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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믿음 (히 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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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믿음 (히 5:11-14)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심한 환난과 핍박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애써 모은 재산을 약탈당하기도 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심한 고초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했을 것 같습니다. 교회가 점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환난과 핍박도 그 원인이었겠지만 진짜 원인은 주님의 재림의 지연이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초대 교회를 힘들게 만들었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3절, 4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때문에 성도들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향한 사랑도 점점 식어갔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열정도 점점 식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주님과 주님의 복음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들과 타협하려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버리고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또한 믿음을 지키도록 그들을 권면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믿음의 닻을 굳게 내리고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그가 또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6) 

비록 교회 안팎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믿음에 굳게 서서 바른 길로 행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믿음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믿음은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결코 현상 유지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믿음은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받는 수신인은 도대체 누구였습니까? 편지의 제목을 보면 일단 이 편지의 수신인은 히브리인,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이란 일찍이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유대인들을 부르는 별명이 히브리인이라는 말입니다. 원래는 주위의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들을 깔보는 말로 사용했었는데 오히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선민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은근히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이 편지의 수신인이 혈통적으로 히브리인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구약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늘의 경우로 말한다면 평신도를 대상으로 쓴 편지라기보다는 적어도 장로, 집사, 권사 같은 항존직들을 대상으로 쓴 편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기록된 시기는 대략 주후 8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하고 난 후였습니다. 로마의 무자비한 박해가 가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도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과 지연된 주님의 재림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변명했던 것 같습니다. 극심한 고초를 겪고 있는 교회가 무기력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무기력하게 되고 또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게으름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 꽤나 오래 전 일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히 5:12 상반절) 성도들은 믿음이 자라서 이제는 선생들이 되었어야 마땅한데 전혀 자라지 못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 것 같으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까닭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해야 할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어른이 되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할 때에 가르침을 받는 학생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때에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한 채 환난과 핍박이 있자 믿음을 버리고 배교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성장해야 할 사람이 성장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은 병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자라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은 성장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우를 오늘 우리 주위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음식을 섭취해서 건강하게 자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젖이나 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 아이 같이 영적으로 무지한 성도는 교회의 문제가 되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도 친숙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교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그 말씀을 맛본 성도들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이런 지식은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능력은 마치 국가 대표 선수들이 선수촌에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는 것처럼 훈련할 때에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성도들의 삶과 인격과 영혼까지 허물어 버리는 일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믿음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믿음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다만 믿음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믿음을 아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그런 환난이나 핍박은 겪지 않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은 더 큰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풍요로움이 우리의 영혼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온갖 유혹은 늘어만 가고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이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빛의 자녀다운 선한 삶의 본을 보이는 가운데 믿음이 더욱 성장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주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전진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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