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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삽시다!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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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세상을 기쁘게 삽시다! (살전 5:16-18)


어떤 영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두 손을 쫙 펴고서 묻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이것을 영어로 뭐라고 해요?"  그랬더니 많은 아이들이 "핑거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손을 웅크리고 주먹을 쥔 채로 물었습니다.  "이건 또 뭐라고 해요?"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안핑거요."

무더운 여름입니다.  대지가 타 들어갑니다.  그런데 대지가 아무리 더워서 갈라지고 죽어간다고 할지라도 하늘에서 비만 내리면 그 대지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렇습니다.  죽어 가는 영혼에도 하늘의 것이 임하면 살아납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혼자의 힘은 무수한 속박과 구속과 환난의 연속이지만, 하늘의 것을 받으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붙잡으십시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내 영혼은 다시 생기를 얻고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고백하기를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모든 일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마다 때마다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연약한 마음을 점령하고 내 영혼을 뜨겁게 할 때 나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독수리처럼 다 박차고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집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에 욕심을 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아내는 데 생명을 거십시오.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그 분이 나를 지지하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늘 이 땅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난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말고 이 땅 위에 끝없는 하늘의 기쁨과 능력과 평화를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큰 능력을 힘입고 오직 한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과 지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무슨 지식 운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종교 운동도 아닙니다.  신앙은 영적 해방 운동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여러분의 영혼에 자유함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치유와 위로의 영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모든 고난과 환난을 이기고 나를 억압하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바와 같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야 하나님도 기쁘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해야만 하나님께서도 행복해 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복하게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100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습니까?  "그럭저럭 삽니다.  마지못해 삽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그런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요즈음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들도 비슷한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문제만 회복된다면 여러분들은 기쁘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지난 주간이 6.25 종전 60주년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의 사진을 보면 정말 처참했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는 피난을 가는 길에 지쳐 쓰러졌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하는 어머니는 아이가 크나큰 짐이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경이적인 경제발전으로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에는 정신적인 질병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왜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까?

사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고 문제가 있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닫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 중에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온갖 핍박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할 수도 있고, 온갖 질병과 경제적인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와 환경에 묶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삶의 혼란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물론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를 전혀 외면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배설물이라고 까지 표현했습니다.

배설물을 아십니까?  쉽게 말하면 '똥'이라는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우리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난 후에 그 똥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변을 보고 난 후에 변기 물을 내리면서 그 똥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똥, 내 똥"이라고 외치면서 안타까워하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미련이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이 그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세상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해서 기쁨과 행복까지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힘든 세상을 기쁘게'라고 잡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얼마든지 기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지 말고 아직도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세상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에는 '비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물처럼 된 자루인데 사람들은 그곳에 물건을 담아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여인들은 그곳에 아이를 넣어 메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아이들을 잠재우는 해먹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함철훈이라고 하는 분의 사진에 글을 붙여서 출판한 내용 있는 책입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 중에 파푸아뉴기니의 어떤 아기 엄마가 잠든 아이를 비룸 속에 넣고 그것을 나무에 걸어 둔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 속에서 아주 편안히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그 아이 엄마가 아이가 잠들어 있는 허름한 비룸에 하얀 꽃 한 송이를 꺾어 꼽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행복은 바로 그와 같은 여유 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엄마는 별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지천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꺾어 허룸한 비룸을 장식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이와 같이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축복까지도 다 스스로 내어버린 채 불행한 삶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429장에 보면,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만을 바라보면서 불행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여러분들에게 허락된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힘든 세상도 얼마든지 기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과감한 포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에는 '운동화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 중에 아프리카 아이 하나가 운동화를 신지 않고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친구 몇 아이는 그 운동화를 부러워하고 있고, 그 운동화를 목에 걸고 있는 아이는 그것을 뽐내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저희들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희들이 어릴 때는 지금처럼 나이키니, 프로스펙스니,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런 메이커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비메이커 검정 신발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이가 아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아이라고 하여도 운동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귀한 존재들인데 그 운동화를 목에 걸므로 아이가 운동화보다 초라해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의 아이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신고 다니라고 주신 신발을 목에 메고 다니는 초라한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아주 값진 보물처럼 모시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아주 값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며 다니는 것들도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바로 그와 같은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명품이라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서 본다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페루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그만 그것을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너무 속상해서 울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던 함철훈 선생이 아이에게 울지 말고 그것을 한 번 발로 밟아보라고 했답니다.  아이는 맨발로 그 아이스크림을 밟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스크림이 발가락 사이로 삐죽 삐죽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울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활짝 웃으면서 장난질을 쳤습니다.  함선생이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주었더니 너무 좋아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먹는 것이지 발로 밟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 실수로 떨어트렸을 때 그것 가지고 울고불고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려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붙들고 울려고만 하지 말고 과감히 발로 밟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과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떨어트리셨습니까?  얼마나 떨어트리셨습니까?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붙들고 울고불고 하지 말고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이스크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냥 밟아 버리고 한 번 활짝 웃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처럼 아이스크림 하나에 목을 매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밟아 버려!  무더운 여름에 말만 들어도 좀 시원해지지 않으십니까?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미련 없이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시려면 셋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면 됩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에 '먼지도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사람들이 나귀를 몰고 돌아오는 길인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지에 석양 햇빛이 비취었습니다.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혔는데 햇빛을 받은 흙먼지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진의 제목을 '먼지도 아름답다'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찬송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그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아름다운 빛이십니다.  그 빛이 우리의 영혼에 비취게 되면 우리의 삶은 먼지도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인정하십시오.  우리가 잃은 것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상은 요동하여도 하나님은 요동치 아니하십니다.  세상은 변하여도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실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으로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인 중에 최상호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션 계통의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신데 그의 시중에 '다짐'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대학 시험에 불합격하고 풀이 죽어서 졸업식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제자가 안스럽고 속상해서 쓴 시입니다.  선생의 마음을 참으로 잘 표현한 시라서 가슴에 와 닿는 참으로 좋은 시이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다짐'
정호야 그리고 날라리라 불리던 동방불패 4인방아!
당당히 고개 들고 '선생님!' 하고 외쳐라.
불합격이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교실 모퉁이에서 졸업식장의 구석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나오지 못하겠니?
아침이슬에 저녁별 보던 만리동 언덕
눈물고개의 귀신 바람 부는 소리 듣던 겨울 저녁 밤에
웃고 사는 놈만 빛나는 인생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니?

저는 이 시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오늘 세상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풀이 죽어 숨어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개야, 고개 들고 '하나님!' 하고 외쳐라.  실패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세상 모퉁이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썩 나오지 못하겠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이시라면 세상이 좀 힘들어졌다고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며 죽을 상을 하고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이후에 얼굴을 펴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뭐하러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중에도 얼굴을 활짝 펴고 웃고 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힘든 세상이지만 주와 함께 기쁘게 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시편 23편을 생각합니다.  제가 시편 23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윗이 그 시편을 지을 때의 환경은 사방에 푸른 수풀이 우거지고, 곳곳에 시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다윗이 아들 압살롭의 반역 때문에 쫓겨다닐 때에 본문인 시편 23편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시편 23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은 모두가 역설입니다.

시편 23편의 삶의 자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23편 4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지금 죽음의 그늘 골짜기를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백 속에서 풀이 죽어서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힘든 세상이라고 절망하거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시편 23편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실 것이로다.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든 세상을 산다고 힘들어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힘든 세상을 나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걸어간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잖아도 힘든데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가 주십니다.  십자가를 지신 부활의 주님께서 축 쳐진 내 어깨를 붙잡으시면서 함께 일어나자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 인생에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인생에 목자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에 줄곧 나와 더불어 동행하는 동행자가 되어 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같이 걸어가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힘든 세상에서 지치고 넘어질 때 주님 손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은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유능한 상담 전문가가 도와주면 폭풍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폭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 친구들이 손을 꼭 잡아줄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무덤의 권세를 짓밟아 이기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일은 철학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야 할 분은 인생의 의미를 선포하신 주님이십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목자가 되어 주시면 내 잔을 채워주십니다.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싸움터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한 우리는 언제나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눈물이 많고 고통이 많아도, 아무리 아픔이 많고 좌절이 많은 인생도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언제나 잔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 때문에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잘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가난 때문에 기죽고 못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당당하고 근사하게 잘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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