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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자연적인 경험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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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인 경험 (마 14:22-33)

하루는 집에서 아들이 누워 있는 아버지를 흔들며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 결혼하는데 돈이 얼마 들어?”, 아빠가 대답합니다. “글쎄,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 아들이 물었습니다. “그럼, 아빤 엄마랑 결혼하는데 얼마 들었어?” 그러자 아빠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아직 알 수 없단다. 아직도 그 값을 계속 치르고 있으니까!”
   
결혼하신 분들, 결혼하고 나니까 매일 매일 행복합니까? 가정생활이 매일 천국생활 같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좋을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생활 잘 하려면 잘 참아야 합니다. 성질대로 다하면 가정은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 성질대로, 아내는 아내 성질대로 하면 그 가정 깨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서로에게 딱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상하게 부부는 반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부부를 보면 그 말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는 정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 찰밥을 좋아하고 제 아내는 흰밥을 좋아합니다. 전 국물을 좋아하고 아내는 건더기를 좋아합니다. 전 생김치를 좋아하고 제 아내는 신김치를 좋아합니다. 전 매운 것을 좋아하지만 잘 못 먹습니다. 딸꾹질이 나서 못 먹습니다. 제 아내는 매운 것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전 육식을 좋아하는데 제 아내는 채식을 좋아합니다. 어디 먹는 것만 그렇겠습니까? 잠잘 때 머리는 두는 방향도 이상하게 반대입니다. 제가 이쪽에 머리를 두자고 하면 아내는 저쪽으로 눕기를 좋아합니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딱 맞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양보하고 참고 상대에게 맞춰주려고 할 때 행복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기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나하고 생각도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다른 게 많습니다. 불편해도 좀 참고 이해하려고 할 때 교회생활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본문에서 교회생활에 대한 교훈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앞에서는 오병이어 사건이 나옵니다. 어린 아이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흥분했을까요?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 사건 바로 후에 바다를 건너다가 광풍을 만나서 죽을 지경이 됩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큰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교회생활은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도 있지만 큰 풍랑을 만나는 힘든 일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5병 2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니 제자들을 배에 태워 갈릴리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혼자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자주 풍랑이 일어나는데 파도가 2m가 넘습니다. 지금이야 2m 파도가 별거 아니지만 그 당시에 제자들이 탄 작은 배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기도하시던 주님께서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난당하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 때 시간이 밤 4경이었습니다. 4경은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새벽 3시 이후를 말합니다. 그 새벽시간에 누군가 물위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것이 유령인줄 알고 놀라 무서워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내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로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담대하게 물 위로 뛰어듭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에 빠져갑니다. 그가 다시 소리를 지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가지고 [초자연적인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목적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5병2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요 6:15에 보면 5병2어의 기적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분이 왕이 되시면 먹고 사는 것은 문제도 없겠다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목적과 자신이 가지신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셔서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자신을 믿는 자들마다 구원하셔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 목적 하나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고, 그 목적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고, 그 목적 때문에 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나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생활화 되신 분입니다. 23절에 보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눅 22:39에 보면 주님께서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이유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기도가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아시는 분입니다. 눅 6:48에 보니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난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아시고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져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주님은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주님은 고난 중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알아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분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셨다는 사실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심 없이 믿어지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성경학자들 중에도 초자연적인 기록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성경을 연구하지만 믿음이 없어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믿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위로’라는 말을 묘하게 문법적으로 해석을 하면서 물가를 걸으셨다 혹은 해변을 걸으셨다고 해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분명히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갔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해석이 안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래사장에 빠져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넜다는 것도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원문에 보니까 ‘갈대 바다’라고 번역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가 갈라진 사이를 건넌 것이 아니라 갈대숲을 건너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럼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다음에 말을 타고 애굽 군대가 바다 사이로 들어갔다가 물이 합쳐져서 몽땅 수장되었는데 그렇다면 갈대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고 난 다음에 갈대가 합쳐지는 바람에 애굽 사람들이 갈대에 맞아 다 죽었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데 참 어의가 없는 해석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역사를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초자역적인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초자연적인 경험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바다 위를 걸으신 것만 아니라 베드로에게 ‘오라’ 하셔서 베드로를 바다 위로 걷게 하신 분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로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도우셨던 것처럼 우리들을 도우시며 필요하다면 우리들에게도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언제나 초자연적일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기적이 필요할 때 주님은 얼마든지 기적을 일으켜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30,31절을 보면 물에 빠진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치자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건져주셨습니다. 마 1:21에 보면 천사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은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시며, 환경적인 저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33절에 보니 제자들은 이 사건을 목격한 후에 예수님께 절을 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느 날, 브란덴부르크 지방의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지리시간이었습니다. 왕은 한 아이를 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프러시아입니다.”, “프러시아가 어디에 있지?”, “독일에 있습니다.”, “독일은 어디에 있지?” 왕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유럽에 있습니다.”, “그럼 유럽은 어디에 있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디에 있지?” 그러자 아이는 총명한 눈동자를 번쩍이며 잠깐 생각하고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현명한 대답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 28:18에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모든 주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예수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여 크게 실패하였습니다. 작은 나라 하나쯤은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최신식 무기를 동원하였습니다. 고엽제까지 뿌려가며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고 나중에는 두 손 들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최신식 무기를 가지고도 베트콩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 미국이 걸프전에서 이라크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는 월맹하고는 다릅니다. 석유를 팔아 수많은 신식무기를 구입해 실전 배치해 두었습니다. 백만 대군을 자랑하는 군사대국입니다. 

그때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빌리그래함 목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맞도록 두 손 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드디어 미국과 이라크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미국이 승리했습니다. 주님의 손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인생에는 초자연적인 역사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생활은 정상적인 자연법칙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법칙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자연법칙으로 우리가 살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의사도 약도 우리를 치료하지 못할 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을 만났을 때 그때 역시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배를 저어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강해서 자연법칙을 따라서 볼 때는 도저히 바다를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풍랑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물위로 걸어오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뺀다면 성경은 두 장 밖에 남지 않습니다. 성경은 겉장 두 장을 제외하고는 기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기적이 기록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의지를 주님에게 드리고 주님만 꽉 붙잡아야 합니다.
   
무디 목사님이 겨울날 아침에 어린 딸과 공원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눈이 와서 온통 공원 전체가 눈 천지가 되었는데 또 비가 와서 얼어붙어서 빙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아빠에게 “내 손잡지 마! 내가 걸을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아니야. 위험하니 아빠 손 잡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혼자 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니야. 아빠, 손잡지 마. 나도 아빠하고 같이 걷겠어.” 그 말을 하고는 얼마 안 있어 와장창 미끄러져서 넘어졌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응아“하고 웁니다. 무디가 ”그것 봐! 아빠가 잡아 주겠다는데 왜 고집을 부리고 혼자 걷다가 그렇게 엉덩방아를 찧어. 자 잡아 줄께!“ 하니까 딸이 ”손가락 하나만 잡아. 손가락 하나만 잡아“ 하고는 손가락 하나만 내놓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손가락 하나만 잡고 걸어가다가 또 미끄러지니까 손가락이 빠져 가지고서 이제는 진짜 크게 자빠졌습니다. 딸이 또 웁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그다음 일으켜서 손 전체를 덥석 잡았습니다. 손을 꽉 잡고 산책을 하니까 이제는 딸이 미끄러져도 아빠가 붙잡아 주니까 자빠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함께 걸어가서 공원 산책을 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실패하지 않고는 주님과 깊이 동행하는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주님을 붙잡는 것을 배우면 주님의 손에 붙잡힘 받아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기적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초자연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이 여려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위를 걷는 초자연적인 경험은 베드로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초자연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적극적이었습니다. 유령처럼 바다 위를 걸어오시던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담대하게 물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소극적이었던 다른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걷지 못했지만 적극적이었던 베드로만은 바다 위로 걸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적극적인 사람이 잘 합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은혜도 크게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 처럼 적극적인 몇 사람만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은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시키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지나가시던 주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치료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아멘도 적극적으로 하고, 기도도 적극적으로 부르짖으며 하시고, 감동이 오면 적극적으로 순종하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되지만 천국을 침노하는 것은 양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인 사람이 초자연적인 경험도 하는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적극적으로 순종하십시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하시니 베드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합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빠지는데, 그러다 죽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밟으라면 밟아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리고를 돌라고 하면 돌아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계산하고 재보고 이성적으로 합당하면 순종하려고 하면 기적은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선다면 그때는 덮어놓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동이 올 때 너무 계산을 합니다. 계산하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산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감동이 올 때 즉시 순종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2014년 1월에 미자립교회 무료 청소년수련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 사역은 귀한 사역입니다. 그 사역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청소년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주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통해서 바벨론에 물들지 않은 다니엘과 같은 거룩한 세대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는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로서는 순종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순종하는 저희들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3) 주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볼 때는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도를 보고 두려움을 갖게 되자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주님만 봐야 합니다. 사람도 보지 말고 환경도 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 보면 시험에 듭니다. 환경 보면 시험에 듭니다. 세상 바다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의 황야지대에는 방울뱀이 살고 있습니다. 이 방울뱀이 다람쥐를 잡는 방법이 매우 특이합니다. 먼저 꼬리를 흔들어서 소리를 냅니다. 그러면 나무 위에 앉아 있던 다람쥐가 그 소리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소리 나는 곳을 내려다봅니다. 그 순간 다람쥐의 눈과 독사의 눈이 마주칩니다. 다람쥐가 겁을 먹고 떨고 있을 때 독사는 입을 쫙 벌리고 밑에서 기다립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람쥐는 비실비실 중심을 잃습니다. 나무 아래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던 방울뱀은 떨어지는 다람쥐를 한입에 꿀꺽 삼켜 버립니다. 베드로가 방울뱀에게 먹히는 다람쥐와 같았습니다. 그가 파도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임하고 결국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으로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은 체험을 하다가도 바다에 빠지는 것 같은 시험에 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을 보거나 환경을 봐서 그렇습니다.
   
목사도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본받을 것이 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목사도 여러분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목사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면 연약한 인간인 목사를 보지 마시고 목사를 쓰시는 주님을 보십시오.
   
환경도 믿으면 안 됩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고 해도 다 낡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풍성한 계절 가을이 지나면 황량한 겨울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24시간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죄를 범했을 때는 죄를 사하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연약할 때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미련할 때는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병들었을 때는 나의 건강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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