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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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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1-27)

(마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어머니가 나옵니다.  참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나안 여인을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십니다.  헬라 원문대로는 메가스 피스티스입니다.  메가톤 급이라는 말입니다. 메가톤 급의 큰 믿음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십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오랫동안 귀신들려 불행한 삶을 살던 이 여인의 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건 교리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지식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큰 공을 세웠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원초적인 믿음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기도 응답이 풍성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고 싶습니까?  예수님께 큰 믿음을 가졌다고 인정받으며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 여인을 모델로 삼아 큰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가나안 여인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우리가 가나안 여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 탁월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여인보다 부족한 믿음은 어떤 면입니까? 우리도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상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반응이 없을 때도 나아가야 합니다.(23) 
  
여인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저 같으면 딸이 귀신들렸으면 창피해서 조용히 다가가 남이 듣지 못하도록 귀엣말로 부탁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지금 다급하여 그런 것 따지지 않고 소리를 질러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너무 시끄럽게 부르짖으니까 제자들이 견디다 못해 어떻게 해서 돌려 보내자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다 들으시고서도 아무런 대꾸도 않으신 것일까요? 여인의 믿음을 관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경우 '씹혔다.'라고 합니다. 개 무시 당했다는 거지요. 무슨 말을 했는데 반응을 안 보이면 아이들도 기분 나빠하고 몹시 언짢아합니다. 가나안여인 역시 유쾌할 리가 없습니다. '내가 수치를 무릎 쓰고 알아들으시도록 큰 소리로 반복하여 부르짖었는데 왜 예수님은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으실까?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화가 났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무반응 테스트에 걸립니다. 그리하여 불평합니다. 
"내가 기도해 보았는데 아무 응답이 없더라."  
"나도 기도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  
"역시 예수님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해..."  

그리고는 믿음의 열정을 접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포기합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는 모든 시도를 중단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이 없습니까? 주님의 침묵의 반응에 더 이상 믿음의 시도를 하지 못하고 주저 앉아 다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 믿음을 인정받으려면 그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고자 일부러 침묵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반응이 없어도 포기하지 말고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주일 예배 몇 번 나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 며칠 나오고 포기하면 기도 응답 받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생겨 특별히 작정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며칠 하고서 집어치우면 안됩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모니카입니다. 모니카의 아들 어거스틴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마니교를 신봉하고, 쾌락에 빠져 죄악 된 삶을 사는 것을 볼 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얼마나 애쓰며 눈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10년이 넘게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어거스틴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모니카는 낙심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안타까워서 암브로스 감독을 찾아가서  호소하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감독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신 것 같아요,  오랜 세월 동안 제 아들의 심령을 위해 기도 드렸지만 하나님은 제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으십니다. 제 아들이 돌아오기를 10년이 넘게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눈물을 흘리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암브로스 감독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계속 기도하세요."
  
암브로스 감독의 격려의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계속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 기독교 역사상 아주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침묵하시는 때에도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을 인정받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구하는 것을 주님이 다 들으시는 것을 확신하고 응답이 올 줄로 확신하고 계속 부르짖는 끈기를 나타내 믿음을 인정받기를 축원합니다. 

  
2. 거절당할 때도 더 나아가야 합니다.(24)
  
가나안 여인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런데 왜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지방으로 가신 것입니까?  어쩌면 구세주란 분이 이렇게 편파적일 수 있습니까?  딸의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와 간청하는데 어떻게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본래 유대인의 편을 들어주시는 편협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 지으시지 않고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다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운운하십니까?  여인의 중심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거절당할 때의 반응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돌아섭니다. 오래 믿은 교인들 중에도 거절의 상처가 커서 거절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거절하는 빛을 느끼면 못 견딥니다. 교회를 옮기거나 떠나는 상당수의 교인들이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극복하지 못해서입니다. '목사님이 다른 교인들만 좋아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셔..' '목자 목녀님이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아..' 나를 누가 거절하지는 않는가? 눈치를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그런 빛이 보이면 사정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오랜 관계도 칼로 무 자르듯 냉정하게 잘라버립니다. 
  
여러분이 거절의 상처를 느껴 괴로울 때 가나안 여인을 떠 올리고 위로 받으시고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잇기를 바랍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거절당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교인에게 "난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니 기도해달라, 심방 와달라 하고 자꾸 귀찮게 하지 마시오" 하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날이 다하기 전에 난리가 날 것입니다. "저게 무슨 목사냐? 돈 있는 것들한테는 아부를 떨고 내가 가난하고 힘 없다고 괄시를 하고 두고 보자." 하고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 "목사가 날 무시하고 깔보더라고, 저거는 목사도 아니라고" 거품을 물고 욕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제가 '난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어요.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라고 말해도 무릎을 꿇고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목사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를 제자 삼고 쫓아내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매달릴 분이 있습니까?   '미쳤어요.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럽니까?' 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믿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그렇게 했습니다. 거절당해도 매달렸습니다. 25절 여자가 와서 정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나는 예수님을 떠나 아무데도 안 가겠습니다. 제발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고 간청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거절당하는 것도 시험입니다. 믿음을 보이는 기회로 삼으세요. 기도응답이 안 되어도 기도를 접지 마세요. 주님이 여러분의 직분을 거두셔도 봉사를 접지 마세요.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외면당해도 주님과의 관계를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를 접지 마세요. 돌아서지 마세요. 무릎을 꿇으세요. "제발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고 엎드려 간청을 하세요. 그러면 믿음이 자라고 인정받습니다. 주님께 칭찬 받습니다. 

  
3. 모욕감을 느낄 때도 나아가야 합니다.(26)   
  
옛말에 '동냥을 주지 않으려거든 쪽박은 깨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병을 고쳐주시기 싫으면 곱게 보내시지 모욕적인 언사를 쓰셨습니다.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는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하셨어요.  개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개 취급을 하면 화나지 않을 사람이 있습니까?  뭐든지 개 자를 붙이면 나쁜 것이 됩니다. "개떡, 개집, 개밥, 개똥, 개털..."
  
유대인은 하나님 자녀이고 가나안 사람 너희들은 개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보면 예수님이 이처럼 모질게 불쌍한 사람을 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가나안여인에게만은 개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모욕감을 느끼게 한 것일까요? 중심을 보시려고 믿음을 테스트하시려고 한 것이다라는 말 외에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많은 모욕을 친히 감수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애매한 말씀을 많이 들으셨습니다.  뺨도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옷을 발가 벗기운 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럼 내려와봐라 하는 조롱의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에게까지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다 감수하셨습니다. 참아내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시려고 다 견디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모욕감을 느낄 때 인내합니까? 참아내며 감수합니까? 조금도 못 견디는 것은 아닙니까? 모욕감을 느낄 때 결단코 돌아설 때가 아닙니다.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인을 보십시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습니다. 땅에 떨어진 것 주워 먹어도 좋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은혜를 내려주세요."  
  
오늘 우리도 이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 전도하다가 모욕을 받아도 좋습니다. 봉사하다가 오해 받고 욕을 먹어도 좋습니다.  심지어 주님께 개 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려 주십시오. 제발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잇게 해 주세요."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까짓꺼 그런 대접받으며 은혜 받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낳아. 은혜 받지 않고도 난 잘 살 수 있어..' 하는 생각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욕 받는 것 별거 아닙니다. 은혜 받으면 다 잊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은혜 받고 믿음이 인정받는 것이 내 자존심에 다소 타격을 입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모두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자기가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것은 이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테스트였습니다. 침묵도, 거절도, 모욕도 테스트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짜 믿음을 가졌는가? 짝퉁 믿음을 가졌는가? 보기 위해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테스트하십니다. 여러분,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하여 예수님께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확실한 인정을 받기를 바랍니다. 더 큰 믿음을 품으십시오. 그래서 상급을 받기 바랍니다. 문제도 다 해결 받기 바랍니다. 주님의 큰 사랑을 받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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