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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레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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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레 23:1-8)
    
역사학자인 이기백 교수님이 쓰신 ‘한국사신론’을 읽어보았습니다. 이교수님이 정리하신 해방의 역사를 간단히 인용하면서 해방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년 8. 15 광복절은 광복 68주년이 됩니다. 그리고 정부수립 65주년이 됩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해방은 제2차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1943. 6월에 이탈리아가 항복함으로 점차 연합군 측에 서광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될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1943. 12월 카이로에서 미국 영국 중국의 정상들이 카이로 회담을 발표하였는데, “한국인민의 노예상태를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즉 독립케 할 것을 결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꾸준히 독립 운동을 전개한 결과였습니다. 

이어 1945년 5월에 독일이 항복하고 7월에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에서 모인 미, 영, 중의 3 정상들은 전에 발표한 카이로선언을 재확인하면서 8월에는 소련의 정상이 참가하면서 한국의 독립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였습니다. 35년간의 일본의 제국주의의 학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끓어오르는 민족의 환희 속에서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거리마다 물결이 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일본군이 물러가면서 즉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연합군이 진주하면서 중경에 있었던 임시정부가 돌아와서 정부를 수립하기를 기다리는 민족주의자들인 우익인사들과 연합군이 진주할 때까지 민족대표기관을 설치하려는 좌익세력이 결집되면서 우좌갈등은 심화되었습니다. 

연합군을 대표하는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3.8선으로 갈리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일본의 패망이 거의 확실해질 때에,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일본의 항복만 남았을 때에, 8. 9일에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한소 국경을 넘어 왔습니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 계속 남하하여 평양, 함흥 등 북한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9. 9일에야 인천에 상륙하였습니다. 소련이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도록 3.8도 선을 경계로 하여 이북에만 주둔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연합군이 진주함에 따라 남북한은 나뉘어졌습니다. 미군과 소련군은 자기의 점령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였습니다. 

먼저 북한에 들어온 소련은 처음에는 조만식장로님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를 포함하는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오도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행정을 담당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조만식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자들을 축출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공산주의 독재에 못 견디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이주하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격증하여 1947년 말까지 80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남한으로 진주한 미군은 군정청을 두고 군정을 실시하였습니다. 미군은 중경에서 귀국한 임시정부와 그 요인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조직한 인민공화국도 인정하지 않고, 자유스러운 정당 활동을 보장하고 보니, 온갖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무슨 통일을 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만박사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중경에서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돌아왔지만, 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1948. 2월 유엔에서는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에 의한 독립정부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고, 5. 10일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8명의 국민의 대표가 선출되었고, 5. 31일에 최초의 국회가 열렸고, 이어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여 7. 17일에 헌법을 공포하였습니다. 이 헌법의 절차에 의하여 국회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졌는데, 이승만박사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셨습니다. 

이어 행정부가 조직되었고, 1948. 8. 15일에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 대한민국은 유엔총회의 승인을 얻어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가 되었습니다. 뒤이어 50여 나라의 개별적인 승인도 받았습니다. 

금년은 광복 68주년이 되고, 정부수립 65주년이 되고 있습니다. 광복절은 하나님이 가져다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길이길이 물려주어야 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우리 조국 대한민국입니다. 

국가 보훈처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초청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번에는 19명을 초청하는데, 미국, 중국, 카자흐스탄, 호주에서 초청합니다. 그중에는 2013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의 손자도 있습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동북부 버몬트주에서 아버지 칼빈 헐버트와 어머니 매리 우드워드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칼빈 헐버트는 미들베리대학의 총장이며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매리 우드워드는 다트머스 대학의 창립자 엘리저 월록의 외증손녀였습니다. 

이런 때문에 헐버트는 엄격한 도덕성, 인간 중심사상 및 ‘인격이 승리보다 중요하다’는 가훈 속에 성장하였으며, 다트머스 대학을 공부하고, 1884년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마친 후 해외선교사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1886년에 인천제물포 항으로 내한하신 헐버트 선교사는 교육자로, 한글학자로, 역사학자로 선교사로,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보내셨습니다.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였는데,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으며, 초대 YMCA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 추방될 때까지 많은 선교로,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민족지도자들을 길러내었습니다. 

고종황제의 밀사로 고종황제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하였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헐버트박사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아리랑의 악보를 채보하여 세계에 알렸습니다. 고종황제가 독립 운동가들에게 주려고 황실 재산 100마르크를 독일공사를 통하여 덕화은행에 맡겼는데, 일본이 강제로 빼앗아갔습니다. 오늘의 가치로는 500억원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황제의 외교고문으로 있었던 헐버트박사였고, 훗날에 이승만박사에게 그 돈을 찾으라고 일러주기도 하였습니다. 헐버트박사는 일본에 의하여 추방되어 미국에서 교육가로 활동하였습니다. 헐버트박사는 86세의 고령에 내한하게 됩니다. 

1949년 8월에 정부수립 1주년에 이승만박사의 초청으로 내한하셨습니다. 한 달 간 배를 타고 오시면서 너무나 힘들었고, 오시자마자, 8. 5일 이 땅에서 돌아가시고 그의 소원대로 마포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신 선교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마우신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의 1-3절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기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절기의 기본이 되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셔야 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을 많이 하셔서 피로하십니까? 하나님은 단순히 일손을 놓았다는 말씀이고, 우리 인간이 소생함을 얻고 충전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쉬신 날이라고 하여야 사람들이 하루를 쉴 수 있기에 안식일을 지키는데, 그 날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반드시 일손을 놓고 쉬어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거룩한 날, 성회로 모이는 날, 백성들이 성전과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해하면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4-8절의 말씀은 유월절과 이어서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정월인 니산월 즉 아빕월 14일 날 저녁 때에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5일부터 한 주간 이레동안 무교병을 먹으면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15일 첫날과 21일 마지막 날도 일하지 말고 성회로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해방 기념일입니다. 유월이라는 말은 출12:13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넘어가리니, 넘어간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파사흐’라고 합니다. ‘넘어가다’,‘ --을 뛰어 넘다’영어로 'Passover'라고 하는데, 지나가고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재상이 된 요셉의 보호 아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은 애굽을 섬기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강을 건너왔다는 말에서 나왔는데, 강을 건너온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멀리 갈대아 지방에서 온 것으로 히브리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가장 하층 계급의 사람을 하비루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인들을 무시하고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천민이라고 부른 이름이었습니다. 요셉을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말하면서 히브리 사람이라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고통받고, 노역에 시달리고, 고된 노동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공주의 양자로 들어갔다고 도망하여 미디안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면서 40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소명에 대하여 소상히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 수많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애굽의 황제 바로에게 들어갔습니다. 출5:1입니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는 안하무인의 사람입니다. 심히 강포한 사람입니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고 하였습니다. 

이래서 지루한 줄다리기와 같은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애굽의 물이 피가 되는 재앙, 개구리가 하수에서 올라오고, 티끌이 이가 되고, 파리가 온 땅에 가득해지고, 수많은 가축이 죽어나가고, 악성 종기가 일어나고,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메뚜기가 땅을 덮고 흑암이 온 땅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동안 바로는 모세의 아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모든 가축과 어린아이들은 두고 광야로 나갔다고 오라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마지막 재앙으로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앙은 애굽 전역에 해당하는데, 애굽인에게만 아니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애굽 전역에 내리는 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집안에 있어야 하는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내어 그 고기를 먹을 집의 대문의 좌우 설주와 위의 인방에 피를 뿌려놓으면 하나님의 사자가 그날 밤에 돌아다니면서 장자와 처음 난 가축을 죽일 때에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가고 건너뛰리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아빕월 14일 저녁 해질 무렵에 지켰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빕월 10일부터 각 집에서는 양 한 마리를 구별합니다. 14일 저녁때에 잡아먹을 양 한 마리를 구별하여 따로 잘 먹이면서 이 양이 건강한지 혹 병들었는지 눈여겨보았습니다. 양 한 마리가 한 식구들이 먹기에 너무 많으면 다른 집과 어울려 한 마리를 잡아도 되었습니다. 

한 집안의 식구가 많으면 양을 두 마리 잡아도 되었습니다. 양은 반드시 수컷으로 잡아야 하는데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양이 없으면 숫염소를 잡아도 되었습니다. 10일부터 4일간 잘 살펴보았다가 14일 저녁 때 해가 질 무렵에 양을 잡아야 합니다. 해가 질 무렵이라고 하였지만, 본래는 ‘두 저녁 사이’라는 말로, 정오를 해가 지기 시작한다고 보았고, 어두워질 때의 중간으로 유대인들은 3시에 양을 잡았습니다. 양을 잡는데, 그 피를 양푼에 잘 담아야 합니다. 그 피를 양 고기를 먹을 집 대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먹는데 반드시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어야 했습니다. 고기는 날 것으로 먹으면 안 되고, 삶아서 먹어도 안 되고, 반드시 구워 먹는데, 어떤 뼈든지 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9:12에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그 뼈를 보존할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아야 하고,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 남겨놓아도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도 없지만, 다음 날 먹으면 상한 것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구별한 것은 당일로 먹어야 합니다. 기념한다는 것은 당일로 그쳐야 기념이 되지 며칠 양식으로 삼으면 기념이 되지 않습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산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악 세상이요, 장차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상징인 애굽을 떠날 때에는 속히 떠날 준비를 하고 유월절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다 풀어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출발하라는 명령과 함께 뛰쳐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급히 먹어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한 집도 빼놓지 않고 각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의 장자와 모든 짐승의 처음 난 것을 다 쳐서 죽이는데, 애굽의 모든 신들도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온 땅을 칠 때에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가 뿌려져 바른 집은 건너뛰고 넘어가지만, 그 피가 없는 집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이스라엘 히브리 사람의 집이건 애굽의 고관대작의 집이건 누구의 집도 예외가 없이 들어가서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을 두루 다니실 때에 피가 뿌려진 집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넘어가고 건너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피를 뿌린 집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나돌아 다니면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피를 뿌려야 하고, 그 집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다만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것을 믿으면 그는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피가 묻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으려고 하니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전5:7에는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의 어린 양이시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희생되셨기에 우리는 죽음에 처해지지 않고, 우리의 죄는 넘어가고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 죄의 종노릇하였습니다. 종노릇하던 자를 해방시키시려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무교절의 시작인 15일날과 마지막 날인 21일은 성회로 지키면서 일체의 노동이 금지되었습니다. 성회라는 것은 거룩한 회집입니다. 다른 모든 날에서 특별히 구별하신 날입니다. 모든 백성들은 이 날에 노동하지 말고, 생계를 위하여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로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시려는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 

여기 유월절은 가족단위로 지키는 절기요, 어떤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거나 성전에 나아가라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유월절은 자기 가정에서 출애굽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지켜야 했습니다. 유월절은 장자와 초태생의 구원이란 의미가 있다면 이어서 한 주간 지키는 무교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엄밀히 구분하여 아빕월 14일 저녁 하룻밤에 지키는 어린양 식사 의식입니다. 무교절은 아빕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한 주간 동안 지키는 무교병, 누룩이 없는 빵을 먹으면서 고통스럽게 애굽의 노예생활을 상기하면서 지켜야 했습니다. 자녀들은 무교병의 의미와 쓴나물의 의미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노예민족이었습니다.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유월절은 종살이에서 해방을 기념하며, 무교절은 모든 사람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은 곧 유월절 만찬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의 멍에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면서 민족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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