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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이 된 왕따, 모세 (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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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왕따, 모세 (출 3:1-5)
  

얼마 전에 우리 감리교 목사중에 미인대칭 강의를 잘 하는 김 기현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책을 한 권 썼는 데 미리 읽으시고 추천서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원고를 받았습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왕이 된 왕따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오리 알 속에 백조 알 하나를 넣었습니다. 오리 어미는 그것도 모르고 알을 품었습니다. 오리가 깨어났습니다. 그 중에 백조 한 마리도 깨어났습니다. 오리들은 자기들과 다른 백조를 왕따 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조도 자기 모습이 다른 오리들과 달라 스스로 왕따 당하며 살았습니다. 항상 구박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백조가 호수 위를 날랐습니다. 구박을 받으며 왕따가 된 백조는 자기도 저렇게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날개를 푸득여 보았습니다. 하늘을 치솟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는 오리가 아니었습니다. 백조였습니다. 그 동안 왕따를 당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왕따라는 말은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흔히 사용하는 말이므로 오늘 사용하려고 합니다.

통계를 보면 지금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는 학생들이 자살하는 소동을 많이 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왕따를 주제로 한 영화 Bully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300만 학생들이 왕따 의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왕따를 느끼며 고독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여 주지 않고 나를 따돌리는 것같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다 잘 어울리는 데 나만 외톨이가 된 것같은 감정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왕따가 왕이 된 이야기가 허다합니다.

왕따 당한 모세가 왕으로

성경에서는 모세를 보면 압니다.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종살이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70명이 애급에 들어 와서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번성하였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번성하였습니다.

애급 왕 바로는 인구말살 정책을 썼습니다. 아들낳으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 어머니는 모세를 죽이지 않고 기르다가 3개월만에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바로왕의 딸 공주가 목욕을 하다가 모세를 발견하였습니다. 길렀습니다. 40년 동안 궁중에서 자랐습니다. 40년만에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고 민족 해방을 시키고 싶어하였습니다. 애급 사람을 죽였습니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완전 왕따였습니다.

궁중에서 왕따 당하였습니다.
애급 백성들로부터 왕따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혼자만 궁중에서 살다가 미디안으로 도망간 모세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모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00만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한 명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완전 왕따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찾은 것은 하나님 한분뿐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 모세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신을 벗이라. 내가 너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리고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왕따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따 당한 다윗이 왕으로

또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윗입니다. 이새가 아들 8명을 낳았습니다. 다윗은 막내입니다. 8형제가 모두 들에 나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이새의 집에 가서 아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
사무엘은 기름을 가지고 이새 집으로 갔습니다. 이새에게 아들들을 앞으로 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들들이 있는 곳으로 연락을 하였습니다.

다윗의 형들 7명만 사무엘에게 왔습니다. 다윗은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7명 아들들을 보며 기름을 붓지 않았습니다. 왕따 당한 다윗을 찾아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왕따를 당하였던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왕따란 의미

왕따란 특이하다는 말입니다. 잘 나서 특이하든지 못 나서 특이하든지 여하간 특이한 사람은 왕따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이하면까 왕따 표적이 됩니다. 백조가 오리와 다르니까 따돌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싫어 한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85%가 고아였거나 홀부모밑에서 자랐습니다. 역사적 인물 400명을 조사하여 보니까 75%가 홀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고아였습니다. 저명인사 85%가 결손가정에서 왕따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1995년 12월 호에서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은 징기스칸이었다고 지목하였습니다. 징기스칸은 9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아서 마을에서 9살에 쫓겨났습니다.
징기스칸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탁하지 말라. 나는 9살 때 아버지를 일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 먹으면서 연명하였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일이었다.
배운 것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하여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하였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남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은 특이하다는 것입니다. 탁월하니까 따돌림받는 것입니다.

왕따에서 벗어 나는 길

그러면 왕따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가요? 무엇에나 길이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따돌리던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따르고 같이 살 수 있게 될가요?
모세를 보면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1. 왕따 시키는 곳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따돌린 애급으로 갔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 가야 합니다. 누구도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싫은 사람이라고 안 만나면 그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왕따를 당하고 맙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면 됩니다.
그런데 왕따 당하는 곳으로 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가 가고 싶다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모세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대로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단 한번도 애급으로 돌아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50년 살면서 단 한번도 뚝섬에서 살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는 단 한번도 갈보리 식구 여러분과 함께 목회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나는 30년 목회하면서 한번도 감독회장 후보가 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자기가 싫어하는 곳, 자기를 죽이려는 곳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누가 나를 피하고 왕따시키는 것을 느끼면 먼저 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 것이 왕따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싫어도, 가기 싫은 곳이라 할 지라도 가야 합니다. 먹기에 쓴 약이 병을 고칩니다.

선배 목사님이 나에게 책을 주시면서 싸인하여 준 말씀이 있습니다.
<아사교회생, 아생교회사>(我死敎會生, 我生敎會死>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살면 교회가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싫은 곳으로 가게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니다. 따돌림받기 싫으면 따돌리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2. 왕따시키는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애급과 이스라엘에 모세에게 관심이 없었습나다. 궁중은 모세를 버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를 따돌린 애급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울부짖고 기도하는 해방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중한 하나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200만 전체가 이스라엘을 왕따시킨 것이 아니라 모세없으면 안 된다고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려는 사람을 따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축구 선수 김 지성의 왕따 경험

우리 나라가 월드컾 4강의 신화를 이루었습니다. 견인차가 히딩크였습니다. 월드컾 경기가 끝나고 우리나라 박 지성 선수를 유럽으로 차출하여 갔습니다. 히딩크가 감독으로 있는 축구단에 입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럽 축구 선수들은 박 지성을 완전히 왕따시켰습니다. 혼자 동양인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도 달랐습니다. 말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축구전이 열리면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항상 후보였습니다. 어쩌다가 선수로 뛰게 하려고 벤치에서 일어나 워밍업 운동을 하면 군중들은 우--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리에 들어가 앉으라는 말없는 말이었습니다.

왕따에서 벗어나는 길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기회가 오면 힘껏 뛰어서 두각을 나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쓰러질망정 무릎을 꿇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골을 잘 넣었습니다. 자기 팀이 이기도록 죽을 힘을 다 하였습니다. 박 지성이 나가서 뛰면 이기게 되었습니다.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말을 걸고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왕따에서 벗어났습니다. 팀에게 유익을 준 이후 왕따시키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을 위하여 무엇을 줄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좋아 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하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죽이려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모세를 따랐습니다.

그 후 모세가 한 일은 오직 기도였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시내산으로 오르거나 성막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모세다워진 길이었습니다.
홍해가 막혔습니다. 뒤에서는 애급 군사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홍해를 가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31)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폴 트류니에르는 말했습니다.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이 주는 에너지가 크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아픔이 주는 에너기가 크다는 말입니다. 큰 아픔을 당해본 사람은 그만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따를 크게 당해보고 큰 외로움을 당해본 사람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언급한 대로 왕따를 크게 당하여 본 고아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역사상 고아였다가 헬라제국의 대왕 알렉산더, 로마의 영웅 시저,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 미국 건국 대통령 워싱턴,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스라엘 최초 여자 수상 골다 메이어, 히틀러, 레닌, 스타린, 비스마르크, 프랑스 대통령 드골 모두가 고아였습니다. 새르트르, 스탕달, 단테, 톨스토이, 볼테르, 바이런, 도스토에프스키도 고아였습니다.

공자는 한 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루소, 데카르트, 파스칼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였습니다.
아픔을 크게 당하여 본 사람들이 큰 일을 한 증거입니다.

듣지 못 하고 말하지 못 하고 보지 못 하는 3중고의 장애인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시력을 읽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비전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앞을 보지 못 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앞을 볼 수 있지만 비전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드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길렀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을 잘 길렀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윌리암 부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가 가르치기 전에 내가 먼저 가르쳤지요.”
먼저 점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가 점령하기 전에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 영을 지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간이 하나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공간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채워질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입다가 그렇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서 불행하게 자랐습니다. 이복 동생들이 기생의 아들이니 재산을 나누어 갖지 못 할 것이라고 없신 여겼습니다. 완전히 왕따시켰습니다. 입다는 그들의 등살을 이기지 못 하여 고향땅 길르앗을 등지고 돕땅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이 때 입다를 좋아하던 이들이 입다 밑으로 몰려 들어 군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이 즈음에 강대국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되었습니다. 이길 수 없음을 판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입다는 전에는 나를 내쫓더니 이제는 도움을 청하느냐고 거절하였지만 그들은 간절이 요청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입다는 지도자로 삼아 주면 나가서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전쟁터에 나가 싸우려고 하였으나 전쟁의 경험이 없는 군대를 몰고 이기기란 어려웠습니다. 이 때 입다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나가서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국가적인 군대가 이기지 못 하는 적을 개인 군대로 이겼습니다.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외면당한 아픔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시련이 크고 왕따가 진할수록 더 큰 에너지가 충만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인도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무지개는 이슬비 온 후에 뜨지 않습니다. 소낙비 후에 무지개가 뜨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외로움을 느끼면 이 세상에서 혼자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어울리면서 나 하나만 상대하여 주지 않는 것같은 고독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될 가요?

그들에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왕따당한 사람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에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어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렸습니다. 바울을 죽이기까지는 밥도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세상이 나를 거부하면 나도 그들을 거부하리라라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거부하여도 나는 그들에게 가리라라는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분이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연병장에는 무술대회가 종종 열리곤 하였습니다. 벽에는 경기 모습을 그린 그림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이런 표어가 쓰여져 있습니다.

“주목하라.
모방하라.
반복하라.“

그렇습니다.
고독하고 외롭게 살면서 왕따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외칠 수 있습니다.

“가라.
   주어라.
   기도하라.“

나는 오늘 에수님 이야기로 결론을 내리려고 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왕따를 당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거부하였습니다. 죽이려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게 피하시면서도 다시 자기를 미워하고 소외시키는 그들에게 가셨습니다.

자기를 싫어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왕따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주님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적을 주셨습니다.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늘 가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셔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벽 미명이면 일어나tu서 기도하시며 영적 에너지를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공급받으셨습니다.

가면 됩니다.
주면 됩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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