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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냉수 한 그릇이라도.. (마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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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한 그릇이라도.. (마 10:42)


지난 목요일 현충일 한 일간지 1면에 교복을 입은 참하게 생긴 학생 흑백사진 하나가 실렸습니다. 손에 트럼펫을 들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 주자로 활동하던 학생 사진입니다. 60여 년이나 지난 사진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신덕균입니다. 1950년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신덕균은 6‧25전쟁이 터지자 열 여덟 살 나이로 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최전방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다 경기도 가평 지구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신덕균의 아버지는 그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육군참모총장이었고 형은 당시 현직 포병사령관이었습니다. 그 신덕균의 유해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덕균이 당시 어머니에게 보낸 펀지 일부가 공개되었습니다.

‘포병학교 졸업을 앞두고 포병학교 교장선생님이 네가 원하면 포병사령관이신 형님 밑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거기에 찬성해야 옳았겠습니까? 부친이나 형의 배경으로 편하고 위험하지 않는 곳으로 갔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최전방을 지원한 이상 살아서 돌아가리라 믿지 않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런 보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마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었든, 조국이야 어찌되었든 별별 핑계를 대어서 재주를 부린 사람들입니다. 재주를 잘 부려서 용케 고생을 면하고 용케 화를 면한 그들은 한 평생 그것을 생각하면서 많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벌써 50년 가까이 된 일입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역사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셔서 개탄하셨습니다. 당시는 꽃들이 워낙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가정에서도 꽃이 귀했고 나라가 꽃을 심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그런 시절에 나라에서 도시 한 가운데 장미꽃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장미꽃이 거의 다 없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집에 심으려고 뽑아간 것입니다. 워낙 꽃이 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꽃을 거기에 두고 시민들이 전부 다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마 그들 집에 있는 장미꽃들은 그 집 사람들이 자기들을 볼 때마다 야, 이 도둑놈아!’ 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젠가 한 개척교회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주도하신 권사님이 계셨는데 비용도 많이 대고 수고도 많이 하셨고 여전히 수고를 많이 하시는 권사님이셨습니다. 그 권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다른 것은 몰라도 시어머니에게 잘하라는 설교는 제발 하지 말아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참 악한 일입니다. 목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도 그렇게 인식해야하고 교인들도 그렇게 인식해야합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참으로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권사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혹은 과거에 아마도 시어머니에게 많이 잘못 했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괴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억이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는데 목사님까지 그 말씀을 하시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심정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죄는 남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벌을 주시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이미 벌을 받고 있습니다. 

6월만 되면 6‧25에 대해서 또 호국 선열들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합니다. 6‧25전쟁은 최근 1500년간 일어난 인류역사 전쟁 가운데 군인 사망자가 일곱 번째로 많았던 전쟁입니다. 아군 피해만 보겠습니다. 한국군 사망자가 13만 8천여 명이고 부상자가 45만 여명,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60만 9천여 명입니다. 유엔군을 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고 어떤 나라이지, 우리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고 이 나라에 온 유엔군의 사망자는 5만 8천여 명, 부상자가 48만 여명, 실종자가 포로까지 합하면 총 54만 6천여 명입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참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처럼 꽃다운 나이에 어떤 분들은 인생이 그것으로 허물어지고 말았고, 어떤 분들은 부상을 입어 평생 장애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이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슬플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더합니다. 가슴 아프고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사자에게 자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있지만 나는 내 나라, 내 민족, 내 동포를 위해서 전쟁에 참가한다는 자부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비록 가슴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나에게 그런 아들, 그런 형이 있고 그런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문에 보도된 신덕균의 동생은 자기 오빠를 ‘자랑스러운 오빠’ 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에서는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마치면 필수코스로 가는 곳이 있습니다. 모스코바에 있는 무명용사들의 무덤입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곧바로 가서 꽃을 바치고 기도를 합니다. 아마 ‘당신들 때문에 오늘 우리가 결혼을 할 수가 있었고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가 있습니다.’ 라는 감사기도일 것입니다. 

간혹 우리나라 오래된 가요 <38선의 봄>을 부릅니다.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이 가사를 가만히 생각하면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이 되고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등병, 일등병, 무등병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 조국, 동포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겠다는 가사입니다. 이 가사 때문에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습니다.

신덕균의 조국 사랑하는 마음은 밝혀져서 참 좋고 감동적입니다. 그에 대한 기사는 두 번이나 나왔습니다. 한 번은 병역 기피하는 사람 때문에 보도되었고 금년에는 또 다른 내용으로 보도되었는데 참 좋습니다. 그런데 신덕균처럼 밝혀진 사람들은 지극히 일부이고 밝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그 사람들, 그 일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그대로 다 갚아주십니다. 틀림없이 갚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도 다 보고 계시고 아시고 징벌하십니다. 예레미야 14장에서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이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렘14:10)’ 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시고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악한 일도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나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정말로 못된 일입니다. 다윗은 그때 아마 자기가 최고위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악한 일을 하면서도 절대로 자기와 몇 사람밖에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은 알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자기 부하이기 때문에 그 일이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야말로 죽을 놈이라고 말씀하시고 무섭게 징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리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윗은 무서운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일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나아만이 너무 고마워 갖가지 선물을 가지고 왔지만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거절하자 나아만은 ‘그러면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조국에 가서 흙을 바라보고 이 흙의 나라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를 드려도 좋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의 승낙을 받고 흙을 가지고 간 나아만은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전도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라는 사람은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나아만을 쫓아갑니다. ‘장군님이 가시고 난 뒤에 우리 선생님에게 제자들이 찾아왔는데 정말로 딱한 일들이 있어서 선생님께서 옷과 돈 조금만 달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흔쾌히 승낙하고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이때 게하시는 나아만 장군이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올 일도 없고 누구를 시켜서 확인하고 말고 할 일을 할 리 없으니 자기만 입을 열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로 비밀로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엘리사가 ‘너 어디 다녀오느냐?’ 라고 물었지만 게하시는 시치미를 뚝 떼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 있던 나병이 너에게 갈 것이다.’ 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즉시 게하시의 온 몸에 나병이 하얗게 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대로 갚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누구도 전리품을 취해서는 안 되고 전부 다 불태워야 된다고 단단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은 적의 좋은 물건을 두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챙겨서 자기 집안에 숨겨두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간은 혼자만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퍼렇게 뜨고 보고 계셨습니다. 기어이 하나님께서 드러내셨습니다. 아간은 죄가 적발되어서 즉각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악한 일도 보고 계시고 선한 일도 보고 계시는데 선한 일은 더 잘 보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왕이 자기 업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은데 이 유혹에서 벗어나십시오. 나라는 이름, 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아예 없애십시오. 이것은 죄입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 왕은 예배당을 지어서 하나님께 바치게 되면 사람들도 다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도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자기가 건축을 합니다. 설계도도 자기 생각대로 그리고 비용도 전적으로 자기가 댑니다. 

예배당이 완성되자 예배당 앞에 큰 이름 판을 부칩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예배당 앞에 있는 이름 판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이름을 썼습니다. 이 왕이 깨어나서 신하를 불러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데리고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그 교회 언덕 아래에 사는 아주 가난한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왕 앞에 불려왔습니다. 왕이 할머니에게 이 예배당을 짓는데 어떤 귀한 일을 했는지 물었더니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저는 가난하여 바치고 싶어도 바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말씀하시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예배당을 지을 때 짐을 나르는 말이 하도 힘이 들어 보이기에 짚을 몇 번 준 일이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큰일을 했다면 사람도 기억하겠지만 하나님은 작은 일,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 이 가난한 할머니가 한 일을 다 보시고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으로부터 참으로 사랑받는 백부장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 내용 중에 우리가 알고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전부 다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든 올라간다는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도 귀한 일, 선하고 아름다운 일은 더 하나님께 올라가고 하나님께 도착한다는 말씀입니다. 올라가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존전에 올라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죽을 목숨을 살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심히 보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당신의 병은 죽을 병이니까 죽을 준비를 하라고 하자 히스기야가 하나님 ‘하나님,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이사야를 보내 15년간 생명을 연장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히스기야가 그렇게 산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꼭 우리가 기도로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든지 않든지 간에 우리가 한 일을 전부 다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그런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히스기야를 낫게 해주시고 15년 생명연장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옳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살면서 전심으로 살고 진실로 살고 선한 일을 한 사람을 아시고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응답을 다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은밀하게 보신다는 참 멋진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아무리 은밀하게 해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다 보상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냉 수 한 그릇을 말씀하시면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참 소중합니다. 그런데 작은 사람이 여럿 있을 때에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그 중에서 한 사람에게 돈도 안 들이고 큰 힘도 들지 않는 냉수 한 그릇 준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크게 귀한 일을 한 사람, 큰 힘을 쓰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십니다. 악한 일도 보고 계시고 선한 일도 보고 계십니다. 특별히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다 기억하시고 갚아주십니다.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세를 많이 드셔서 언제 하나님께서 부르실지 모른다는 사람들도 그런 시절이 그렇게 쏜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이십대가 그렇게 빨리 지나갔고 삼십대는 더 빨리 지나갔고 사십대는 사십대라고 생각하는 순간 금방 지나갔고 오십대도 빨리 지나갔고 그 다음은 더 빨리 지나갑니다. 한 순간 한 순간 우리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을 어떻게 채우시겠습니까? 악한 일로, 나쁜 일로 채울 시간이 없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선한 일, 좋은 삶으로 채워야합니다.

선한 일을 하십시오. 선하게 사십시오. 선한 생각을 하시고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알든 알아주지 아니하든 간에 선하게 사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기회만 있으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선한 일을 하고 자비를 베푸십시오.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좋은 사람을 사랑하고 좋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보시고 틀림없이 갚아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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