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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화와 통일의 일꾼 Peace-Maker (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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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의 일꾼 Peace-Maker (마 5:9)

- 평화통일 세미나 -

기독교를 가리켜 흔히 화해의 종교라고 하고 기독교 복음을 화해의 복음이라고 하며, 기독자를 '평화의 사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두 다 옳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시요(엡 2:14), 주님은 평화에로 우리를 초대하시며(마 11:28- 30), 화평케 하는 직책을 당신의 사람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고후 5:18). 

더욱이 오늘 본문에는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화해의 사도, 평화통일운동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평화를 직접적으로 400회 언급하고 간접적으로는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의 평화로 시작하여 신천신지의 평화로 끝납니다. 범죄로 에덴동산의 평화가 깨어졌으나 십자가로 다시 평화를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신자들 마음에 평화로 다스리시고 앞으로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평화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 2:13-14, "이제는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은 불경건하고 무능하고 죄악되고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외아들의 피로 우리를 자신과 화목시키셨습니다(롬 5:8, 10).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삼으사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요일 2:2). 불화와 분규와 분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평화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흘리신 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에 나오는 각각의 축복들은 천국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인격적 특성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의 축복은 팔복 중에서 일곱 번째의 것으로서, 화평케 하는 자는 이제 팔복의 정상에 거의 다 이르게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장성한 당신의 아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영어로는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을 peace-maker, 즉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화평케 하는 자들은 먼저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불화가 있으면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불편한 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근심하며 기도하면서 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화평케 하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또 그들은 자기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간에도 서로 미워하거나 다투는 것이 보이면 그 둘 사이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화해시켜 보고자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과정에서 자기자신이 많은 손해와 희생을 보더라도 서로 불화하던 두 사람이 화해의 악수를 할 때 그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곧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분열과 다툼과 분쟁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는 이런 화평케 하는 사람, 즉 peace-maker들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화평케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자신이 하나님과 화평케 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분열과 다툼의 근본원인은 우리 인류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해를 이루어 내면적인 평화를 얻은 사람만이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평화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을 보면 대체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 기독교인들은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 평화애호가, 즉 peace-lover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화평케 하는 자는 그처럼 평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평화애호가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사랑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에 뛰어 들어가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는 peace -maker의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희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 불화하며 싸우는 모습이 안타깝고 슬퍼서 그 가운데 뛰어들어가 끝내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 내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런 화평케 하는 자, 즉 peace-maker의 최고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고, 또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의 신앙을 고백합니다만, 그 십자가는 분열과 투쟁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이 서로 적대시하며 다투는 인간들 사이에 들어가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발길질을 당하고 매를 맞아 등이 터지셨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과 희생의 십자가에 달려 몸이 찢어지심으로 불화가운데 있는 하나님과 우리들의 손을 맞잡아 주셨고, 또 서로 적대시하며 싸우는 우리 인간들의 손을 맞잡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케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에게 주님은 이제는 너희도 이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을 이루기를 힘쓰며, 또 사람들 사이에 화평을 이루고자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들, 즉 화평케 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화평케 하는 자들이야말로 복된 자들이요,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받기에 합당한 성숙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툼이 있다가도 그 사람만 들어가면 웃음의 장이 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좋은 분위기에도 들어가기만 하면 긴장이 되고 갈등이 생기게 만드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간에도 화평을 만드는 나라가 있고 늘 불안을 야기시키는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됨의 증거 

오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다운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란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기적을 일으키고 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아들이 하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을 만드셨습니다. 이 화평을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화평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이방의 백부장을 통해 나왔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하나님의 아들됨이란 화평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화평을 위하여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요1:12).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산상설교에서 주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가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입니다. 화평을 위해 가장 귀한 것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화평의 하나님을 닮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단은 무슨 역할을 합니까? 분쟁을 만들고 평화를 깹니다. 오해를 만들어 내고 사이를 벌려 놓습니다. 화평보다 불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일 수 없습니다. 


화평을 추구했던 사람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이방인 속에 살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카인 롯과 갈라섰고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였습니다(창13장).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역시 화평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그는 그랄 목자들에게 자신의 우물을 양보하고 다툼을 피합니다. 결국 그는 그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화목입니다. 마 5:21-26절을 보십시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3-24)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형제와 화목하지 않은 채 예배만 드린다고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면 형제와 먼저 화해를 해야 합니다. 

가인이 그 형제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동생에 대한 분노를 품고 동생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형제를 죽일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다가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시지 않으므로 형제를 죽였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마 5:44)

바울 사도는 이 가르침을 따라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롬12:17,18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화평은 나의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화평을 이루는 사역을 하시기 위해 주님은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희생하셨습니다. 결국 자기를 온전히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화평을 위한 사랑은 독생자를 희생하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랑 받기 원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없습니다. 이해 받기 원하는 한 진정한 이해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사람 아시시의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의 기도를 생각해 봅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내가 희생하여야 화평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완성해 주실 세계의 특징은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나라의 특징이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 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호 2:18 "그 날에는 …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질 세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재림시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칼과 미움, 증오, 맹수 같은 마음들을 평화의 모습으로 바꿀 때 진정한 화평의 세계는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을 화평의 세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선교적 차원의 평화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을 때 진정한 평화가 이 세상에 심겨집니다. 

나는 오늘 화평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예화) 어떤 부부가 사이가 너무 나빠져서 오래 동안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이혼을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남편 것과 아내 것을 따로 따로 나누고… 이렇게 해서 살림을 다 둘로 나누는데 마지막에 딱 남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불행하게 죽은 아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아들의 물건을 모두 다 치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그 아들의 일기장이 하나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부부는 서로가 그것을 자기가 가져가겠노라고 다툽니다. 서로 한참을 다투다가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 일기장을 읽어보고 태워 버리기로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문제의 그 일기장을 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장에는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엄마 제발 싸우지 마세요."라는 말이 수도 없이 쓰여 있었습니다. 제발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얘기들이 거기 가득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죽은 아이의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굳게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이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줍시다."하고 다시 화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피스 메이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피스 메이커가 되겠습니까? 그 일을 누가 할 것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나로 인해서 가정에 평화가 오고, 교회에 평화가 오고, 나아가서 이 사회, 이 나라 남과 북에 평화가 온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런 역사가 있을 때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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