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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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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 (행 13:1-3)


오늘은 팔로마 한인교회 창립기념일입니다. 에스콘디도에 있는 Calvary Chapel에서 1995년에 첫 예배를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년이 지났습니다. 이 자리에는 같이 교회를 시작했던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두 번 가까이 지나면서 그 변화를 우리의 자녀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제 아들이 9학년이 될 때 이곳에 왔는데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꽤 많은 형제나 자매들이 오고 갔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님 품에 안긴 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던 분들이 교회에 와서 믿음을 갖게 되고 세례를 받을 때 기뻤지만, 반면에 함께 신앙생활 하던 분들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떠나갈 때는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좀 더 지혜롭게 섬겼더라면 주님의 교회가 더 든든히 세워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많습니다. 부족하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바울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섬긴 교우들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4월에 교회 부지를 매각한 이후로 교회당을 구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구입하고 리모델링을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등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나눈 것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헌신자들이 되어서 맡겨주신 사명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감당해야겠습니다. 이번 창립주일을 믿음에 더욱 든든히 서는 기회로, 주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는 기회로 삼으시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방 선교를 위해 안디옥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저희 팔로마한인교회가 창립 18주년을 맞이하면서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가는 가운데 교회당을 새롭게 마련할뿐더러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대로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건너 이방 땅으로까지 뻗어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불길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끌 수 없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이 바로 선교사역의 전환점이 되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대표적인 선교사가 베드로에서 바울로, 선교 대상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선교지가 팔레스타인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바뀌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도들이 세우지 않은 교회들이 나옵니다. 로마교회, 골로새교회가 대표적이요 오늘 안디옥 교회도 그러합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300마일쯤 떨어져 있으며, 로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예루살렘을 크게 능가하였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기는 하는데 주로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성도들 중에는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그들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사람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구브로는 터어키 남쪽에 위치한 섬이요, 구레네는 북 아프리카에 위치한 오늘날의 리비아입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안디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예루살렘 교회와는 달리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은 안디옥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선교 비전을 이해한 신자들이 인종적 편견 없이 복음을 전함으로 세운 교회이기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안디옥 교회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고생할 때에 교회 차원에서 헌금을 모아 바나바와 바울 편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요? 

1) 말씀에 기초를 두는 교회 

우리들은 끊임없이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전쟁을 하는 군인들이 무장을 하듯이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을 벌이는 성도들에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에베소서 6장에서 권면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에다가 유일한 공격무기가 있는데 그것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사용하여 마귀를 물리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셨습니다. 사단은 사십일 동안 굶주리신 예수를 교묘하게 유혹하였으나 그때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전에 구약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셨기에 적재적소에 말씀을 사용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주신 선교 명령 속에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a)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사도들은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제 막 생겨난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유대인들인지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신약 성경이 아직 쓰이지 않은 지라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님으로부터 듣고 배운 말씀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가르친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2:42절에 의하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힘쓴다’는 동사가 문법적으로 미완료인데 이는 과거의 지속적인 반복적인 행위를 나타냅니다. 힘쓴다는 것은 거기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살렘 교인들은 교제, 성만찬을 포함한 애찬, 기도와 더불어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데에 많은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 충만한 교회가 되어 스데반과 같이 말씀이 충만한 성도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1:26에 의하면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나바가 다소에 있던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왔습니다. 사울은 이미 다소에서 십년 가까이 복음전파를 통하여 쌓은 경험을 토대로 안디옥 교회에 온 많은 이방인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가르쳤을 때 풍성한 말씀의 열매가 얻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라고 합니다. 교사들이니 당연히 리더들은 가르치는 사역에 능했을 것입니다. 바로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터를 닦고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제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열심히 가르침을 받기에 힘썼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가르침을 받는데 힘쓰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성도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어야지 분열 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1절에는 안디옥 교회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소개됩니다. 누가는 그들을 예언자와 교사로 소개합니다. 즉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예언과 가르침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장차 있을 일을 말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바(Barnabas of Cypress)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가장 주도적 인물이기에 제일 먼저 언급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했던 것처럼 안디옥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헬라파 유대인이며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바나바를 파송하였습니다. 4:36에 의하면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 레위인으로 본명은 요셉입니다. 자기 밭을 팔아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그의 이름처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가진 달란트를 잘 찾아 개발시켜 사용하게 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했고 안디옥 교회에 불러 사역하게 했습니다. 누가는 바나바가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11:24)이라고 합니다. ‘착하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마음이 착하다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많이 베푼다는 것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능력과 감동이 그의 사역 가운데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믿음의 본을 보이니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그를 보면서 감명을 받습니다. 바나바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누구와도 협력하며 일할 수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이미 믿는 사람들은 신앙이 더욱 견고하게 되었고, 또 새로운 신자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은 ‘검다’는 의미의 ‘니게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므온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까지 지고 갔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의 인권을 주장한 것이 불과 50여년 전의 일입니다. 요즘도 피부색과 인종차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2000년 전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흑인을 그들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유대인은 사람들을 보통 선민과 이방인으로 구별하였고, 헬라인은 지혜인와 미개인으로 구별하였습니다. 로마인은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구별하였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는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는 일치와 연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므온은 말씀의 은사와 능력이 있었기에 교우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루기오(Lucius of Cyrene)

루기오로 번역된 그의 이름 Lucius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아프리카 사람이 로마식 이름을 가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로마사람의 양자가 되든지, 아니면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Lucius는 그 당시 노예들이 가지는 가장 흔한 이름 중의 하나였습니다. 1세기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사고파는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루기오는 교회 안에서 어엿한 지도자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신분 계급 차이 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누가는 마나엔을 헤롯의 젖동생으로 소개합니다. ‘젖동생’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함께 양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가족에 의해 어린 시절 놀이 친구로 입양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와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난 귀족 출신입니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 저자보다 헤롯 안티파스에 관하여 많이 언급하는데 이를 전해 준 것은 아마 마나엔일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헤롯 가문의 왕들이 4세대까지 언급됩니다. 

예수님 탄생하실 때에는 헤롯 가문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헤롯 대왕이 유대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성에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물었을 때 온 성이 소동을 벌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메시아의 출현으로 자신의 통치권과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동방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2세대인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고 세례자 요한을 오랫동안 투옥시켰다가 죽였습니다. 

사도행전에 12장에 나오는 헤롯 왕은 아그립바 1세로 헤롯 대왕의 손자이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이자 요한의 형인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25장에서 바울을 심문하는 헤롯은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아그립바 2세입니다. 헤롯 가문 사람들은 대대로 교회의 원수들입니다. 불의한 권력자들의 집안입니다. 마나엔이 비록 교회의 원수 집안과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안디옥 교회는 그를 교회 지도자로 세우며 예수님 사랑,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 받은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이제 막 생겨난 그리스도의 도가 율법과 성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하였고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재가를 받아 교회를 심하게 탄압했습니다.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큰 핍박이 일어나니 많은 교인들이 흩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박해를 계기로 흩어진 성도들이 북쪽으로 가다가 안디옥에 복음을 전하며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박해 사건의 주동자가 바로 사울입니다. 교인들 중의 상당수는 사울 때문에 안디옥까지 온 피난민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낯선 곳으로 흩어져야 하는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사울은 그들에게 보상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친 가해자입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사울을 그들의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도리어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출신 성분이 다르고, 인종적인 배경도 달랐습니다. 그들 가운데 귀족도 있었고 평민 출신도 있었습니다. 흑인인 시므온, 노예 루기오, 원수의 자식 헤롯, 고통을 가져다 준 장본인 사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교인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교회를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의 면모만 보아도 그 교회는 이방선교를 위하여 주님께서 준비하신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해하고, 용서하고, 덮어주고 함께 가며 연합과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비난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공동체의 하나됨이 깨어집니다. 믿는 자들끼리 갈등을 벌이다가 하나님 앞에 무슨 면목으로 서겠습니까?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온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준 십자가 정신을 실천해야 새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선교에 열정이 있는 교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는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기에 모든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능력을 선물로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에는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8-9장은 유대, 사마리아 지방에서, 10-28장까지는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소아시아,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기에 ‘성령행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된 것처럼 이방인 선교의 시작도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이방인 선교는 안디옥 교회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지시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안디옥교회가 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금식하니 교회는 든든히 서 갑니다. 

여기서 “섬긴다”라는 단어는 예배로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를 섬겨 금식했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만 바라보며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도록 기도하기 위해 금식을 병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에서 기둥과 같은 사역자들인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교회가 다시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통로이자,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택하신 바나바와 사울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비하신 사람들인 줄 알고 그들에게 안수한 후에 파송합니다. 개척된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은 교회에서 핵심 리더들이 떠나는 것이 큰 손실이지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비전에 순종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고 금식하고 희생하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선교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소아시아 지방으로 역사적인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안디옥 교회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는 복음의 빛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안디옥 교회와 같은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특권과 기회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시작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구원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지금도 교회를 통해 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복음의 듣고 구원을 얻게 되는 일, 즉 선교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교는 특정한 사람들만 참여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을 받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기도제목 중의 하나인 교회당 마련도 하나님께서 곧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교회당 마련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당 마련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디딤돌일 뿐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해 하십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선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병들었든지, 건강하든지,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능력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존재합니다. 지금 16명의 대학생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귀한 시간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고등부와 대학부 연합으로 이달 말에 엔세나다로 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눌 예정입니다. 교우들은 기도와 물질과 격려로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팔로마한인교회가 안디옥 교회와 같이 말씀의 뿌리가 있고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열린 마음으로 화합과 일치를 이루어가는 교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선교의 열정을 가진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모든 교우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나가며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이루는데 동참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함으로 성도들의 수를 날마다 더하시며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기 원합니다. 내년에 창립 예배를 드릴 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각자가 삶과 사역의 현장에서 거둔 열매들을 인하여 풍성한 간증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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