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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는 가불자들이 만든다. (히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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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불자들이 만든다. (히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매일 아침 핸드폰에 <아침 편지>라고 하여 간단한 편지를 주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이런 편지를 써보내 주었습니다.

“가불을 하라. 
할수 있으면 가불을 많이 하라.
현찰 가불이 아니다.
미래를 가불하라. 
10년후의 이루어질 것을 미리 가불하여 그 이뤄진 것을 미리 신나게 기뻐하는 것이다.
자격증 딴 것을 미리 가불하여 기뻐하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여 아기가 태어난 것에 미리 감사하고
사업을 하여 놀라우리 만큼 많은 돈을 번 것에 미리 넉넉하라.

내 주위에 미래를 가불하여 큰 소리를 치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미래를 미리 가불하여 넉넉을 소리치고, 기쁨을 소리치고, 감사를 미리 소리치고, 
몇 년 후의 목표 달성을 소리쳤는데...
고지식한 나는 그들을 허풍쟁이라고 비판을 했다.
그 사이 그들은 나보다 수십배나 큰 사업을 이루어 냈다.
이제라도 나는...'미래를 많이 많이 가불을 하리라' 다짐을 했다.
역사는 미래 가불자들이 만든다.”

가불 이야기 두 가지를 드림으로 말씀을 열겠습니다.
먼저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 다가 오는 데 허셀 오스트로폴리에르는 안식일 빵과 물고기와 닭을 살 돈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동사회의 재정 담당관에게 가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유대인들이여! 끔찍한 불행이 나에게 닥쳤습니다. 나의 아내가 방금 죽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가난한 제가 어디서 수의와 관 살 돈을 구하겠습니까?”

공동 사회의 원로들은 그가 당한 불행을 가엾게 여겨서 10루블을 주었습니다. 그런 뒤 얼마 있다가 그들이 그 착한 여인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하여 허셀의 집에 가서 보니, 놀랍게도 그의 아내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닭고기 요리를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그들은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 거짓말쟁이야! 이 사기꾼아! 우리의 동정심을 이용하여 10루블을 사기 쳐! 그게 잘한 짓인가?”
허셀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상관 있습니까? 저는 단지 당신들에게서 가불을 받았을 따름입니다...... 나중에 당신들은 위로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가불 이야기 하나 더 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세 아들을 기르기가 죽기보다 어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존심은 강하였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어린 세 아들이 자고 있을 때 문을 꽁꽁 닫고 연탄 난로 문을 열었습니다. 가스가 방안을 덮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점 정신이 몽롱하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대로 기절하면 4명이 모두 죽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네 마디가 들렸습니다. 아들 셋을 자기가 죽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죽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죽을 생각만 하였습니다.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빠져 죽을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자살을 많이 하는 곳이라 경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다가 와서 물었습니다.
“자살하려고 그러시지요?”
그는 자기도 모르게 힘없이 대답하였습니다.
“네.”

그 경찰은 예수를 영접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생명되신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교회로 나갔습니다. 무엇인가 모르게 자기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식모로 취직하였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들으시는 분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저 10만원만 가불하여 주세요.”
“왜요?”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불입니다.” 10만원을 가불받아 다음 날 새벽기도에 소원을 적은 감사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큰 아들 의사되게 하여 주세요. 둘째 아들 고위 공무원되게 하여 주세요. 셋째 아들 목사 되게 하여 주세요.”
지금은 그렇게 되어 세 아들이 모두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불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가불입니다. 믿음은 가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1. 꿈 가불

내일 이루어질 꿈을 오늘 이룬 것처럼 꿈을 가불받아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가불입니다. 
증거라는 원어는 <엘렝코스>라고 되어 있는 데 이 말은 <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확신이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그렇게 된 것처럼 가불받아 살아갑니다.

보지 못 하는 것과 바라는 것과 일치합니다.
증거는 실상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바라보는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자녀를 주시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이 자기 자손의 땅이 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손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많아 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아이를 못 낳는 데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자녀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과 같이 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창17;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이삭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삭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어느 때는 이삭이 약속의 아들이라고 하시고 지금은 이삭을 죽이라고 하십니까? 난 혼돈됩니다. 헷갈립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앞의 말씀과 뒤의 말씀을 조화시키면서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이렇게 아브라함은 죽은자가 부활하는 지 잘 알지도 못 하는 가운데서도 이삭을 도로 살리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불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가 가라성같은 대기업에서 명문 대학교 나온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사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TV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서 과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너무나 성실하고 유능하여 대리까지는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졸 학력가지고는 더 이상 벽을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학력의 벽을 넘지 못 하였습니다. 
실망과 한숨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 와서 보니 그 회사에 이사가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가 집에 들어 와있었습니다. 아내가 그 책상으로 남편을 인도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중역이 된 것으로 믿으세요. 집에 돌아오면 여기에 앉아서 중역처럼 생각하고 중역처럼 행동하세요. 중역이 될 거예요.”
그 후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중역 책상에 앉아서 중역이 된 것을 생각하고 중역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드디어 그 회사의 중역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기를 살리는 데 가치성을 두고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꿈을 가불하며 살았습니다. 이루어졌습니다.
꿈 가불 인생이 큰 일을 합니다.

요즈음 감독회장 선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이런 문자를 주었습니다.
“감독회장 아니라도 감독회장처럼 사시고, 감독회장이 되셔도 감독회장이 아닌 것처럼 사세요.”
감동이 있는 충고였습니다. 꿈을 가불하십시오. 꿈을 믿고 사십시오. 승리할 것입니다.

2. 축복 가불

역사는 가불자가 만듭니다. 가불하는 사람이 미래를 끌어다가 현실로 살기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그렇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가뭄이 극심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인이 들판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그 과부에게 말했습니다.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러나 엘리야는 먹고 죽겠다는 마지막 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에 축복의 가불입니다. 하나님이 축복 주실 줄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축복의 가불입니다. 꼭 믿음대로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집사님이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말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분입니다.
“한 달에 십일조 3000불 드리는 것이 내 꿈 이예요.”
한 달에 3000만원을 벌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민가신 후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갔습니다. 설교를 마쳤습니다. 바로 그 분이 나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담한 집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미국 올 때 드렸던 말씀이 기억나시나요?”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한 달에 300만원 십일조 드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나는 의류 제품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3000불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음을 믿고 미리 3000불씩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한 달에 3천불씩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축복 가불입니다. 축복을 가불하는 사람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3. 메시야 가불

가불이 무엇입니까? 미리 받고 나중에 갚는 것이 가불입니다. 모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3-26)

이 말씀을 보면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1200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궁중을 포기하고, 왕될 것을 거절하고, 부귀영화를 박차고 고난을 받은 것은 1200년 후에 오실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모세는 예수님을 가불받아 가지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1200년전부터 믿고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가불받아서 산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가불받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위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 1200년 후에 누가 이 땅에 올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1200후에 오실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우리도 얼마 후에 오실 예수님을 가불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언제 주님 오시다고 할 지라도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 장기간 머믈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겨우 3살이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아들을 안고 뽀뽀를 하고 말했습니다.
“아빠 올 때까지 잘 있어라.”
“언제 아빠 와?”
아빠는 10월 말에 오게 되어 있는 데 10월도 모르고 날자도 모르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 나무 잎사귀가 울긋불긋해지면 올게.”
그 후 아들은 나뭇잎만 보았습니다. 드디어 10월이 다가 왔습니다.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나무 밑에서 매일 낙엽을 밟으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야! 신난다. 아빠 오실 때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림 징조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 전쟁, 그리고 별이 떨어지고 음란하여 지고 죄가 성행하여 지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가깝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를 느끼며 긴장하고 살 때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가불하여 사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있습니다. 긴장이 있습니다. 성결이 있습니다.

4. 천국 가불

바울은 우리 모두는 하늘의 시민권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가불하여 살아가고 있는 가불인생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천국에 가있는 천국 가불 성도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목사님이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그 나라에 대한 책만 구입하였습니다. 그 나라 언어만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 나라 정보만 수집하였습니다. 온통 그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를 가불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천국을 가불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홍천 산골에 집회가서 만난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여관도 없는 동네라 할머니 집을 숙소로 삼아 할머니와 같이 며칠 지낸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고 나서 할머니에게 부탁하였습니다.
“할머니! 콜라 있어요?”
할머니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되어도 안 들어오셨습니다. 한참 후 부엌에서 불때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았습니다.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콜라를 보글보글 끓이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엇하세요?”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강 목사가 찬 콜라 마시고 감기들가봐 따끈하게 끓이고 있지.>
나는 그 사랑에 감격스러워서 시금털털하여진 따끈따끈한 콜라를 일부러 다 마셔본 적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 주시고는 내 옆에 앉아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읽는 데 사람이름만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할머니! 성경을 왜 사람 이름만 읽어요?”
그 때 할머니 대답을 나는 평생 귀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늙은이가 성경을 다 읽어서 무엇해? 이 사람들이 다 천국에 있는 데 사람 이름이라도 외워가지고 가야지.”
그 할머니의 눈은 오직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을 가불받아 살아가는 가불인생이었습니다. 

바울도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천국에서 상받을 것을 생각하여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우리는 가불 성도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천국 가불 성도입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캄보디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강 문선 장로님이 캄보디아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공항에 갔습니다. 나는 라운지에 한 명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카드는 두 명 들어가는 카드입니다. 나와 아내가 들어가는 것을 양보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백 태현 장로님과 강 신길 장로님 두 분이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장로님이 배가 고프다고 하십니다.

“장로님! 우리는 돈 주고 사먹었지만 라운지는 좋은 음식이 많이 있잖아요? 안 잡수셨어요.”
그 곳에 들어간 분들은 모두가 공짜입니다. 그런데 돈주고 사먹는 줄 알고 안 잡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은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 아름답고 풍요한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지만 종말을 끌어당기고 살아가는 가불인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백도 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무디는 재림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 년 동안 설교할 때마다 이 설교가 끝나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캠벨 몰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이 마지막 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신학자요 전도자인 R. A. 토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림의 진리는 성경의 진리 중 가장 귀중한 것이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재림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을 때 자신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말했다. 잠들어 있는 세상을 생각하니 내 속에서부터 죄인에 대한 사랑이 끓어 올랐다."

그리스도를 위해 중국에 들어갔던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나의 사역에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장로교의 강력한 전도자 윌버 채프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재림을 설교하는 이유는 재림의 사실이 나의 사역 전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하여 가는 존재입니다. 하루 살면 하루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불인생입니다.
믿음은 가불입니다.

나는 오늘도 환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먼 훗날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이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환상입니다.

“내 종 강 문호야! 너 나를 위하여 수고하였다. 잠을 제대로 잤니? 먹을 것을 제대로 먹었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썼니? 수고했다. 네 수고를 내가 안다. 낮에는 웃었고 밤에는 울었지? 아파도 참고, 화나도 혼자 울었지? 속상할 때 많아도 혼자 삼켰지? 
내가 안다. 내가 보았다. 이제 저는 내 옆에서 살아라.”
이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삽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이 땅에서 고생하며 주님을 위하여 살았던 모든 것을 보상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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