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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많이 맺으라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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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많이 맺으라 (요 15:1-8)


농산물 품평회에서 항상 일등 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해마다 자기 씨앗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웃 농부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습니다. 
“다 저를 위해서입니다. 바람이 불면 꽃가루가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옮아갑니다. 따라서 이웃 밭에서 질 나쁜 곡물이 자라고 있다면 내 곡물의 품질도 나빠질 수밖에 없지요. 내가 이웃에서 좋은 씨앗을 나누어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나는 무엇이다”라는 선언입니다.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이며, 영어로는 “I am”입니다.
요 8:21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씀하셨고 요 6:35에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이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없이는 우리에게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로 인해서 잘 살고 출세하는 관계가 아니고,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명적인 관계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10:9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야만 우리의 문이 열리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을 받게 됩니다. 요 10:11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요 11:25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부활의 생명이 되십니다.

계속해서 요 14:6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길이 많이 있지만 오직 영생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는 “나는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무엇이다”라고 할 때 보편적이고 알기 쉬운 낱말들을 사용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는 반도체”라고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이해하고,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빵과 물과 빛과 포도나무, 그리고 선한 목자 등으로 일반적인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부분은 목자였고 그들의 농사는 포도와 밀로써, 밀로 빵을 만들어 그들의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고기는 주로 양고기를 먹으며 여기에 곁들이는 음료수가 포도주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도나무가 없어진다는 것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영원히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기쁜 일도 포도주, 슬픈 일에도 포도주, 맛있는 식사에도 포도주였습니다. 

모든 의식과 잔치에는 포도주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포도가 없어진다는 것은 자기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친숙한 식물 중의 하나였기에 예수님께서 포도나무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가지가 없는 줄기가 없고 줄기가 없는 가지는 살 수가 없습니다. 잘 아는 대로 나무에는 원 줄기와 가지가 있고 가지에는 잎이 있습니다. 잎은 가지에 붙어서 태양열을 받아 줄기에게 주고, 또한 줄기는 뿌리에서 오는 진액을 받아 잎으로 연결시켜 서로 의존하고 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줄기가 먼저입니다. 서로 같이 연결되어 있지만 가지는 몇 개를 끊어내도 살 수 있지만 줄기를 끊어버리면 가지는 다 말라 버립니다. 그래서 원줄기가 중요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두 종류의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가짜 포도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속지 않아야 합니다. 겉보기는 똑같은 것 같은데 열매를 보니 들포도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습니다. 아무리 겉보기에 좋아 보여도 열매가 다르다면 이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 외에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이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님이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도나무가 보기에 좋은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흠모할만한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꾸미기 열풍이 불어 심지어는 성형을 해서라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는데 하지만 겉모습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속이 아름답지 않으면 나오는 것은 추하고 더러운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비록 포도나무가 나무 자체로는 쓸모가 하나도 없지만 그 열매 하나로 귀하게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포도만큼 몸에 좋은 열매도 없습니다. 거기다가 물이 귀한 이스라엘 땅에서는 포도즙이 물을 대신하기까지 하니 더욱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에도 전제로 부어질 정도로 포도는 귀합니다. 결혼식에서 마지막 순간 신랑과 신부가 사랑의 언약을 하는데도 이 포도주가 귀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바로 그런 귀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 그것도 참 포도나무가 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나무에 달려 있는 가지입니다. 

다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런데 그 가지가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먼저는 무릇 내게 붙어 있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붙어 있지 않다면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의 생명을 함께 지닌 자가 아니라면 그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이게 기본이고 출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께 붙어 있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가 있고 열매를 맺는 가지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당연히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라면 열매를 맺어야 마땅한데 어째서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까? 그건 아직 자라지 못한 가지일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린 가지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미 열매를 맺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 이제는 선생이 되어도 마땅한 데도 불구하고 아직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젖이나 먹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아직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면 이것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농부가 포도원을 차렸습니다.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와서 봤더니 열매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지기에게 이르기를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저런 나무는 찍어 버려라” 그랬더니 청지기가 말합니다. “주인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거름도 주고 잘 가꾸어 볼 테니 한 해만 더 기다려 보시고 그래도 열매가 없다면 그 때 찍어버리도록 하시지요?” 
그래서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한데 오늘 본문은 나무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중에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진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지는 어떻게 하신다고 했느냐 하면 제거해 버리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으면 줄기로부터 모든 영양을 다 공급 받습니다. 줄기에 붙어 있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서 내가 잎을 내고 꽃을 피워야 거기서부터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지가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줄기로부터 주어지는 영양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잎을 내서 햇빛을 받아 공기 중의 일산화 탄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열매가 맺혀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잎을 내서 숨을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양분도 받아들이려고 하지를 않아 거기다가 숨도 쉬지 않으면 그 가지는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농부가 그걸 보고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제거해 버리겠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하면 가지가 영양분을 줄기로부터 받듯이 주어지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섬김이요 베풂입니다. 순종 없는 섬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아무리 섬기고 베푼다고 해도 그건 바른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잎을 내어 숨을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언가 하면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숨 쉬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까? 단 1분도 숨을 안 쉬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초능력자들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오래도록 숨도 쉬지 않고 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뭐에요?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 보십시다. 교회까지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십니까? 그저 밥 먹을 때 잠깐 기도하는 그것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마십시오. 정말 중심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시냐고요? 

보세요 여기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멪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그랬습니다. 줄기에 붙어 있어 줄기로부터 주어지는 양분을 받아들이고 잎을 내어 숨을 쉬면 가지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기도하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되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병든 가지는 잘라내고 영양분도 듬뿍 주고 벌레 먹지 않도록 약도 쳐 주고 든든하고 좋은 열매가 맺도록 접과도 해주고 절지도 해 줍니다.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냅니다. 그게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나는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만 붙잡고 있으면 됩니다.  

다시 돌아가 봅시다. 가지는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받습니다. 그리고 잎을 내어 숨을 쉬면 하나님께서 햇빛 에너지를 통해 광합성이 이루어지도록 하셔서 줄기로부터 온 영양분과 합하여 열매가 되어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 열매를 자신이 먹는 일이 없습니다. 나무는 그 나무를 심어 준 그 사람을 위하여 나무의 열매 전부를 드립니다. 만약 나무가 끝까지 자기를 위하여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결국은 썩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왜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느냐 왜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을 가져다가 주님 앞에 마중물로 드리고 또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나는 목자요 너희는 양이라고 할 때 양을 목자가 돌봅니다. 양은 목자를 따릅니다. 양의 삶을 목자가 책임집니다. 마찬가지로 양은 목자를 따를 뿐 아니라 목자에게 털과 우유를 제공합니다. 똑같습니다. 가지된 우리가 줄기로부터 영양분을 받고 그것을 가지고 열매를 맺을 때 누가 기뻐하느냐 하면 농부가 기뻐합니다. 그리고 농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를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양분이 공급될 수 있도록 거름도 주고 김도 매주고 약도 주고 물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지로 하여금 더 풍성하도록 만들어 주고 불필요한 것은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님에게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드려야 합니까? 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까? 그게 원래 줄기 즉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씨앗을 주님이 우리 생명에 심어주셨습니다. 그래 그것이 자라 열매 맺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 안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충성과 절제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순종하고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바칠 때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이런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어지도록 하셔서 우리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여 이렇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요 항상 하나님 앞에 시간과 정성과 물질로 심는 성도요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본문 2절은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금 8절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런 열매나 맺는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으니 당연히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포도나무 열매입니다. 하지만 그저 포도를 맺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같은 포도라고 해도 좋은 포도를 맺어야 합니다. 

밭에 심은 곡식도 가라지가 있고 열매가 있듯이 포도도 좋은 포도가 있고 들포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맺는 열매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포도가 되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보기 좋고 먹기 좋고 상품 가치가 있어야 그게 좋은 포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보기에도 좋고 모두가 고개를 끄떡일 정도로 그렇게 섬기며 나누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나무는 열매를 자기가 먹지 않습니다. 다 주인에게 드립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 나무로 더 열매를 맺도록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열매를 많이 맺으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많은 열매이기도 합니다. 그저 한두 번만 그럴 듯하게 하다가 마는 그런 삶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언제든지 주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당연히 포도를 찾듯이 하나님이 자녀된 우리들에게 주님이 찾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백부장의 표현대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고 내 노라 하면 내놓고 주라 하면 주고 섬기라 하면 섬기고 이게 바로 종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더 이상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아바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님은 이미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순간 주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시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랬습니다. 즉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라는 것은 주님의 말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안돼요. 그리고 많은 것이 우리에게 부족해요.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한데 이 말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갖고 싶은 대로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농부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구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구해도 단순히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주님이 기뻐하시도록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따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정말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시고자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자기 목숨까지도 주신 분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무엇인들 아끼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한 없이 주고도 또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께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살아가고 계십니까? 주님을 자주 뵙고 있습니까? 아니면 살살 주님을 피해 다니고 있습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내가 열매를 맺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그저 주님의 뜻에 나를 내어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아뢰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부족합니다. 나는 이렇게 연약합니다. 나는 이렇게 추합니다. 나는 이렇게 모자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깨끗하게 하시고 주님이 채우시고 주님이 풍성하게 하시고 주님이 열매 맺어 자라게 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자요 내가 모든 필요한 것으로 다 갖추고 있다고 한다면 여기 이렇게 구하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또 내가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도 갖추고 있는 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열매 맺도록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단지 내가 할 일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원하는 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약속입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우리 모두가 이런 기도의 사람되심으로 다 주님의 응답하심을 통해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으라,” “내 안에 거하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짧은 구절 안에 이렇듯 반복해서 내게 붙어 있으라 내 안에 거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주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얼마니 이것이 이렇게 중요하면 이렇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느냔 말입니다. 보통 두 번 말하면 강조요 세 번 말하면 최상의 강조가 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세 번을 넘어 다섯 번 여섯 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과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제거해 버리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주님 안에 거해야 하는데 그 길은 곧 주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오신 성령님을 말씀 가운데서 더욱 확실하게 신뢰하고 깨달아 성령의 주시는 능력도 받아들이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 안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도록 이끌어 가시는 귀한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할 줄로 압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길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항상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제자인가 하면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의 능력이 주님의 은혜 아래 우리를 사로잡아 항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이요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주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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