 와요.”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 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어.......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습니다. “미안 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금방 시무룩해졌습니다. “아저씨 빨리 먹고 나갈게요........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찬 손바닥에 꽉 쥐어져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잠시 후 주인아저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그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께”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에 수저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국밥 속에 들어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모두 떠서 앞 못 보는 아빠의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였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아저씨는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아이와 아버지의 음식값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이 짧은 글은 우리의 시선을 겉모습 때문에 무시되는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만일 순대국 집 주인이라면 이 행색이 누추한 일행을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대중이 주는 이익 때문에 행색이 누추한 한 사람을 무시하는데 익숙해져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가야바의 논리를 정당하다고 동의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유대인들이 야고보 죽인 일에 대하여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죽이려고 하는 헤롯왕의 길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작은 자 하나를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꼭 그렇게 살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이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2.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절)

베드로가 옥에 갇혔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하지요!
아주 단순한 말씀이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힘깨나 쓰는 어떤 권력자를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없다더라.’고 돈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쉽게 말하여,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들은 오직 권능의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기도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 ‘기도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문제가 생겨서 우리를 압박해오면 기도는 뒤로 밀려나고, ‘힘깨나 쓰는 사람이 어디 없을까’ 하면서 사람을 찾아 나서고, 돈으로 어떻게 해결해보려고 돈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합니다.
이름은 성도인데, 의식은 여전히 세상 사람입니다.
말은 성도인데, 행동은 여전히 세상 사람입니다.
기도를 우선하고 기도에 모든 것을 거는, “하나님,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고백하는 이름 그대로의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혹자는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기도한다고 떡이 생기나 빵이 생기나?”라고 조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으로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떡이 생깁니다. 
밥도 생깁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언젠가 지희수 목사님이 인사 차 방문하여 ‘변화 (transformation)'라는 기독교 비디오 테잎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교회가 연합하여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그 지역에 역사하는 사단의 영을 묶었더니 전 교회가 4배로 성장하였고,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물질적인 번영을 이뤘다는 사실을 다큐멘타리로 엮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그 지역에만 농사가 배로 잘 되더랍니다.
그래서 ‘세계 식량기구’에서 조사를 나올 정도였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한국 교회의 축복은 ‘새벽기도회’입니다.
함께 모여 추우나 더우나 새벽마다 마룻바닥에 굻어 엎드려 드린 새벽기도.
이것이 우리 개인을 살렸고, 한국 교회를 부흥하게 했고, 이 민족을 살렸던 것입니다.
기도하면 능력이 임했습니다.
기도하면 영이 새로워졌습니다.
기도하면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축복인 새벽기도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새벽기도가 죽어감으로 성도들의 영혼이 시들어갑니다.
새벽기도가 죽어감으로 한국교회가 시들어 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정신을 가다듬어 주십시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 권능으로 행하신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① 옥에 갇힌 베드로를 깨우고, 그 손목에서 쇠사슬을 벗기셨습니다.(7절)
② 베드로의 손목과 함께 쇠사슬로 손목이 묶여 잠자고 있는 두 명의 군인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습니다.(6절)
절대 도망가지 못 하도록 두 명의 군사가 자기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베드로와 함께 잤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죄수를 호송하는 것을 보면 도망가지 못하도록 경찰이 죄수와 함께 수갑을 찹니다. 

③ 문밖에서 지키던 파수꾼을 지나게 했습니다.(6절)
④ 첫째 파수,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을 자동으로 열어주셨습니다.(10절)
그리고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던 제자들의 다락방 모임에 가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베드로가 탈출하기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가능한 상황을 깨뜨리시고 베드로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가끔 우리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여지는 충분히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실력만이 우열을 가리는 수능시험, 거기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여지가 있습니다. 
경제 법칙만이 존재하는 사업현장, 거기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여지가 있습니다.
계급만이 힘을 쓰는 군인사회, 거기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여지가 있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 생존의 시간을 결정하는 병상, 거기에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여지가 있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귀신이 사로잡으면 어디서든지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해져 가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오직 ‘불가능’이란 단어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안돼요! 
그래서 주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밑져야 본전이지 뭐’하는 심정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단어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불가능’이란 단어는 인간에게 붙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께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문제가 쉽거나 어렵거나 하나님께는 다 똑 같습니다.
‘쉽다 어렵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는 것은 사람이 자기인식을 근거로 구분해놓은 범주 일뿐입니다.
하나님은 감기 고치는 것과 암 고치는 것이 똑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은 하지 못하는 그런 분이십니까? 
지레 겁먹지 말고 믿으십시오.

복음성가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① ‘네가 미쳤다.’라고 반응을 보인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15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더욱 우스꽝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지금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도대체 그들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② ‘참말이라.’고 반응을 보인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15절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본문을 묵상할 때 주님은 저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그 자리에서 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의 소식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겠니?”
“아멘. 주님은 그렇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옥문정도를 못 열겠어요?” 라고 했을까?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 귀신에게 홀린 거겠지.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라!” 라고 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멘. 주님은 그렇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옥문정도를 못 열겠어요?” 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는, ① 작은 자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② 기도는 불가능한 상황을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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