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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교자의 설교(3) (행 7: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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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설교(3) (행 7:17-43)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간증은 자신의 생애 중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배 부르고 등 따스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건강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굳이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이 꼬이고 실패가 반복될 때, 자신이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았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었다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이 당한 박해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은 박해를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약속의 성취와 함께 박해도 나타나게 되었다.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함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교활한 방법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바로의 박해 정책(19절)
1)출산을 막기 위해 사내 아이를 나일 하수에 버리도록 명령.
2)중노동을 통해 그들의 삶이 곤고해지도록 했다.

여러분, 기도 소리는 고통의 정도와 비례한다. 이스라엘은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다. 

행 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고통 당함을 보시고,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응답하셨다. 그 응답은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행 7:34 ...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1.모세의 출생과 성장(20-22)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1) 버려짐
모세가 태어난 시기는 바로의 박해가 절정을 이룰 때 였다. 석 달 동안은 숨기며 키웠지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살리기 위해 바구니에 역청을 발라 물에 가라 앉지 않도록 하고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는 강가로 떠내려 보냈다. 바로의 딸이 히브리인의 아들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겨 젖을 뗀 후에 궁중으로 데려가 자기 아들로 키웠다. 

2)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성장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서 학문과 무술과 지도력을 배웠다. 40세가 되었을 때는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2. 미디안 광야에서의 망명생활(23-29)

1) 그 형제를 돌아볼 생각, 동족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놀라운 사실은 40년 동안을 왕궁에서 왕자로 살았지만 그의 몸 속에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동족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이 있었다. 모세가 동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된 동기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짐작 컨대 부모의 기도와 양모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애굽인을 쳐 죽인 사건이 폭로됨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그러던 어느날 애굽인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일을 목격하고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 죽었다.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동족을 구하려 하시는 뜻을 깨달게 될 줄로 알았다. 그 이튿날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중재자로 나섰다. 그러나 선의로 대하는 모세의 행동에 반기를 든 사람이 애굽인을 죽인 사건을 폭로하므로 미디안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3) 미디안에서 망명 생활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대국의 왕자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는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 딸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얻었다. 그리고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평범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40년의 시간은 40년 동안 애굽 왕궁에서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세속의 권위와 교만을 무너뜨리고 철저하게 낮아지게 하는 훈련의 기간이었다. 


3. 하나님의 부르심과 출애굽

1) 부르심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에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신다.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네가 가지고 있었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뜻이다. 바로의 왕궁에서 배운 학문과 기술을 다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2) 보내심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25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모세가 하나님보다 자신이 앞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의 손”이 “하나님의 손”으로 바뀌는데 40년 걸린 셈이다. 모세가 자기 손으로 하려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절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데 모세를 도구로 쓰시겠다는 것이다. 

3) 광야 40년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압제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80년을 기다리게 하셨다. 애굽의 왕궁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세상적으로는 불가능할 나이 80세에 출애굽의 대역사를 이루게 하셨고, 그후 40년 동안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인도자 역할을 하였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곤고함과 고통을 듣고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곤고할 때,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짖어야 한다. 우상 섬기지 말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인생을 의지하지도 말고,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2.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보자를 세우셔서 구원하신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고 종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선포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
모세가 자신의 손으로 동족을 구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진다. 교육, 지식, 기술, 재능을 익히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 교만의 물을 빼는데 40년이 걸렸다. 자신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을 때, 자신의 무능력을 깨달을 때 찾아 오셔서 사명을 주신다. 자기가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설명만 가지고도 한 편의 좋은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여기서 끝나게 된다면 반쪽만 이해한 것이 된다. 스데반 집사의 이 설교의 목적은 모세를 소개한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다. 

행 7: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이 말씀은 신 18:15 말씀의 인용이다. 광야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했던 말씀이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성전에서 설교할 때도 이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나와 같은 선지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깊이가 있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측면을 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데반 집사가 모세의 이야기를 거론한 이유는 모세의 출생이나 역할이 예수의 출생이나 역할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모세의 이야기는 공회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스토리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와 같이 그들이 존경하고 자랑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되면 경외심을 갖고 듣는 사람들이다. 

스데반 집사의 목적은 모세를 통해서 진정한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회원들과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고도 거부했다. 모세가 동족끼리 다투는 것을 말리려 할 때도 모세를 거부했고, 출애굽한 광야에서도 모세를 거역하였다. 스데반 집사는 그 조상들의 거역함을 상세히 들춰내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대개 법정에 선 피고들이 재판의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때는 상급 법원에 상소하게 된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에 대한 재판은 피고가 정당한 판결을 호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스데반 집사는 자신이 지금 유대교의 핵심 지도자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편견과 복음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자랑하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요셉, 모세와 같은 인물들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였다. 

1) 아브라함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 우상 장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땅 팔레스틴이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증거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후손을 통하여 나실 예수 그리스도, 그를 통하여 수 많은 믿음의 자손을 얻을 것을 믿었다. 

2) 요셉을 통하여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렸다. 고통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야곱 가족의 구원자로 준비시키셨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시기를 받아 고난 당하셨던 것처럼 요셉도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 요셉은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역사 하셨을 때도 거룩한 땅 팔레스틴에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 애굽에서 구원을 준비하셨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고, 요셉을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고, 모세를 통하여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였다. 그는 배수의 진을 치고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그는 순교할 각오를 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였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성전,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 그것은 실체를 상실한 형식이요 외식에 불과한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믿음에는 생명도 없고, 영생도 없고, 천국도 없다.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고 탄압하는 동족들의 완악하고 강퍅한 심령을 보고 스데반 집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수 많은 교회당 건물들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어떤 분들은 한국교회에 복음이 실종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극단적 벌언이긴 하지만 경고의 메시지로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성공하려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부자가 되려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형통하려고 한다. 십자가가 없는 예수를 믿으려 한다. 그래서 쉽게 편하게 믿자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고 손해를 보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당했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변질시켜서 적당하게 편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심지어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까지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교회당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를 성전 삼아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내주 하신다. 스데반처럼 순교를 각오하며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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