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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들림 없는 확신 (왕상 18: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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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확신 (왕상 18:25-40)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흔히 착각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소위 위대한 인물들은 도저히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마디로 착각입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어쩌면 우리 신앙에 적잖은 손해를 보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그들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우리는 안 된다고 단정하고 지레 포기하고 물러서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다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만 해도 그렇습니다. 엘리야 하면 구약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죠. 예수님도 구약 인물들 중 대표적인 두 사람을 모세와 엘리야로 꼽으셨습니다. 그 정도로 엘리야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엘리야 자신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와 함께해 주신 하나님이 위대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만큼 위대할 뿐입니다.  

그래서 약5:17은 뭐라고 증거합니까?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Elijah was a man just like us)”무슨 말인가요? 엘리야나 우리나 비슷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엘리야도 우리처럼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우리처럼 엘리야도 방황하고 의심하고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엘리야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기도한 결과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낙심도 교만도 금물입니다. 조그만 어려움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능력은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반대로 형통한 가운데 있다고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잘나서 형통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금세 무너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합니 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standing firm)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자만심은 우리 인생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 즉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는 만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게 확신이 있을 때는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확신이 사라질 때면 여지없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확신, 그 중에서도 ‘흔들림 없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이 연속적인 승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러한 확신 가운데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본문과 그 다음 19장 까지 이어지는 내용들을 보면서 엘리야의 신앙에 관해 살펴봅니다. 우리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엘리야의 확신 : 갈멜산 상의 승리

엘리야는 B.C. 9세기에 활동하던 북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입니다. 그 당시 왕은 아합이었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입니다. 또 그의 아내 이세벨은 아주 표독스런 여자였습니다. 본래 이방 베니게 공주 출신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아합과 정략결혼을 한 겁니다. 그가 시집 올 때 우상을 끼고 왔습니다. 바알 신과 아세라 신 선지자들도 다수 데리고 왔습니다. 왕궁부터 우상 숭배로 물들이고 백성들까지 점차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3년 반 동안 비를 내려 주시지 않습니다. 엘리야도 분개한 나머지 바알 선지자들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그래서 엘리야와 450명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 대결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엘리야가 통쾌하게 승리합니다. 

그 때 엘리야가 얼마나 당당했는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당당함은 인간적인 자신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확신이었습니다. 22절.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450명이 덤벼도 괜찮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 선지자들더러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불을 붙이지 말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얹어놓은 후 기도하라고 제안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쪽이 참 신이라는 겁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바알 신에게 기도하고 광란을 합니다. 그래도 저녁이 다 되도록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엘리야 차례입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되 이스라엘 지파 수 대로 12개 여기서 엘리야가 돌로 제단을 쌓습니다. 신앙 회복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제단을 돌아가며 도랑을 만듭니다. 그 위에는 나무를 벌여놓고 번제물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세 번이나 흥건하도록 붓습니다. 35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왜 이랬을까요? 종종 이방 제사장들이 밑에다 불을 숨겨놓고 트릭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의심을 배제하기 위해 물을 부은 겁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옵소서!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7절~38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얼마나 강렬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번제물은 물론이고 돌, 나무, 흙까지 몽땅 다 태우고 마치 핥아내듯이 흥건한 물을 증발시켰습니다. 

이렇게 되자 참관하던 백성들이 놀라서 고백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잡으라고 명령한 후 기손 시내로 끌어다 다 죽입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엘리야가 확신 가운데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니었죠. 아합 왕을 이끌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니까 비가 억수로 쏟아집니다.(왕상18:41~46) 이로 말미암아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계속되었던 가뭄이 일소됩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그가 기도하고 사환에게 비가 오나 보라고 합니다. 그러기를 일곱 번 되풀이 한 후 작은 조각구름이 피워 오릅니다. 그러더니 큰 비가 내립니다. 

왕상18:41,45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 ”

엘리야가 얼마나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칩니까? 확신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만일 비가 온다고 큰 소리쳤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역전됩니다. 엘리야가 역적으로 몰릴 게 뻔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큰 소리를 친 것은 그만큼 굳센 확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이 확신 가운데 기도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큰 비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2] 흔들리는 확신 : 이세벨의 위협에 굴복한 엘리야  

18장만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다음 19장을 보면 전혀 뜻밖의 장면이 나옵니다. 슬럼프에 빠진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침체에 빠진 어처구니없는 모습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 모습은 위대한 선지자의 모습의 아니리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한 일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그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게 엘리야의 본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위대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도 그 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바알 선지자들이 참패한 소식을 듣고 이를 부득부득 갑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엘리야를 협박합니다. “내일 이맘때까지 내가 너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최후의 통첩을 한 셈입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왕상19:3~4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 ”

그는 혼비백산하여 도망합니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도망갑니다. 이스르엘은 북 이스라엘의 성읍이고, 브엘세바는 남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도망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멀리멀리 도망간 겁니다. 그 거리가 약 140 킬로미터나 됩니다. 사환과 헤어진 후에 더 멀리 도망갑니다. 하룻길은 대개 32킬로미터쯤 되는 거리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는 그렇게 멀리 도망간 후 한 로뎀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투정을 부립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엘리야의 모습과 딴판이죠.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엘리야의 본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기적들을 행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닙니다. 단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곧게 믿은 그의 확신 가운데 이뤄졌던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엘리야 자신이 위대한 게 아닙니다.
 
이런 썰렁 개그가 있습니다. 기적을 많이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기차 기관사!  증기 기관차가 출발할 때 기적을 울리잖아요. 무슨 말인가요? 기적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확신하는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참 감사한 게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형편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우리 같으며 욕하고 야단치고 난리가 났을 텐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그를 위로하고 먹이십니다. 너무나 감사하죠. 엘리야의 못난 모습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왕상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연약한 인간이기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시간이 오래 가서는 안 됩니다. 다시금 확신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연륜이 더할수록 흔들림이 점점 줄어들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100%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날이면 날마다 조그만 어려움만 생겨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방황을 거듭한다면 문제죠.  

[3] 흔들림 없는 확신 : 하나님에게 시선 집중(Focus on God)

그러면 이제 엘리야가 어떻게 믿음이 흔들리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rusrygs 확신 가운데 설 수 있었는지 살펴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오직 하나님에게 영적인 시선을 집중함으로 확신을 회복합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천사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한 시작한 엘리야가 이제 호렙 산으로 갑니다. 그곳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 거룩한 성산(聖山)입니다. 그가 도망가 있던 곳의 부근 브엘세바에서 호렙 산까지는 대충 400 킬로미터입니다. 상당한 거리죠. 40일간 걸렸다고 하니까, 비교적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먼 거리를 갔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회복됐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산에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그 장면이 왕상19:11~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강한 바람, 지진, 불 등은 하나님이 임재하심에 대한 가시적인 증표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세미한 음성!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혼의 회복을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용기가 생기고 새 힘이 넘칩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있죠. “신앙생활은 시선 싸움이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 상태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확신 가운데 거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신앙이 흔들립니다. 형통하면 교만해서 넘어지고, 고난 앞에서는 낙심하고 무너집니다. 엘리야가 흔들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선을 빼앗겨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당당하고 확신 가운데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현실에 시선을 빼앗기니까 마음에 두려움과 의심이 밀려오고 결국 확신이 흔들린 겁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승리. 세상을 바라보면 실패! 이런 원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다 바다 속에 빠진 사건입니다.(마14:22~33) 

한번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잠시 헤어져 자기들끼리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의 일입니다. 한밤중이었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건너오십니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소리치며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유령은 무슨 ... 나다, 나야!”말씀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로 걷고 싶다고 하죠. 예수님이 와 보라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순종하니까 정말 물 위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베드로가 바다 물결을 보고 놀라는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고 말씀하시죠?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인 시선을 하나님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과 관계없이 그래야 합니다. 이게 승리의 비결입니다.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또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직 예수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라는 겁니다. 그러며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면 나만 손해입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인 스데반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 공회에 붙들려갑니다. 서술이 시퍼런 공회의원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구세주 되심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돌로 쳐서 죽입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스데반의 모습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처럼 원수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하며 자기 영혼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어떻게 작은 흔들림도 없이 확신 가운데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이 행7:5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 그를 맞이하려고 벌떡 일어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얼마 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오스트리아 고공줄타기 전문가 ‘라인하르트 클라인들’(32)이 프랑크푸르트 고층 건물들 사이 185m 높이에서 줄타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세계 신기록입니다. 그 사진만 봐도 아슬아슬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부단한 훈련을 했을 겁니다. 

어떤 훈련이 제일 중요할까요? 시선 훈련입니다. 절대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안 됩니다. 앞만 주시합니다. 그리고 양 팔로 균형을 잡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허리에 생명줄이 매어져 있습니다. 설사 흔들린다 할지라도 생명줄이 지켜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나를 택하시고 예수 보혈로 구속하신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를 가리켜 ‘성도의 견인’교리라고 하죠.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 살면서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재미교포 이승복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책 제목이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인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기적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입니다.  

그는 존스 홉킨즈(Johns Hopkins) 병원의 재활의학 전문의인데, 특별히 휠체어를 타고 진료하는 장애인 의사입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그는 8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커가면서 꿈이 생겼습니다. 체조에 매료되어 장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습을 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루아침에 사지마비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그는 병실에 갇혀 절망 가운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소망이 생겼습니다. 체조의 금메달은 놓쳤지만 인생의 금메달에 도전합니다. 자기처럼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리라 결심합니다. 

그래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 공부는 보통 사람에게도 어려운 과정 아닙니까!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의대를 졸업합니다.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마치고, 그 후에 계속 정진해서 결국 존스 홉킨즈 대학 병원에서 당당히 전문의가 됩니다. 그

의 놀라운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그를 SB라고 불렀습니다. 이니셜이기도 하지만 ‘Super Boy’라는 말입니다. 슈퍼맨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능력이 생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고, 불가능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다 연약합니다. 갈대처럼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마냥 흔들리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그 흔들림을 극복하고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격려하며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남은 자 7천이 있다는 겁니다. 극한 고난 가운데 있지만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겁니다. 나만 혼자 어려운 것처럼 지나친 자기연민이 빠지면 곤란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극복해 나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어떤 상황 가운데 처한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항상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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