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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행 1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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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행 17:1-15)
  

들어가는 말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빌립보에서 서남쪽으로 52Km로 지점에 암비볼리가 있고, 거기서 또 서남쪽으로 50Km 지점에 아볼로니아가 있습니다.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를 잇는 길을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와 마게도니아 동부를 잇는 엑나시안 가도 (Via Egnatia)라고 합니다.
바울 일행은 이 로마 길을 따라 100마일을 여행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세계 정복을 위해 마련해 놓은 길을 바울 일행은 영혼구원의 대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1. 바울이 전한 복음

바울에게는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 관례가 무엇이었습니까?

① 그것은 유대인의 회당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1절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0절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② 사도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풀어 설명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철학적인 사유나 해박한 이론이나 심리 분석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진정한 부흥의 시작은 말씀의 회복에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기 시작할 때, 말씀을 갈급해할 때 부흥은 시작됩니다.

몇 년 전에 갤럽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전국의 고등학생 1,200명에게 물었습니다.
그 중 많은 학생이 교회를 떠난 학생들이었습니다.
“왜 교회를 다니다가 안 다닙니까?”
사람들은 ‘교회가 재미없어서’ 또는 ‘교회에는 예쁜 여자 애들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학생들이 지적한 첫 번째 이유는, ‘우리 교회의 설교가 은혜가 안 되기 때문’이랍니다.
누구에게나 말씀을 사모하는 영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영이 살아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또 하나님의 말씀은 섶을 사르는 불과 같으며 반석을 깨뜨리는 방망이 같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 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으십시오.
털 뽑지 말고 통째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믿으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자식이 하도 공부를 하지 않자 어느 날 아버지가 입에 나오는 대로 아이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얘야, 공부 좀 해라. 네가 학급에서 일등을 하면 아빠가 차인들 못 사 주겠냐?”
“아빠, 진짜예요? 차 사 줄 거예요?”
“그래.”
아이가 아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 날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밤을 새웁니다. 정말 책을 파고듭니다.
그러면 누가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까요?(질문)
아빠지요!
‘저 놈 봐라. 이러다가 차 사주는 거 아니야!’

우리 교우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당황하게 하고, 부담을 느끼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바울이 뜻을 풀어 설명한 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① 바울이 전한 첫 번째 메시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당신을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입니다.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교회 갑시다.”라는 말은 비교적으로 잘 해요.
그러나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는 얘기는 잘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말을 돌리다가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분명히 증거 했습니다.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원색적인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색 칠하지 않고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 그대로를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이 오늘밤에 죽는다면 천국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② 바울이 전한 두 번째 메시지는, ‘예수는 그리스도이다.’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굉장한 얘기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유대민족이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갈망해 온 메시아가 바로 이 분, 예수님이시다.”라고 바울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고백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그거 당연하지요!
그러나 바울 시대에 그 고백은 혁명적인 얘기입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인 시이저 숭배를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에는 토착 종교 세력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대고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은 ‘날 잡아 잡수시오.’ 라는 말보다 더 심각한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만이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이것이 바울의 증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개인, 가정, 그리고 국가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믿으십시오.

2. 복음에 대한 반응

바울이 전한 복음은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에 절대로 빈 껍질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복음은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에 절대로 빈 껍질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격려를 줍니다.
말씀을 전했지만 회중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설교자는 맥이 빠지면서 손이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런 순간에도 생명의 씨앗인 복음은 사람의 영혼 속에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거부든지 수용이든지........

어느 목사님이 다른 교회에 초청 받아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설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입술은 바싹 바싹 마르고, 말씀은 벽에 공치기하듯이 회중의 마음에서 튕겨져 나오는 것 같고.......
이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본인도 은혜를 못 끼쳤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비록 나는 설교 못하는 목사로 인정되어 손해 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손해 보시지 않습니다. 비록 나는 설교를 잘 못하여 창피를 당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창피를 당하시지 않습니다.”

저는 그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그 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손해 보지 않으신다!’
‘그렇지. 설교가 잘 안 되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지.......손해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 설교를 통하여서도 어느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 분명하니까.........’ 

본문에서도 우리는 복음에 대하여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반응을 보게 됩니다.

1) 극렬히 반대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소동’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5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도다.”
13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2)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① 11절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베뢰아 사람들은 따지기 위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기 위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뭔가 잘 못된 것이나 틀린 곳이 있지 않나 찾아내려고 경청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진리를 알기 위해,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기독교 TV에서 한 목사님이 나와 이런 말씀을 합디다.
“몸만 살찌우는 것을 우리는 사육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을 우리는 양육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사육만 될 것인가?
사람이라면 말씀의 양육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4: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기 영혼을 살찌우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기를 바랍니다.

②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진지하게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꼭 만나 주십니다.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적인 천재였던 류 웰리스(Lew Wallace)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화에 빠져 있다고 생각되어 이것을 깨뜨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웰리스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면서 2년 동안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책의 2장을 쓰다가 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며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폭로하려고 결심했던 그 분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후에 웰리스는 지금까지 쓰여 졌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가장 위대한 소설 중의 하나인 ‘벤허’를 썼습니다.

나가는 말 

바울은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하지 않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그런 곤욕과 소동을 겪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의 모습에서 사명자의 태도를 배웁니다.
여러 말씀을 드렸지만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사명자는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만 집중할 뿐 사람들이나 상황에는 그렇게 과념하지 않는다.’
만일 바울이 사람들과 상황에 골몰했더라면 사명자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회중의 박수갈채가 있으면 좋아하고, 회중의 반응이 신통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은 3등입니다.’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되면 하나님을 부릅니다.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 할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 뵙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잡은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1등 삼으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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