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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밭의 백합화 (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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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의 백합화 (아 2:1-2)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 속에 들어 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 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107주년을 기념하는 성결교회 주일이자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는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일을 성결교회 주일로 정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세계 선교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결교회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1884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인천의 제물포를 통하여 미국의 감리교회의 아펜셀러 선교사와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첫발을 디디게 됩니다. 이로서 한국의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개신교는 아펜셀러 선교사를 통한 감리교회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한 장로교회가 중심이 되어 시작이 됩니다. 당연히 미국의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주도적으로 한국 선교에 앞장을 섰고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한국의 개신교회를 앞장 서서 이끌어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한국성결교회는 그 기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생적 교단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천주교가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과 접촉하여 그 문물을 배운 사람들이 들어와 천주교회가 구도란 형식으로 한국 사람들 자신의 손에 의하여 한국에 소개 되었다는 점에서 선교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교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면, 한국 개신교의 성결교회가 또한 외국 선교사가 오기 전 한국인으로 시작된 전도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개신교 선교사상 특이한 모습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귀중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한국에 성결교회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선교활동은 한국인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결교회의 시작은 외국에 있는 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와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전도관”을 세워 성결의 복음을 처음으로 전파한 사람들은 일본의 동경 성서학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김 상준, 정 빈, 이 장하 같은 분이셨습니다.

일본의 동경 성서학원은 다음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성결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 부흥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는데, 카우만 부부는 1894년 9월 시카고의 무디 교회에서 개최한 '심프슨 선교대회'에 참석했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인도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인 레티 카우만의 건강이 좋지 않아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던 중 나까다 쥬지라는 일본인 유학생을 만나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카우만은 만국 성결교회에서 목사와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1901년 2월 일본에 도착하여 일본 홀리네스 교단의 시초인 ‘중앙 복음전도관’을 세우고 밤에는 '동양성서학원'을 운영하였는데, 카우만 부부는 자신들의 힘으로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자 미국의 무디 성서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어네스트 길보른 선교사 부부를 일본으로 초청하여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카우만 부부와 길보른 선교사 그리고 일본인 전도자들은 활발한 노방전도와 개인전도를 통해 많은 회심자들이 나오자 일본 곳곳에 복음 전도관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활동을 관장하기 위해 1904년 11월 '동양선교회(OMS)'를 조직했습니다. 1904년 어느 날 전통적인 한국식 복장을 입은 두 청년이 동경 성서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들이 김 상준과 정 빈이었는데 정 빈은 10세부터 고향에서 예수를 믿었고, 김 상준은 20세에 예수를 믿고 가족에게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각각 일본에 동경 성서학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온전한 구원을 갈망하여 동경에 온 것입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성경을 연구하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몇 시간씩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906년에는 세 번째로 조선인 유학생 이 장하가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김 상준, 정 빈, 이 장하 세 사람이 삼총사가 되어 늘 만나 기도하며 장차 조선에 돌아가 ‘복음 전도관'을 개척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1907년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한 세 사람은 동양선교회 본부를 찾아가 재정적 도움을 받기로 하고 귀국하여 1907년 5월 서울 중심지인 종로 염곡에 ‘동양선교회 예수교 복음 전도관(중앙교회의 전신)’이란 간판을 붙이고 복음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5월 30일 창립 집회에서 5명의 구도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한지 4년 만인 1911년에 경성 성서학원을 세워 사중복음의 전도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서울신학대학교의 전신입니다.
정 빈, 김 상준이 전도를 시작할 때 두 가지 선교원칙을 세웠습니다. 

1. 새 교단을 만들지 않고 단지 사중복음의 체험을 전하는 것이었고, 
2. 노방전도와 개인전도와 같은 직접전도의 방법을 전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을 치고 장구를 치며 복음을 전하는 노방 전도는 많은 오해와 핍박이 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발을 멈추어 복음에 귀를 기울였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여 즉시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당시 외치던 전도의 말씀은 불을 토하는 듯 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시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지금 곧 예수께로 돌아오시오. 그리하면 중생합니다. 새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전도하여 복음전도관을 연지 6개월 만인 1908년 1월에는 272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개신교 역사상 유일한 자생적 교단으로서의 성결교회의 성도가 된 것을 우리 모두는 감사해야 할 것이요 성결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뜨겁게 믿으며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성결교회의 중심교리입니다. 
  우리 성결교회가 초창기부터 전파해 오던 전도표제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입니다. ‘사중복음’은 성경의 진리이며, 성령세례는 성결 신학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 출발은 중생입니다.  

중생이란 거듭난다는 것이요 본래 의롭지 못한 사람이 법적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으로 신학적인 용어로는 ‘칭의’ 또는 ‘의인’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하여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나의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내 심령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나 죄값으로 죽어 영벌로서의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요한복음 3:16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로마서 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거듭났다 또는 중생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 의롭다고 칭하신다 의인 의롭다고 인정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헌법에서도 중생은 “기독교의 입문이며 천국시민의 자격을 갖추는 유일한 도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Bone again하는 것입니다. 요 5:24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는 바 이것이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다시 말해서 성도라는 당당한 신분을 지니게 되었기에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는 천국을 못가도 다른 직분의 이름으로는 천국을 못가도 성도라는 이름으로는 반드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바꾸어 말하면 목사라도 성도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말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누가 성도냐 하면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 바로 성도인 것이요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가기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성도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성결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사함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들은 죄와 세상과 사단과 싸워 이기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은혜를 성결의 은혜라고 합니다. 
성결이란 말은 히브리 말로 “카다쉬”이고 헬라말로는 “하기아스모스”라는 말입니다. 성결이란 말은 “거룩하다” “순결하다” “흠이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특히 “하나님께서 구별해 놓으셨다”는 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언제나 주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하면 바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의에 빠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엡4:22~24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 우리는 옛사람의 정욕에 빠져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언제나 성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연마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결하게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록하기를 “오직 너희를 부르신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결하다는 말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라고 노래하며 영광과 존귀와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성결하다는 것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성결하다는 것은 거룩하신 성령을 온전히 좇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성령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믿는 자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은 성도들을 신의 성품에 이르게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하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4-7)고 가르쳤습니다. 성도는 거룩해야 합니다. 성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1)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나가고, 2)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3) 거룩하신 성령님의 깨우치심을 따라 온전히 좇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신유입니다.
신유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말로는 아루카, 마르페, 라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루카(arukhah)라는 말은 “치료, 완쾌, 병이 차차 나아짐”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르페(marpe)라는 말은 “치료, 고침”이라는 뜻 외에 “원기를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파(rapha)라는 말은 상처를 고친다, 위로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는 이아오마이(iaomai) 또는 데라퓨오(therapuo)라는 말로 사용되는데 ”병을 고친다, 치료한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유라는 말은 “질병을 고쳐서 원기를 회복한다” “질병가운데 있는 자를 건강케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병의 대의사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도 질병을 치유하시지만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질병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하는 광선을 비취셔서 하나님을 믿은 백성들에게 건강을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상건하기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각종 병든 자들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시각 장애자, 청각 장애자, 말하지 못하는 사람, 중풍병자, 손이 마른 사람, 한센병자,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이 신유인 것입니다. 아울러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신유의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먼저는 우리가 날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첫 번째 신유의 은혜라면 우리가 건강을 잃었을 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료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어떤 병이라도 다 고쳐주실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신유입니다. 아울러 이 병 고침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믿는 자들에게는 마가복음의 약속 그대로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사중 복음의 네 번째는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의 수종을 들고 있던 천사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던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구원에 관한 말씀이고, 그 다음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27권중에 23권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이 총 21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림에 관한 말씀은 318번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두 장에 세 번 꼴로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는 가장 완벽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구속의 사건을 완결 짓는 사건이 바로 주님의 재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 믿음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들림을 받고 천국에 입성하여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서 믿는 우리들이 또한 들림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여 완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사건이 구원의 문을 여신 알파의 사건이었다면, 예수님의 재림 사건은 구원의 문을 완결시키는 오메가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이 때에 생명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둘째 사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결교회의 아픔의 역사들을 생각해 봅니다.
주께서 씨를 뿌릴 때, 사단도 어느새 가라지를 뿌립니다. 우리 성결교회가 1933년 제1회 총회 때 선교부로부터 자치선언을 하자 교권 장악에 대한 세력간의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여, 1935년 제3회 총회 때는 감독제를 주장하는 이사회와 순회 목사등 기성세력과 의회제를 추구하는 지방출신 교역자들간에 의견차이로 결국 200여 교회 중 12개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갈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렛 성결교회도 1948년 성결교회 6명의 목사와 300의 신자가 갈라져 나가 세운 교회입니다. 

해방 후 기독교계는 신사 참배 때 변절한 인사문제와 신학교의 신학사상문제, 그리고 기독교연합회(NCC)와 복음동지회(NAE) 가입문제 등으로 분열하였는데, 우리 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를 통한 물자와 재정지원에 대한 의혹이 겹쳐져 보수측에서 ‘성결교 신학교’를 설립하고, 1962년 ‘예수교대한 성결교회’로 갈라져 나갔습니다.

1965년에 예성으로 분리했던 이명직 목사의 합동권유 메시지에 힘입어 1차 합동이 그리고 1973년에 2차 합동이 이루어졌으나 완전하게 합동하지는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예성과 기성이 합동을 위하여 연합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 대한성결교회는 국내교회와 해외선교지 교회를 합하여 3000여 교회, 약 6000명의 교역자와 80만 성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50여국에 약 4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성결교회 초기 전도가 활발하던 때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진출에 대한 특권을 가지고 을사보호조약을 맺고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을 때였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는 대륙침략이 노골화되면서부터 일제의 기독교 박해도 노골화되었습니다. 언론이 통제되어 우리 교회의 기관지인 활천도 폐간 당했고, 일본의 천조대신을 하나님으로, 일본 천황을 천지의 주로 숭배하게 하였으며 기독교 대표들에게는 일본의 이세신궁에 참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우리 성결교회는 특별히 우리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심판하러 오신다는 재림의 교리로 인해 더욱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결국 우리 교단의 200여 남녀 교역자와 100 여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교단은 해산 당했으며, 교회 건물이 군수공장으로 빼앗기고 교회 기물들은 판매 처분되었습니다. 1950년 6.25 동란 중 받은 피해도 엄청나서 106 교회가 전소되거나 무너졌고, 투옥자들을 제외하고도 집단 순교당한 교회들이 많았는데, 66명이 순교한 병촌교회, 35명이 순교한 진리교회, 김용은 목사 일가족 23명이 집단학살 당한 두암교회 등 산발적 순교자를 합하여 확인된 순교자가 156명에 달하며, 납북되거나 행방불명된 교역자들도 20여명에 달합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요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문준경 전도사가 아닙니까? 그러나 성결교회는 피난의 와중에서도 순교자들의 피를 헛되이 하지 않았습니다.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동광 교회를 비롯하여 영도, 서면, 부용, 보신교회 등을 개척하였고 피난총회를 열어 복음전열을 정비하였습니다. 또 피난신학교를 개교하여 육신적으로는 허기로 배를 졸라매었지만 영적으로는 오순절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전도사역이 있었습니다.

성결교회의 상징은 ‘가시밭의 백합화'입니다. 다른 교회보다 더 많은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렸기 때문입니다. 
백합화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성도는 아름다운 신앙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백합꽃은 꼿꼿한 자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신앙은 곧고 바르게 자라야 합니다.
백합꽃은 향기가 가득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삶속에서 예수의 향기를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다.
백합꽃은 하얀 색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순백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신앙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백합꽃의 모양은 나팔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백합꽃은 골짜기의 백합화입니다. 아가서 2장 1절에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는 인생의 수많은 골짜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비바람을 다 이겨낸 백합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신앙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가시밭에서 피어난 백합꽃입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 때마다 백합화는 가시에 찔립니다. 성도의 영적 생활은 환난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과 환난이 우리를 찌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신앙으로 굳건히 서가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밭 속에서 자라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교단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성결한 삶을 추구하는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여러 성도님들 가슴속에 가득 충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내는 알코올 중독자로 가구를 내다 팔아 술을 마시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아내를 두들겨 팬다. 거기다가 그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콜록거린다. 그들은 셋방살이 형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이 임신된 태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 하나가 재빠르게 손을 들고 일어서서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낙태시켜야 합니다.” 
대학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금방 베토벤을 죽였네!” 
베토벤을 낳은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지병인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11살 때부터 극장을 돌며 구걸 예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서른 살 때 음악가의 생명인 귀를 잃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강한 주제를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끝부분에 가서는 환희를 노래합니다.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대로 그는 “괴로움을 뚫고 나가서 기쁨을 발견”한 것입니다. 로망 롤랑이 쓴 베토벤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나이가 들고 성공할수록 깊은 신앙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신앙이 그를 모든 파괴적이고 체념적인 불행의 조건에서 구출하여 높은 경지로 인도한 것입니다. 
고난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은 신앙과 만날 때 가치와 행복의 어머니가 됩니다. 
가시밭의 백합화가무엇을 말합니까? 백합화는 가시에 찔려가며 오히려 더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고 합니다. 성결교회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까지 꿋꿋하게 견디며 성장해온 것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더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승리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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