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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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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슥 4:6-10)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세 개의 성전이 있습니다. 첫 째가 솔로몬 성전이고 두 번째가 스룹바벨 성전이고 세 번째가 헤롯 대왕이 세운 헤롯 대왕 성전입니다. 첫 번째 솔로몬 성전은 다윗 왕이 준비했고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 건축 되어서 봉헌된 성전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바로 솔로몬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서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그 솔로몬 성전이 허물어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생활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악 때문에 70년 동안 고난을 당했습니다. 돌아가면 이제 성전을 세워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하고 말씀을 읽고 순종하겠습니다.’ 그들은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70년 동안 그들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들의 성전 건축하는 일은 민족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인 스룹바벨과 대 제사장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성전 건축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방해하는 무리들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때로는 스룹바벨도 낙심에 빠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구약의 예언서인 에스라서와 학개서 스가랴서를 통해서 바로 스룹바벨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오늘 자막에 학개서 2장 4절의 말씀을 한 번 보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여러분 알다시피 학개서는 성전 건축을 격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서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바꿔 말하면 “강하고 담대할지어다. 흔들리지 말아라.” 그런 얘기입니다. 그의 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야 너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저들을 돕는 백성들아 너희도 일어나 일할지어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니까 흔들리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이 일에 매진하라고 하나님은 격려하고 또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스가랴 4장도 그런 내용입니다. 이 스가랴서의 8개의 환상이 소개되는데 오늘 이 4장에 나오는 이 환상은 전반부에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이 순금 등대는 바로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두 감람나무는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는 이 환상을 보고 확신을 얻고 그리고 성전 건축에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그 일에 매진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성전 건축에 매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이 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이 전은 헤롯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육체 된 성전을 가리키는 거예요.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가리켜서 성령이 임재하는 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민족에게 성전건축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사역의 자리에서 직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위로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일하는 삶의 원리 사역의 원리가 여기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원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째로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따라 해보세요.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하다.”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경영 방식이 있습니다. 회사의 경영 방식이 교회의 경영 방식이 될 수 없습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장사하는 방식의 경영원리가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이는 힘으로나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세상의 힘, 세상의 권력이나 재력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끌려 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 우리 성경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아멘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 질 수 있을까? 회복 될 수 있을까? 때로는 우리가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권력이나 재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이 모든 일은 가능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성령께서 이끌어 가실 때 거기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 인도자 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의지할 때 내 삶의 새로움, 교회의 변혁과 변화는 가능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경험이나 내 의지나 내 전통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말씀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나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요. 

독일의 한 유명한 대 성당에서 누군가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이 성당 창문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를 듣고 거기에 끌려서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성당의 전속 노인 오르간 연주자가 그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한 참 듣습니다. 그 노인이 잠시 쉴 때 이 나그네가 이 노인 연주자에게 청원을 합니다. ‘제가 이 오르간을 한 번 연주해보면 안될까요?’ 

그 연주자가 깜짝 놀랍니다. ‘아닙니다. 이 오르간은 아무나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비싸고 아주 귀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 내 줄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 나그네가 한결같이 ‘내가 한 번 만 연주 해보면 좋겠는데 좀 허락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하도 조르니까 이 연주자가 시큰둥한 반응으로 원치 않지만 할 수 없이 자리를 내 줍니다. 그런데 이 지나가는 나그네가 이 좌석에 앉는 순간 그의 손이 오르간 건반에 올려 진 순간에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이 대성당에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일생을 연주해온 이 노인 연주자의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여기서 나올 수 있다니. 그는 귀를 쫑긋 세워서 그 음악 소리를 듣습니다. 연주가 마쳤을 때 그는 이 나그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말합니다. ‘제가 바로 멘델스존입니다.’ 그는 그 당시 유럽의 가장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인은 정식으로 사과를 합니다. ‘내가 당신을 몰라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무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성령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성령님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내 안의 성령님이 계신지 관심조차 없어요. 그래서 예배드리고 헌금 내고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면 그것을 끝이예요. 여러분 우리는 성령의 내안에 계심을 인정하지 않은 깨닫지 못한 이 잘못을 회개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환영하고 내 안에 모셔 들일 때 그분은 내 앞길을 인도해 가실 것이고 내 삶의 인도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날 교회는 성령님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분은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고 증언합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분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서야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이 부으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으셨기에 그가 나가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자들을 고치시고 그리고 그 모든 사역을 감당하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그 중요한 직분, 교사의 직분, 구역장의 직분, 성가대의 직분, 안내위원의 직분, 많은 중요한 직분들을 감당하면서도 성령의 도움을 한 번 구하지 않고 그 일을 감당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기대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이 시간부터 내 경험 내 의지 내 지혜를 내려놓고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역의 원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에도 반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하다가 시험 들고 뒷전으로 물러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교회 와서 봉사 안 하려고 해요. 그저 예배만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국수 먹고 가면 편하데요. 남에게 무슨 두 말 들을 것도 없고 뒤에서 누가 흉 볼 것도 없고. 종종 보면 목회해 오면서 교회학교 교사가 시험에 들었어요. 동료 교사가 자기 허물을 뜯어요. 계속 뒤에서 수군 거려요. 때로는 자기 부서에 속한 부장님이 계속 방해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어떤 구역장은 구역을 이끌어가다가 부구역장님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다. 부구역장이 협조를 안해요. 의도적으로 방해합니다. 구역원이 노골적으로 구역장을 흉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교회를 세우고 영혼들을 양육시키는 이 아름다운 사역은 하나님의 선한 일인데 여기에 반대와 방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영혼들이 구원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영혼들이 자라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구역을 깨뜨리기 원합니다. 교회학교가 점점 쇠퇴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자꾸 분열시킵니다. 공격하게 만듭니다. 약점을 파고들고 허물을 찾게 만듭니다. 그리고 서로 이간질 시키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방법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거기에도 반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서 물이 흐릅니다. 이 죽은 고기는 아무 저항 없이 물에 떠내려 갑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고기는 위로 올라갑니다. 거센 저항을 받습니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 저항을 받습니다. 공의롭게 살려고 하면 불의한 사회에서 반대에 부딪칩니다. 거짓된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려면 손해 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에게도 아니 교회 내에 사역에도 교회 밖에 여러분의 삶에서도 반대와 방해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런데 여기에도 철저하고 집요한 조직적인 방해가 자행되고 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4장 1절에 보니까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에스라 4장 4절과 5절에 보니까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의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에스라 4장 11절에 보니까 일부의 사람들은 아닥사스다 왕, 바벨론의 왕에게 고발을 해서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게 되면 당신을 반역하게 될 것이고 이들이 조공도 안 낼 것이고 통행세와 관세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이것은 왕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이것을 금하라고 조서를 내리라고 고발을 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그 조서를 받습니다. 이 세금에 왕은 누구나 예민하거든요. 집권자들은 세금을 더 끌어 들이려 하고 백성들은 조세에 대해 저항하지 않습니까? 요즘도 세금 복지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 건축을 금지하도록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문서를 찾습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의 선왕인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킬 때 그들에게 조서를 내렸어요. 유대 민족은 자기 땅에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내가 허락하노라. 그 문서를 찾아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다시 정정했더니 아닥사스다 왕이 그것을 보고 유대인의 성전 건축을 허락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큰 힘을 얻고 아름다운 성전의 건축을 끝까지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선한 일에도 반대가 있다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 성경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아멘 

여러분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죠.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이 하나님이 오늘 스룹바벨을 격려하시며 주시는 말씀이예요. 큰 산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큰 산이라는 것은 그들 앞을 막는 방해물, 장애물, 난관, 고난 이것을 큰 산이라고 했어요.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것이 앞에 놓여 있어요. 고의적인 방해가 있습니다. 파사 제국일 수도 있고 동족 유대인일수도 있고 사마리아인일 수도 있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너희 모든 방해 공작이 무의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큰 산은 바로 난관과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자 우리 마가복음 11장 23절의 말씀을 자막에서 읽어 볼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이러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아멘 

예수님의 말씀이예요.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 여러분 이 산은 무슨 산을 말합니까? 남산입니까? 북한산입니까? 그런 산이 아니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산도 너희 앞에 놓인 장애물입니다. 너희 앞을 가로막는 모든 환경적인 반대, 이것을 향해서 너희가 명령하면 이 산이 바다에 던져질 것이다. 너의 앞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예요. 

특별히 유대인들은 1년에 몇 차례 절기 때마다 성지 순례를 갑니다. 성전에 올라가다보면 큰 산을 만납니다. 여러분 그 산을 넘어가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서 시편 121편 순례자의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있지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앞에 놓여 있는 난관을 헤쳐 가려면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것을 도울 분이 누구냐? 그것은 여호와 한 분 밖에는 없다. 

여러분 그것은 바로 동시에 선포 기도입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세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네가 무엇이냐? 이것을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을 쓴 전옥표 장로님은 ‘네가 뭔데?!’ 그런 표현을 씁니다. ‘큰 산아 네가 뭔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네가 뭔데?!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것입니다.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질병도 있고 가난도 있고 저주도 있고 실패도 있고 위기도 있습니다. 방해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큰 산이예요. 큰 산을 향해 여러분은 이제 선포할 수 있는 거예요. 

7절 말씀 자막에 한 번 띄워 주시고 우리 교회가 5110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큰 방해물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한 번 스룹바벨 대신 영신교회 앞에서라고 해서 선포했으면 좋겠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교회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멘!! 

이번에 스룹바벨 이름 대신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봅니다. 저 같으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이영무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멘!! 

여러분의 이름을 넣고 한 번 선포합니다. 시작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000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아멘!! 

이것이 능력 있는 기도예요. 

여러분!! 여호수아도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저 태양을 향해서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를지어다!!’ 하고 선포했더니 그 태양이 저녁이 되기까지 그 중천에 떠 있어서 그 전쟁을 승리로 끝낼 수 있었잖아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 주신 아름다운 선포 기도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 앞에서 여러분 선포하세요. 이 기도는 상당한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염려가 있습니까? 그 두려움을 향해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000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한 번 외쳐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 있는 질병과 장애와 가난을 향해서 한 번 선포해보세요. 놀라운 능력의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7절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이 놀라운 장애물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많은 장애물에 부딪쳤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우심으로 이제 은혜가 그의 위에 있을 것이다. 

여러분! 이런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고 나면 무엇을 고백합니까? ‘내가 얼마나 훌륭하게 살았다! 내가 얼마나 성공했다!’이것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었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그거예요. 성전 건축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예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하나님의 일에 사역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성경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오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아마 스룹바벨의 마음속에도 내가 도대체 이 일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같이 연약한 사람이 어떻게 이 성전 건축의 위대한 사역을 마칠 수 있을까 아마 두려움이 있었을거예요. 하나님은 오늘 스가랴를 통해 스룹바벨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성전의 기초를 너의 손이 놓았은즉 너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스룹바벨을 통해서 이 위대한 성전 건축이 마무리 될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따라해보세요. ‘끝내주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시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끝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스룹바벨을 불러서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도 여호와요. 이 일을 마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옆에 분들에게 한 번 인사합시다. “하나님은 끝내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무리를 직접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룹바벨을 격려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진행할 때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이 있어요.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왜? 하나님 여호와의 일에는 일곱 눈이 너희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1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아멘 

이 작은 일의 날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것이 무엇이냐? 솔로몬의 성전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본 사람들!! 이제 스룹바벨의 성전의 기초를 보니까 너무 보잘 것이 없어요. 그것을 보고는 멸시하고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아 저래가지고 성전을 언제 건축하겠어!! 미친놈들!!’ 하면서 비웃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 흔들리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다림줄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건축을 하고 나면 이 기둥이 올바른지 재보는 측량줄이 바로 다림줄 아닙니까? 무거운 추가 줄에 매달려서 수직으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다는 것은 스룹바벨이 건축을 완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호와의 눈이 함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선한 사역을 위해서 힘쓰고 계실 때 절대로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도 여호와요. 이 일을 완성하실 분도 여호와이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5110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선교사를 보내고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교회를 개척하겠어요?! 여러분 그러나!! 그 일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채워 주실 것이고 하나님은 그 일을 책임지실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사역에 좌우명이 있습니다. 그는 어디 가서 돈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지원이 결코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친히 공급하실 것이다. 이 허드슨 테일러가 세운 선교회가 OMF 선교회인데 OMF 선교사님들은 전통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교할 때 돈이 필요하면 교회에 가서 구걸하지 않습니다. ‘우리 돈 좀 주세요. 우리 좀 도와주세요.’ 안합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이다. 이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채울 것이다. 그들은 그런 믿음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열악합니다. 우리는 물질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원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이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실 수 있습니다. 교회에 물론 똑똑한 분이 많고 학벌 좋은 분이 많고 재산 많은 분이 많으면 좋겠죠. 그러나 그렇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그 일을 이루어 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한달 전에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장례식에 참여했던 한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집사님이 봉투 하나를 내 놓아요. 뭔가 했더니 천 만 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왜 가져오셨냐고 했더니. 본인이 얼마 전에 난치병 진단을 받으셨어요. 그것은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예요. 평생 그 병과 투병해야 하는 병이예요. 그런데 그 난치병 진단을 받고 자기가 들었던 보험이 있었는데 그 보험료 천만 원을 받았다는 거예요. 일생동안 그 치료비가 필요할거예요. 

그런데 그는 이 돈을 자기가 도저히 쓸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는 울면서 그 천만 원을 내어 놓았어요. 하나님의 일에 가장 요긴하게 써주세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이 돈을 써 주세요.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간절히 축복 기도해 드리고 그 천만 원을 선교 헌금에 드렸습니다. 왜? 영혼 구원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요. 

정말 이렇게 자신을 드리고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 있는 한은 우리 5110의 비전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라면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휴가 가기 전에 교회 앞에 아파트 모델 하우스 짓는 것을 보고 철근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갔는데 갔다 오니까 벌써 철근이 다 올라갔어요. 세상에 일주일 만에 집에 뼈대를 벌써 다 갖추었다니 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을 수 있겠구나!! 문제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 입니다. 신실함입니다. 헌신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처럼 성령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루어 나갈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섭리에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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