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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여 (시 5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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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시 51:10-12)


독일의 작곡가 리스트(Franz Liszt)가 시골의 작은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여자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제자라고 하면서 독주회 광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리스트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독주회 전날 리스트가 그 마을에 왔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한동안 고민을 하던 그녀는 리스트가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습니다. “선생님, 저는 고아출신으로 혼자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독주회에 그만 선생님의 귀한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제자가 아니면서 제자라고 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리스트가 말했습니다. “큰 실수를 했군요. 그러나 누구든지 실수를 합니다. 피아노에 앉아 독주회 곡을 연주해 보세요.” 그녀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리스트가 지적하며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내 제자입니다. 

이제 떳떳하게 리스트의 제자라고 하세요. 그리고 내가 연주회에 참석할 것이니 마지막 곡은 스승되시는 리스트께서 연주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연주하겠습니다.” 여인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음에도 스스로 노력해서 된 것처럼 생각하는 부분들을 철저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표제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죄를 지은 후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할 때 지은 참회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께만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4절입니다.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그렇다면 다윗이 밧세바, 우리아, 전사한 병사들에게, 이스라엘과 백성들에게 죄를 지었음을 부인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사람들에게 지은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깨달았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며 무엇을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로 깨끗한 마음을

테드 로버츠(Ted Roberts)목사는 저서에서 진 맥코넬(Gene McConnell)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맥코넬은 한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청소년 목회를 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적으로 난잡한 삶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간음과 살인으로 체포되기까지 했으나 가족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성도착증 증세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옛 습관에 젖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불건전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보고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날 밤 신기한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다시 법정에 앉아 있었습니다. 검사가 그의 삶을 찍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이 짓을 합니다. 안 한다고 약속했지만 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때 그는 머리를 숙인 채 부끄러움 가운데 듣고 있었습니다. 이때 변호사가 변호를 시작합니다. “검사가 말한 것은 맞습니다. 모든 죄목을 시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그의 모든 죄는 이미 값을 치루었습니다” 변호사가 셔츠를 올리며 자신의 옆구리와 등에 난 상처를 보여 주었습니다. 손과 발의 못 자국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선언합니다. “나는 피고의 죄를 하나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대가를 치루었습니다.” 그 순간 맥코넬은 그동안 억눌렸던 죄와 수치의 굴레가 떨어져 나가는 참된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깨끗한 마음이 창조된 것을 알았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기의 ‘정한’은 ‘타호르’ 인데 ‘순수한, 정결한, 흠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영역에는 ‘pure, clea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정한 마음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정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정한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감사와 찬양과 기도는 억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깨끗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범죄하고 마음이 더럽혀져 있기에 정결한 마음을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정결한 마음과 더불어 정직한 영을 구하였습니다. 깨끗한 마음, 정직한 영을 소유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의 임재를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성직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사역에서 큰 두드러짐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설교단에 서 있고 연단 주변에 천사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가운데 정면에 예수가 보였습니다. 그는 건너편에 있는 청중들에게 설교해야 했습니다. 이런 환상을 본 후 그는 깊은 영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튿날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서면서 환상을 떠올렸습니다. 천사가 강단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주께서 바로 앞에 서 계심도 느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시려고 임재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달라졌습니다. 그 날 이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설교를 들으려 몰려왔습니다. 본래 이름은 평범하게 요한이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황금으로 만든 입(Golden Mouth)’이란 뜻의 크리소스톰을 붙여 주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기의 ‘성령을 거둔다’는 말은 성령이 떠나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왕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 아무리 찬양을 불러도 감격이 사라져 감을 느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사로잡으심이 미미함을 느꼈습니다. 성령이 함께 계시며 인도해 가시는 역사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다윗은 몸부림치며 기도합니다. “주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옵소서.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신앙생활하십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로 감격하십니까? 찬양 드리는 심령에 하나님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며 만족이 넘치십니까?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이 풍성하게 있습니까? 이러한 영적인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가 막히고 말씀이 들리지 않으며 예배의 생명력이 사라진 채 형식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처럼 성령의 임재가 내재로 이어지도록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구원의 기쁨을

오페라 ‘손양원’의 작곡가 박재훈(朴在勳)목사는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꽃송이’ 등의 작곡가로 한국 동요의 대부입니다. 한양대 음대 교수를 하다가 60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토론토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7년 전부터 전립선과 갑상선암을 앓았는데 두 차례 수술을 받은 데다 아흔 살의 고령이라 더 이상 수술이 어렵다고 합니다. 협심증과 당뇨가 있고, 1년 반 전에 백내장 후유증으로 왼쪽 안구를 제거했습니다. 말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적인 움직이는 종합병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9년간 새벽 2시전에 잠들지 않았으며 오직 오페라 작곡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2004년 여수 애양원을 방문하였습니다.기념관을 둘러보던 중에 발가락이 썩어 떨어진 나병 환자의 발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내는 손양원 목사의 그림을 보고 그 앞에 쓰러져 울었습니다. 그리고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손목사의 삶을 음악으로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박재훈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노래들은 제가 쓴 게 아니에요. 그저 불러주시는 대로 받아쓰기 바빴습니다. 

나보다 몸 상태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이 일을 맡기셨으니 마치기까지 돌보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기쁨을 노래한 것뿐입니다.” 그가 엎드려 기도하면 리듬과 하모니가 오선지 위로 쏟아져 나왔으며 암세포 하나하나가 음표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일을 통하여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다닐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사울왕의 처참함을 아는 다윗은 사울이 간 길을 자신도 가야한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용기를 내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고 천국의 확신이 없고, 예배가 형식적이 되고 봉사가 억지로 해야 하는 짐이 된다면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진 증거입니다. 죄를 뉘우치며 구원의 기쁨을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Robert A. Hardie)의 회개가 부흥으로 이어진 까닭은 공개적으로 죄를 회개한 이유도 있었으나 하디의 회개가 고백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이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회개하기 전의 하디는 환자들이 기피하는 냉정한 의사였습니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낫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 받기를 주저했던 이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회개한 하디의 성품이 변하자 환자들은 하디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과거에 하디는 회개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서 회개한 사람의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자신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승리하며 사는 모습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회개는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전적인 회개는 인격적 회개이어야 합니다. 지성으로 마음을 바꿉니다. 감정으로 죄를 슬퍼합니다. 의지로 행동을 바꾸기로 실천해야 합니다. 다윗은 회개를 통하여 예배하는 자로 회복되었습니다. 비록 범죄하였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실수하였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삶이 답답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짖으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므로 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청소하지 않는 집이 더러운 것처럼 회개하지 않은 마음은 더럽습니다. 답답하고 기쁨이 없는 삶이 됩니다. 회개만이 사는 길이요 회복의 길입니다. 

부디 마음을 열고 미쁘신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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