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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 신앙교육 (딤후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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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신앙교육 (딤후 3:12-17)


이 주간부터 교회 여름사역이 시작됩니다. 일 년 중에 제일 많은 일을 이 계절에 또 해야 됩니다.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선교여행이 쉴 새 없이 계획되어 있는데 두 달 동안 많은 사람이 참가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린이 신앙교육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어린이 교육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효과 있는 신앙 훈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첨단 과학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교육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교육 열정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일본이 왜 한국보다 조금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느냐? 이 질문의 정확한 대답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서구의 교육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TV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인데도 원시인같이 살아가는 부족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옷도 안 입고 벌거벗고 삽니다. 옷을 만들어 입고 사는 교육을 안 받았기 때문입니다. 

식생활을 보면 아직도 자연 열매나 따먹고 야생동물 사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안정된 식량 비축을 하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된 일입니다. 자연은 얼마든지 좋고 비옥하고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 조건이 그렇게 좋은데도 굶주립니다. 생활할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교육을 안 받았기 때문입니다. 삶을 향상시키는 교육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몽골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몽골은 금 방석을 깔고 있는 거지라고 했습니다. 

고비 사막에 묻혀있는 석유만 꺼내도 몽골이 100년을 쓰고도 남는 석유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끄집어내서 쓸 수 있는 교육이 없습니다. 선진국이란 뭐냐? 교육이 앞서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교육을 통한 신앙 훈련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교육을 놓치면 얼마 안가서 끝이 납니다. 신문에서 52퍼센트 가량 한국의 교회 어린이 교육 숫자가 줄었다고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빌게이츠라는 사람입니다. 컴퓨터의 이치 하나를 남보다 빨리 터득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 예수 믿거나 말거나 기독교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이 땅에 서구 문명 하나를 갖다 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교사들입니다.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아주 절실하게 느낀 것이 ‘아! 이 나라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음 전함과 동시에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1882년 5월에 한미 조약에 체결될 때 개신교 선교의 가능성이 보였을 때 맥클레이 선교사가 1884년 6월에 고종황제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실시를 허용하는 허가를 받아내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1885년 4월에 선교사 아펜젤러가 언더우드와 함께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시작할 때 아펜젤러의 일기 첫머리에 보면 “나는 지난 8월 3일 월요일에 이경락, 고용필이라는 두 한국인에게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그것이 “배제”라는 학교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배제학교는 창립날짜가 그날입니다. 1885년 8월 3일입니다. 그의 일기를 좀 더 읽어 가면 “이렇게 그들에게 가르치는 중 나는 그들이 예수의 교훈에 도달하도록 주께 기도하였다.” 이래서 신앙과 교육을 함께 하였습니다. “복음과 함께 교육이 이 나라에 시작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되겠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는 정동 32번지에 집을 하나 마련하고 고아 몇 사람을 모아가지고 한 집에서 그들을 데리고 살면서 교육과 복음을 함께 전했는데 그것이 경신 고등학교입니다. 의료선교사 알렌이 또 한국에 왔을 때 갑신정변이라는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민영익이 칼을 맞아 죽어갈 때 알렌 선교사가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광혜원이라는 최초의 병원을 개업하고 그것이 오늘날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고 거기에서 물리, 과학, 의학을 최초로 가르치기 시작함으로 그것이 우리나라의 연세대학교가 되는 축복을 받았고, 여기 이화여대 나오신 분이 계실 텐데 이화여자 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비로소 선교사들에 의해서 오늘날 한국이 교육 강국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교회는 바로 그것을 받아들여서 신앙을 교육적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힘을 다해 우리나라의 주일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교회를 살려내는 원동력이고 기초적인 영적인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교육의 몇 가지 교과서가 있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갈보리교회에서 영아부부터 시작됩니다. 2~3세 대상입니다. 그 어린이가 무슨 교육이 될 것인가? 아닙니다. 절대로 됩니다. 교육적 효과에서 다 검증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필요한 전문가를 모셔다가 지금 열심히 교육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모태신앙으로 교회 나오기 시작한 사람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온 사람과 40~50세부터 나온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것을 시간적 차이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저는 목회하면서 아주 흔하게 보아왔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의지했던 신앙적 고향이 누구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점쟁이가 되었든 무당이 되었든 누구나 다 그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었는데 10년이나 교회를 잘 다닌 집사님도 급한 일이 생기니까 점쟁이에게 뛰어간단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도 나옵니다. 애굽을 나온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급한 때만 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더 급해지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시간적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애굽에서 무리 지어 나온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광야에서 다 40년에 걸쳐 죽게 만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광야 출신들만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지 않습니까? 구세군의 어머니 캐더린 부스는 8명의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워서 아주 유명한 신앙교육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키웠느냐?”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마귀가 가르치기 전에 먼저 가르치라.”라고 했습니다. 일단 마귀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사람은 빠져나가는데 신앙적 시간 차이에서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적에 시간적 여유를 주지 말고 빨리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신앙 교육의 효과이기 때문에 교회는 교육부를 놓치면 안 됩니다. 집중 투자해서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교회에서 신앙 교육을 시켜내면 다른 신앙 문화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섬기면서 사는 신앙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아주 절실하게 느껴야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신앙 교육에 제일 중요한 기관이 어디입니까? 학교인가, 교회인가? 둘 다 아닙니다. 가정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즐겨있는 성경은 잠언입니다. 잠언 성경은 하나님과 아버지를 동일 개념의 교훈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의 모든 시작을 “내 아들아!”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교훈을 떠나지 말지어다.”라는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이나 손자 야곱은 교회 다녔습니까? 주일학교가 있었습니까? 그런 거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앙이 훌륭했습니까? 순전히 가정교육으로 유산된 신앙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족장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말씀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누구냐? 너희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네 아비 이삭의 하나님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 밖에 오지 않습니다. 

가정은 365일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가정에서 신앙 교육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학교도 교회도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게 유대인의 신앙 교육 지침입니다. 제 주변에는 요한 목사라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 목사는 40이 될 때까지 서울 장안의 문제아였습니다. 깡패 두목이고 옛날 자유당 시절부터 서울 시내 칠참모 중에 자기가 하나였다고 하면서 자기가 나타나면 동대문 일대는 와글와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이민 와서 40세가 넘어서 신학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신 분인데 그분이 우리들을 만나면 간증을 늘 하셨습니다. 왜 내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렇게 나쁜 일을 행했는가? 그 이유는 한가지였다고 합니다. 바로 아버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교회 중직을 맡고 계셨는데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아버지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아버지 속 썩일 일만 매일 저질렀다고 합니다. “나 때문에 속상해 죽어라.”하는 식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살기도 싫어서 미국으로 와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그래도 어린 시절의 신앙이 남아있어서 ‘이제는 내가 회개하자.’ 그래서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가정 문화의 해체 시대라는 것입니다. 문명과 문화가 앞서가는 나라일수록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대한민국도 서구사회를 똑같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서구사회는 가장 앞서가는 사회인데 오래전부터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로 확보한지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은 근래에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부부는 각기 다른 생활 영역을 확보했으며 가치관에 있어서 부인들이 가정과 사회생활을 동일시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위해서 사회적 위치를 희생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나의 위치는 항상 쥐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그 정도로 가정은 소홀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다양성이 형성되는데 남녀의 평등은 왔는데 남녀는 멀어지는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이게 서구 사회의 문화였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인의 사회생활은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와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부모들의 이러한 생활공간이 자신들만의 문화 공간을 자연히 만들게 되고 부모와 거리를 두는 문화를 만듭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가기 시작하면 부모들과 대화를 합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습니다. 자녀들과 밥 한번 먹으려면 미리 약속해야 되고 그날도 바쁘면 약속이 또 깨집니다.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잠만 그 집에서 잘 뿐이지 대화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은 독신자 생활 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게 되고 자녀는 제한적 출산을 하게 됩니다.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산아제한이 국책 사업이었습니다. 보건사업으로 커다란 버스를 가지고 시골마다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자녀 좀 그만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교육시켰습니다. 몇 십 년 후에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출산장려국이 되었습니다. 제발 자녀 좀 낳으라고, 온갖 복지 혜택을 다 주면서 자녀 낳으라고 장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잘 안 낳지 않습니까? 이렇게 변했습니다. 이게 문화적으로 가니까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문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아동 학대의 80퍼센트가 가정에서입니다. 상처 받는 것이 가정입니다. 지금은 노출 문화시대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온 세상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번 조사를 했습니다. 공영방송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보아서는 안 될 폭력 장면과 성 문화 노출 장면이 일 년에 얼마나 나오는가? 화면에 7만 번이 나옵니다. 그것을 어떻게 막습니까?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 세상의 모든 성 문화가 24시간 노출되어 있습니다. 부모들은 인터넷 할 줄 모르는데 무슨 실력을 가지고 아이들의 신앙 교육을 내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문제를 아이들은 훤하게 세상을 다 꽤 뚫고 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포기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방법은 이거 밖에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의 설교입니다. 설교식 교훈을 제일 싫어합니다. 학교나 교회에서는 제도적 틀에 메여서 어쩔 수 없이 앉아있지만 부모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자꾸 하는 것은 잔소리 밖에 안 됩니다. 하나도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내팽개치고 그냥 제 멋대로 살라고 내버려 둘 것인가?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의 삶을 보여주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훌륭하게 살아야 그 자체를 보고 아이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자녀들의 가장 큰 심리적 충격이 언제인가? 부모들의 옳지 않은 비행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부모가 모범적 삶을 보여주지 않는 한 자녀들의 훌륭한 신앙생활은 절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 기르는 사람 큰 소리 못 친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남미는 TV 장면이 좀 야하게 나옵니다. 한국 사람들이 남미로 이민을 많이 갔잖아요? 한국 TV 방송에서는 절대 방영할 수 없는 장면들도 거기는 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이민 가서 그것을 보니까 좀 신기하고 재미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꾸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과 같이 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보면 안 될 텐데 나는 보고 싶고 아이들은 보면 안 되니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부흥회 가서 어떤 아버지가 저에게 하신 말입니다. 자녀와 함께 보고 앉아 있다가 야한 장면이 나올 때쯤이면 “야! 가서 물 좀 떠와.”라고 말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금방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묻지 않아도 그때쯤 되면 “아빠! 물 떠와요?” 그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아이들이 보지 말 것은 나도 보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부모의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훌륭하게 살지 못하면서 나더러 교회 가서 모범생 되라고 하다니 말이 됩니까? 요한 목사도 그래서 40세 때까지 아버지 속 썩일 일만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다른 큰일은 못해도 내게 맡겨주신 우리 집의 내 자녀 하나둘만이라도 훌륭하게 신앙적으로 키우면 아주 큰 성공입니다. 

어린 시절의 특징은 기억력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머릿속에 기억되어지는 어린 시절 뭐가 남았습니까? 기억 중에서 제일 충격적인 사건, 또 하나는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즘에 인터넷을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이든 좋은 말이든 아무리 내가 없애려 해도 없앨 수가 없습니다. 계속 뜹니다. 똑같습니다. 기억에 충격적인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충격을 기억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감동을 기억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교육입니다. 나의 모습이 자녀들 컴퓨터에 어떻게 찍힐 것인가? 내가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은? 여러분! 히틀러에 대한 연구는 영원합니다. 공감하는 공적인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엄마의 부정을 보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내가 어른이 되면 저 나쁜 유대인 놈들 다 죽여야겠다.’ 그것이 굳어져서 600만을 죽였지 않습니까? 이게 히틀러 연구에 공통된 견해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교회가 열심히 교육부를 왕성하게 만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것인데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학교와 가정!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최대한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신앙교육은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너무 눈에 보이는 교육만 좋아합니다. 유대인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나니까 사람이 일만 명씩 모였습니다. 문둥병자가 낫고,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니까 환자들이 수천 명씩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아! 이는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영생의 말씀을 설교할 때는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소홀히 하고 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버릇들이 성경에도 얼마든지 나오고 우리 자신들도 그렇단 말입니다. 우리가 교육하는 것은 먼 장래를 보고 제가 이 교회 온지 10년 7개월째입니다. 제가 올 때 10살이던 학생이 지금 21살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합니다. 이렇게 앞날을 내다보면서 우리가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훌륭하게 가정과 함께 손을 잡고 길러진 아이들은 일평생 하나님의 역사에 자기 몸을 바치면서 선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얼마든지 마련이 됩니다. 

한 가지 주의는 우리 어린이들을 이렇게 교육시킬 때 성장 과정에서 때로 비행이 보일 때 너무 꾸지람하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성장 과정에는 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제가 예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이 담배를 피었다고 엄마가 초죽음이 되어 저한테 와서 이를 어떡하느냐고, 어쩌면 우리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우냐고 막 우는 겁니다. 그래서 “담배 한 대로 낙심하면 어떡합니까?” 그랬더니 더 속이 상한 것은 아빠한테 이야기했더니 아빠는 아들 앞에서 “야, 인마! 나는 네 나이에 담배를 끊었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담배 피울 수 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한번 피워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낙심하고 “너는 지옥 갈 놈이다.” 이렇게 규정하지 마십시오. 성장 과정에 청년들의 실수는 어떤 때 매력 포인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는 겁니다. 

저는 미국에서 목회할 때 어느 미국 목사가 찾아와서 “한인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교회 건물이 훌륭한가요? 이 교회 좀 빌려주십시오. 우리는 교인들이 몇 백 명 되는데 예배드릴 장소가 없는데 당신네 교회는 대학을 해도 괜찮을 만한 교육관이네요.” “그러지요. 그러면 우리가 룸을 하나 드릴 테니 거기서 예배드리세요.”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저희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자기 말을 하는 겁니다. 자기는 사우스베이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히피족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히피족의 조건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남자인데도 머리카락이 자기 엉덩이에 내려와야 된답니다. “머리를 흔들고 돌아다니면서 이 일대를 휩쓸며 마약, 깡패 짓을 했던 두목이 나였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목사가 되셨나요?” “우리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내가 마약에 손을 대고 히피가 된 것을 목격해서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나를 미행하시며 경찰서에 연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대는 순간 경찰이 덮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때 마약을 거래하니까 덮치세요.’ 그래서 경찰이 숨어 있다가 덮쳐서 경찰에 체포되어서 마약 사범으로 형무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형무소에서 결국 내가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회개하고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서 다시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겠다 생각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피 두목이 목사가 되니까 그 졸병들이 다 와서 교회 교인들이 되었습니다. 경찰서 10개보다 낫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렇게도 역사하신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쁘게 미국 목사를 한 교회에서 만나서 예배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갈보리교회 출석하는 어린이들은 약 1천2백 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훌륭하게 신앙 교사가 되지 않는 한 교회는 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드리는 말씀은 주일예배만 출석하지 마시고 수요 성경공부, 새신자학교, 그룹 성경공부, 강해설교, 새벽기도, 교회의 모든 예배 시간에 적극 참여하는 노력을 하십시오. 그러면 아이들이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아! 우리 아버지는 예배 시간에 항상 참석하셨다.’ 아버지, 어머니의 행위를 보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설교 가지고는 안 됩니다. 훌륭하게 자신이 살아야 합니다. 일찍이 우리 한국 교회가 잘 한 것은 교회학교를 잘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은 모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름성경학교란 말입니다. 성경을 가르쳐서 삶의 기초를 정해주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이 주간에 행사하는 계절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시고 협력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1천 2백 명의 어린이들을 잘 교육하는 여름 사역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갈보리교회에 이렇게 많은 주님의 자녀들을 늘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부모와 교사, 교회학교 모두 삼위일체가 되어서 이번 여름 두 달 동안 모든 프로그램과 교육이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도움이 되고 아이들의 인생을 설정하는데 기초가 되는 성경말씀 배우는 그러한 축복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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