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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삶 (막 8: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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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삶 (막 8:27-34)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 마을을 다니시다가 느닷없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냐?”라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생뚱 맞은 질문입니다. 그 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한 잠자리에서 자면서 살아온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아냐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지만, 유독 당신을 따르는 열두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좇아오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고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란 자신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 스승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제자인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서 어떠한 질문을 하시며, 어떻게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누구시냐'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질문하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제자들의 대답이었습니다. 제자 아닌 세상 사람들이야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 엉뚱한 대답을 할 수 있어도, 자신과 함께 생활을 하며,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사역에 동참했던 제자들은 자신을 제대로 알고 따라다니는지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 베드로가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제자들의 대답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제자들을 통하여서 예수님이 증거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어도 예수님의 제자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 때에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체험함으로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함으로 알 때에 그 믿음이 힘이 있으며, 증거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소개해준 친구는, 그 여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들려 주었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정말 똑똑한 여자고, 얼굴은 얼마나 예쁜고 성격까지 좋은지 너에게 주기는 정말로 아깝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후에 남자는 소개받은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결혼해서 살다 보니 정말 자신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참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소개해 준 친구로부터 들어서 알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정말 아내가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말을 체험을 합니다. 결혼 전만 하더라도 얼굴이 예쁜 줄 알았는데 결혼 후 그것이 화장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격은 대체적으로 좋지만 잘못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도 같이 살면서 체험하면서 알아가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러한 체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누구한테 들어서 대충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경험케 하심으로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알게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베드로에게는 그만한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풍랑이 이는 갈릴리 호수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잠잠케 하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더군다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바다 위를 걷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냐” 라고 했을 때에, 그 체험한 예수님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제자들 이외의 사람들은 이 답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체험하여서 안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교회와 성도의 삶에서 지식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을 삶으로 체험하는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구원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능력이 되어 주신 삶의 고백이 곧 증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욱 더 많이 알기를 원합니다. 제대로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설 때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 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증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좇아서 죽을 수 있느냐?”제자들은 이 질문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에게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깜짝 놀라 예수를 붙들고 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고난받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꾸짖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냐며 예수님의 말씀에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러한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죽으신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실 수 있습니까? 죽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 베드로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베드로를 도리어 꾸짖습니다. 사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사단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며 나아가 사탄의 일이라고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마태복음 4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고 오셨을 때에 사탄이 나와서 예수님께 시험하며 질문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곳,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자를 명해서 네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도록 해 주실 것 아니냐?” 라고 시험을 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라는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메시야 되심은 죽을 상황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위에서 죽지 않고 뛰어 내려와서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이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을 받아 진정한 메시야가 됩니다. 그 죽음이 있어야 영광된 부활이 있고 참된 하나님의 아들임이, 그리고 메시야 되심을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제자 됨을 증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좇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에 구원받을 수 있고, 참된 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는 일은 예수님과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을 좇다가 고난당하고 죽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좇을 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비결을 잘 알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죽은 후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제자와 죽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희랍어로 제자를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의‘마테테스’라고 하는데 후에 영어의 순교자를 의미하는 ‘Martyr’라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때에 예수님의 제자는 곧 순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된 저와 여러분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나를 위하여서, 나를 좇아 살기 위해서 얼마나 죽어 봤냐? 네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이웃에게 얼마나 많이 죽어봤냐?"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 됨도 자기를 부인하고 나와 복음을 위해서 죽을 때에 증명되는 줄로 믿습니다.


3.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너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았느냐?”입니다.

마태복음 28:19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또 다른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과테말라 단기선교 기간 동안에 만난 캐나다 런던교회의 선교팀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해 9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선교팀입니다. 그들이 과테말라에 온 선교목적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맡아 제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선교팀 학생들은 스패니쉬가 안되니까 중간에 스패니쉬를 하는 사람을 통역자로 두고, 현지 학생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도록 집중을 했습니다. 그들은 선교관에서뿐만 아니라 배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자신에게 맡겨진 현지인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 먼 곳에서 와서 9명의 사람들을 양육하지만, 그 양육된 제자는 또한 그곳에서 또 다른 제자를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사람의 제자를 세우기 위해서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또 다른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이 열두명의 제자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롯유다는 제자로 만드시는 것에 실패하셨고 겨우 열한명을 제자로 양육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열한명의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아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들을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먼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으실 때에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가족에게, 이웃에게,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습니까? 지식적으로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예수님 그 분에 대해서 알고 증거할 수가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3: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다른 이들에 증거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증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른다면서 나와 같이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경험을 했느냐? 나와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죽어 봤냐?" 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살라고 합니다. 자존심을 세우고 자신의 스타일 대로 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에 제자로서 진정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질문하십니다. "너는 세상에 있을 동안에 얼마나 나의 제자를 만들었느냐?" 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는 날 핑계할 수 없습니다. 바빠서 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늘 예수님의 질문에 바른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 살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있을 때에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제자라고 부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지금 스스로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앞에 서는 그 때에 베드로와 같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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