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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신앙의 모델 어린이 (마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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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모델 어린이 (마 18:1-4) 

이 시간에 “신앙의 모델 어린이”이라는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는 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큰 사람이란 달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큰 사람이 됩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큰 사람이 됩니다. 성경을 보세요. 대부분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는 모두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두 큰 사람 큰 일군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모델로 한 어린이를 저희 가운데 불러 세우셨습니다. 모델(model)이란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나 모범 혹은 완성된 작품의 대표적인 보기를 모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본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본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어린이입니다. 여기에 아주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큰 사람이 되려면 어린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하면 큰 은혜 받는 사람이 되려면 어린이와 같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에게 본받을 것은 무엇일까요? 

1. 겸손의 본입니다. 

4절에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낮춘다는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큰 은혜를 받고 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약4:6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어린이가 왜 겸손할까요? 어린이는 나라는 자아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습니다. 사7:16에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그랬듯 자아형성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개성 자기스타일 자기취향 자기주장이 얼마나 강해지는지 모릅니다. 이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결코 큰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그 사랑은 한결같고 다 같이 예수 믿는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풍족히 받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아의 차이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겸손하고 진실할지 모르나 깨뜨려야 할 자아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임재를 체험하고 싶어서 교회에서 살다시피 엎드려 기도하고 은혜의 집회라는 집회는 다 참석하면서 갈망했지만 남이 받는 은혜를 자신은 받지 못했습니다. 10년을 그렇게 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하여 차라리 죽자고 할 만큼 애타는 심정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말씀과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기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자기개성과 자기스타일과 자기 취향에 매여 있는 자아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성격이 내성적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에 신앙생활도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송하길 원하였지 입을 열어 몸을 드려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고 그런 분위기를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데 묵상만 고집하니 마음에 잔잔한 감동만 있을 뿐 더 만족할만한 은혜는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그런 자아가 없습니다. 자기 취향이나 스타일이 없습니다. 하라는 대로 합니다. 하루 종일 웃습니다.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섯 살 난 어린이는 하루에 300번 웃고 일반 성인은 하루 17번 정도, 50대가 넘어가면 하루에 4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더 연세 들면 웃을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손자 손녀를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웃으시는 분들은 복 받은 것입니다. 웃지 않는 것은 웃을 수 없는 육신적인 이유를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의식구조 자체가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되지 않으면 은혜 받는 법칙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에 결박당해 자기에게 임해 계신 크신 하나님의 영을 풀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자기를 깨뜨려도 큰 은혜 가운데 거할 텐데 사람들이 자기 개성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성 때문에 부흥의 역사가 결박당해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 부흥이 지체 되고 있습니다. 소낙비 같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신학 가지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그 차이는 하나님을 향한 자세의 차이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다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철저히 자기의 틀을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본입니다. 

마11:25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셨습니다. 어린이는 무지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무지하기만 할까요? 아닙니다. 어린이는 놀랍게도 날마다 배우길 원합니다. 어린이들을 보면 너무 물어서 어른들이 대답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그 때 배우는 것입니다. 나무라다 물음이 그치는 순간부터 아이의 지적 성장은 멈추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들은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를 갈망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교회생활 잘하고 있는데 뭘 그러냐 하며 종교적 형식으로 만족할 뿐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린이와 같은 사람은 달랐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은 기도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하면 응답이 있어야 하지요 반문합니다. 하나님께 여쭈라 하면 여쭙는다고 들리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수준이 갓난아이도 안 되는데 모세와 같이 대면하여 말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하박국 2장을 보면 하박국과 같은 선지자도 기도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성루에 서서 기별을 가지고 달려오는 사신을 기다리듯 기다렸습니다. 기도하고서 기다려 보세요.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기다려 보세요.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응답이 옵니다. 알아집니다. 깨달아집니다. 보여집니다. 들려옵니다. 나타납니다. 문제가 해결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하나님께 묻고 마음을 모아 한참씩 기다립니다. 그러면 응답이 옵니다. 매일 같이 말씀 준비하면서도 책도 보지만 기도하고 말씀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했습니다. 샛별이 떠오르듯 마음에 서서히 떠오릅니다. 이것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관념치 않기 때문에 응답 받지 못합니다. 어린이처럼 응답을 바라고 말씀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면 응답이 옵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는 묻기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도 있습니다.

3. 열심의 본입니다. 

눅18:17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어린이는 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아무리 주의를 줘도 몇 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무엇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어린이입니다. 

어릴 때 하루 종일 가만있지를 못했습니다. 엄동설한에 추운데 동상 걸리며 쥐불놀이하러 다니고 팽이치고 연 날리고 얼음 지치고 한 번은 강에 언 얼음 위를 지나다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혼이 났고 부모님이 무서워 집에도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종일 뭘 만들거나 친구와 언덕을 파 토굴을 만들기도 하고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라고 하면 돈을 주어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이입니다.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어린이들이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의 혼을 뺏는 것들이 너무 많아 세상에 빼앗기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오락을 하면 얼마나 몰입하는지 곁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어른과 다른 점입니다. 이 어린이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받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은혜를 받습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마다 이런 어린이와 같은 열심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가 마쳐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죄송스럽지만 옛날 선조들의 설교를 돌이켜 보면 그리 유식한 말도 간증도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이 내용도 단순하고 시간도 길어 선호할 만하지 않았고 음향시설도 시원치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의 의문난 점을 풀어주는 그런 탁월한 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들 열심이었습니다. 어린이와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부흥의 불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서 배우십시다. 어린이와 같이 되면 은혜를 받지 못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생활의 모델인 어린이에게서 겸손의 본, 기도의 본, 열심의 본을 배워 하나님께 사랑 받고 큰 은혜 받는 하나님 나라의 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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