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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3) : 나라를 위하여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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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하라 - 나라를 위하여 (마 6:9-13)

: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7월 17일은 제헌절이었습니다. 제헌절은 우리나라의 헌법을 제정하여 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명목으로 38선을 기준으로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결국 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는 국제 연합의 결의에 따라 선거가 가능한 38선 이남에서만 제헌국회를 구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제헌의원들은 1948년 5월 31일 구 중앙청에 모여서 제헌국회를 개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헌국회 제1차 본회의가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임시의장을 맡은 이승만 박사가 이렇게 개회발언을 합니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와 제청이 있자, 모두 일어서 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감리교 목사이자 제헌의원인 이윤영의원이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증시 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중략)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상의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속기록에 기록된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 기도에서 이윤영목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감사하였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루며, 통일된 나라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의 헌법을 만드는 일을 잘 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제헌의원 198명 중에서 48명만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다른 제헌의원 150명이 이승만박사의 동의에 찬성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삼일운동을 주도하고,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과정에 기여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그 당시가 국회의원들의 기독교가 종교인 비율이 훨씬 더 적었지만, 영향력은 훨씬 더 컸었습니다. 얼마나 더 영향력이 있느냐고 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면 능력이 없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가 세상에 건전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은 ‘그 이름’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고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제 그 두 번째 내용은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II. 나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에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10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0a나라가 임하시오며,

여기에서도 ‘그의’ 즉 ‘하나님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라[basileiva/바실레이아]’의 본래적 의미는 ‘왕권’입니다. 왕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왕국’이라고도 합니다. 즉 왕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왕의 다스림을 가리킵니다.

1. 나라는 다스림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있고, 영토가 있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한국인이라는 백성이 있습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는 영토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 즉 누가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1) 나라는 영토나 지역이 아니라 통치입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미디안을 무찌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기드온이 하였던 말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다스리는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스림이라는 말에는 누가 주인의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써 다스리면 사울의 왕국이고, 다윗이 왕으로써 다스리면 다윗의 왕국입니다. 왕국에는 왕에게 주인으로써 권리가 있습니다.

2) 나라는 주권자의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나라의 이름과 정치체제, 국가형태, 주권에 대한 규정입니다. 그래서 그 제 2 항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이름으로 통치합니다.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만약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면 심각한 저항을 받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 가의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 로마군의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간청하기를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곳을 다스리는 로마군 지역 사령관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선히 “내가 가서 고쳐 주마.”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백부장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9 말씀입니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주인이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군인으로써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하시면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시각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그 종이 나았습니다.

이렇게 나라는 주권자의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권자의 명령으로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것이 주권자의 나라입니다. 주권자의 명령으로 병든 사람이 낫는 것입니다. 만약 주권자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주권자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 1:11). 예수님이 만드신, 그 분의 세상에 사는, 그 분의 백성이지만,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분의 세상에 살면서도 그 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 분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그 분의 자녀로서 권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라는 누가 다스리느냐에 초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롬 6:16).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다스림을 받는 것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이고, 세상의 지배를 받으면 세상의 나라입니다. 선한 뜻에 다스림을 받으면 선한 나라이고, 악한 뜻에 지배를 받으면 악한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나라입니까? 욕심의 지배를 받는다면 욕심 나라이고, 사랑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사랑 나라입니다. 육의 지배를 받으면 육의 나라이고, 영의 다스림을 받으면 영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스림을 받는 바로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매 순간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무엇에게 다스림을 받느냐고 하는 것이 나라를 구성하는 기초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우리는 어떤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다시, 10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0a나라가 임하시오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여 구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나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2. 그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나라가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볼 때 분명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기 때문입니까?

1) 사람들의 관심은 권력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권력에 있었다는 증거는 멀리 가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사이에는 누가 크냐는 변론이 자주 일어났습니다(눅 9:46). 한 번은 제자 중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두 아들에게 큰 자리를 주시기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5 말씀입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권력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권력의 속성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실 때에조차도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권력 지향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죄의 본질입니다.

2)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라가 아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에 하셨던 말씀에서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18:36입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빌라도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나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칼로 사람을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빌라도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의 나라가 자신처럼 로마군대의 힘으로 다스리는 나라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만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27:24). 하지만 빌라도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죄 없으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권력을 사용하였습니다(막 15:15).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세상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원하셨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생각할 때입니다. 또, 10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10a나라가 임하시오며,

여기에서 ‘임하다[e[rcomai/엘코마이]’는 말은 ‘나타나다’, ‘가져오다’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지금 당장 단번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라고 하셨습니다.


3.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좀 돌아서 오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즉 사람의 욕심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 얼마나 중요하였을까요?

1)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마가복음 1:15입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첫마디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4:43). 그리고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마 4:23).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라는 단어가 마태복음에 49번, 마가복음에 16번, 누가복음에 38번이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이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입니까?

2) 하나님의 나라는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장 확실한 내용은 주님의 기도 자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위한 간구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두 번째 간구인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간구인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세 번째 간구인 10절 후반절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천국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나라의 백성이 되거나 어느 한 왕의 신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나라의 법률이나 그 왕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3)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속에서 확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그 당시 사람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을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비유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통하여 전혀 모르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여러 비유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마가복음 4:26-27 말씀입니다.

(막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유에서 핵심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고 이삭을 맺어 곡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 자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자라납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막 4:30-32). 겨자씨는 땅에 심을 때는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하지만 자라서 큰 가지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보잘 것이 작은 것이지만 마침내 크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에서 자라갑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죄가 들어와서 오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강제로 지배하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나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겸손하게 초청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저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 땅에서 이루며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 그 나라가 임하도록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4)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a)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여야 합니다. 즉 헌신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3:44입니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감춰진 보화가 있는 밭과 같은 것입니다. 밭에 감춰진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만 우리가 헌신을 통하여 순종하여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복음으로 이 사회와 국가에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대로우 밀러는 ‘하나님 나라 가치’라는 책에서 “기독교 가치관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시킬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 세상이 교회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변질시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교회 밖의 세상으로, 도시로, 문화 속으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자신과 가정 그리고 이 사회와 이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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