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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잠 19: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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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잠 19:13-25) 
 
요즘 우리는 교회 성경읽기 순서에 따라 잠언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 <잠언>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잠언을 <마샬>이란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마샬>이란 <비교>, 또는 <유사> 등의 의미인데, 깊은 진리를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다른 쉬운 일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 11장 22절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잠언이란 단어를 한자로 보면 <바늘 잠(箴)>에 <말씀 언(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잠(箴)자는 <대나무 죽(竹)>자와 <모두 함(咸)>자를 합한 글자인데, 함(咸)자에는 <봉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잠이란 대나무로 봉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나무로 봉한다는 것은 옛날에 대나무 바늘을 사용해서 떨어진 옷이나 자루를 꿰맨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잠>자는 뚫어지고 찢어진 부분을 꿰매서 봉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잠언이란 인생에 구멍이 뚫리고 찢어진 사람들에게 지혜가 될 말을 해 줌으로써 그들의 인생의 구멍을 막아주고, 찢어진 것을 온전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잠언서의 주제는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바르게 살게 해 주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의 유익에 대하여 잠언 1장 2-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아멘!  

잠언들의 내용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지혜입니다. 그 핵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도덕적 교훈들이 있습니다. 효도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등의 교훈입니다. 
셋째는 사회생활의 교훈들이 있습니다. 근면할 것, 바른 언어생활을 할 것, 다른 이들과 화목할 것 등에 대해 말씀합니다. 
성경의 잠언은 모두 31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는다면 우리 삶에 지혜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늘 가까이 두고 새기면, 축복을 얻게 되고, 올바른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잠언의 관심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선인과 악인,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다투는 사람과 다툼 대신 화평을 가져오는 사람......이 둘 중 하나입니다. 모든 인생사의 문제는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은 환경이나 여건에 대해 말하는 대신에, 그 환경이나 여건에 대응하는 사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만 바로 서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잠언의 목적은 환경을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서 나쁜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사람의 문제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아멘. 여기 미련한 아들과 다투는 아내가 등장합니다. 결국 사람이 문제지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했는데, 팔레스틴 지역은 비록 비가 많이 오는 곳은 아니지만, 지붕이 평편하고, 진흙이나 회를 반죽하여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는 일이 많았습니다. 계속해서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옆에서 계속 가족들의 마음을 찔러대는 아내는 정말 문제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남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아내의 예를 든다면 <욥의 아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욥이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병들었을 때, 그녀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는 남편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위기를 극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기 2장 9절을 보면 그녀는 남편에게 말하길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아픈 남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헤집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아내들도 많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할례 때문에 모세가 위기를 만났을 때,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여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는 남편과 한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헌신한 뛰어난 여성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좌절한 남편 마틴 루터를 격려하여 종교개혁을 완수하게 도운 <캐서린 보라>같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지혜로운 아내들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말씀을 읽는 느낌이 어떻습니까? 특히 결혼한 남성들의 느낌이 어떻습니까?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고 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내게 최고의 아내를 주셨어.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어쩌자고 저렇게 엉망인 아내를 주셨나요?>라고 원망하십니까? 

이런 생각은 여성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렇게 멋없고 꽉 막힌 남편을 주셨는가?>라고 원망하거나, 아니면 지혜롭고 자상한 남편을 주신 것을 감사할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가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만, 문제는 그 생각이 결정론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미 어리석고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배우자와 결혼했는데, 물릴 수도 없으니 이제 내 인생은 희망이 없어.>라고 생각할 때, 완전히 절망하게 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는다>는 말씀이 <배우자가 이미 어리석거나 슬기로운 사람으로 결정되었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어리석은 사람과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슬기로운 사람과 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은 오히려 <지금까지는 어리석었어도, 잠언을 배워 앞으로 슬기롭고 지혜롭게 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의 목적은 사람의 변화입니다. 배우자의 변화도, 우리 자신의 변화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비단 잠언만의 목적은 아닙니다. 성경 전체가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삶의 목표를 모르던 사람을 가치 있는 인생을 살도록 만드십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존 뉴턴, John Newton>은 선장의 아들로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후 그는 비뚤어졌고, 3년 후에는 학교마저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뉴턴은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했고, 좋지 않은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1743년 해군에 강제 징집된 그는 해군 함정에서 탈출한 죄로 붙잡혔는데, 아프리카에서 노예 매매 조직에 소속되어 일한다는 조건으로 풀려났습니다. 그 후 1948년까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 파는 악랄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 그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위해 드렸던 기도는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해 많이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어느 날 대서양을 건너던 뉴턴은 큰 폭풍우를 만났고,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떠오른 것은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어머니의 유물로 생각하여 간직하던 작은 성경을 꺼내 들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단 한 번만 기회를 주옵소서. 여기서 구원해 주신다면 일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1755년부터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와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의 설교를 들으며 신학을 공부했고, 40세가 되던 1764년부터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찬송시를 작사했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05장>이란 찬송시입니다. 

이 찬송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존 뉴턴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세상의 욕망을 따라 어리석은 자로 살던 그를 믿음 안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들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복음증거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성령님 안에서 사람은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러기에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께로서 말미암는다>는 표현은 결정론이 아닙니다. <내 남편, 내 아내는 이미 희망이 없다>고 단정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틀렸어. 난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았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인생을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요, 진정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철저하게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훈련하고 개조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세요.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어 자기 영혼을 멸망의 늪으로 끌고 가던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명,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면 그는 자기 영혼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남편도, 아내도, 미련한 자녀도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18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아멘. 예전에는 희망 없다고 생각되는 자녀를 부모가 죽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금 읽은 말씀은 희망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징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징계가 무엇입니까? 꾸짖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또 20절을 다같이 읽으실까요?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어리석고 바보같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희망이 있으니,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언젠가는 지혜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점차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성숙해 갈 것입니다. 

결국 잠언의 목적은 죄악과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권고하시고 훈련하시고 가르쳐서 지혜롭고 아름답게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지키면 놀라운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23절은 그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어봅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할렐루야!  이 축복을 우리 모두가 받게 되길 소원합니다. 

문제는실제로는 어리석기 그지없으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거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압니다. 본문은 이런 사람은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말씀합니다. 25절의 앞부분을 보세요.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그러므로 교육에 매가 빠질 수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랑의 매는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스스로 매를 드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지혜를 얻게 되면, 사람이 변할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본문 15절과 24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입니다. 15절은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고 했고, 24절은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비웃고 있습니다. 

또 분노도 어리석은 사람의 일입니다. 19절을 보면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지혜를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말씀이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 했기 때문에, 17절대로 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22절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그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기꺼이 인자를 베풉니다.  그 결과 다른 이들이 그를 사모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또 그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립니다. 21절을 보세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아멘. 
우리 모두 잠언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지혜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끝내기 전에 반드시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잠언을 읽고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잠언을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잠언 1장 1절은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잠언서가 모두 솔로몬의 잠언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아굴의 잠언과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잠언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절대 다수의 잠언이 솔로몬이 말씀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4장 32절은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잠언을 말한 솔로몬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여인들의 유혹을 이기라고 권면했지만, 정작 자신은 많은 이방 나라의 공주들을 비롯한 많은 여인들, 무려 일천 궁녀를 얻어 마음이 흐려졌습니다. 또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들으라고 가르치던 그가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그의 말년은 실패자의 모습이었고, 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두 나라고 분열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잠언을 말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잠언대로 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 말씀은 잠언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잠언이란 읽고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살아서 이 혼탁하고 무질서한 세상에서 바르게, 옳게, 충실하게, 복되게, 덕스럽게, 유익을 끼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사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을 따라 잘 살아 복된 인생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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