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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분상승의 기회 (룻 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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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상승의 기회 (룻 1:16-18)

요즘 TV에서 ‘구암 허준’이라는 사극 드라마가 나오고 있습니다. 
옛날에 한 번했던 드라마입니다. “구암”이라는 號(호)는 저의 아버님 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대로 종종 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번 보니 허준이 庶出(서출)로 태어나 평생 양반이 될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왕궁에 들어가 일하는데 선조왕의 아들 왕자 신성군을 치료하여 살려냅니다. 

그 공로로 왕이 허준을 御醫(어의)로 삶고 양반이 되는 당상관 벼슬을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허준의 신분이 상민에서 양반이 됩니다. 왕이 그의 신분을 상승시켜 준 것입니다. 

옛날 조선에서 신분상승은 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양반상놈 제도가 없어졌기에 누구나 다 동등하지아노습니까? 그러나 그때 그 시대에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는 일이 신분이 바뀌는 일입니다. 오직 왕만이 신분을 바꾸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준이 양반이 되자 그 부인도, 자식도, 부모님도 다 양반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분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도 신분 상승하는 기회가 있나요? 
우리의 신분도 우리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이 바꾸여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주신본문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 신분을 바꾸어 주는 놀라운 기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신분상승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할 때 우리 신분 상승의 기회가 오게 되나요? 

1. 예수님을 영접할 때 신분상승이 이루어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자식들을 그렇게 공부시키려 고생하고 계시나요? 
여러분 자녀들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으며, 인정받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요? 
또 왜 전셋집에서 좋은 집으로 평수를 넓혀서 살려고 애를 쓰나요? 

먹을 것 안 먹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끼고 살아가는데 왜 그러시나요? 그것도 지금보다 나은 미래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 하는 것 아닌가요? 이것도 신분 상승을 위해서입니다. 어느 동네에 갔더니 아이들이 놀때 아파트 평수를 물어본데요. 그래서 평수끼리 논답니다. 

왜 직장에서도 승진하려고 죽도록 일하나요? 열심히 일해서 진급하여 남들에게 대접받으며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앉아보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이 모든 과정이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분상승의 노력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한계 속에 태어납니다. 노력하고 힘써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부모님 만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부모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태어나는 나라도 그래요. 여러분이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요? 아닙니다. 또 하나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은 팔자라고 하고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인 만이 인간의 힘으로 넘기 어려운 한계를 넘어서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신분을 확실하게 높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하면 된다는데 끅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또 남을 짓누르고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요. 그냥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됩니다. 초청하시는 분의 초대에 응답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쉬워 보이고 어려운 것이 없이 거져 얻는 것 같아 무시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엄청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집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지 감을 잡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 상승이 이루어집니다. 

요1:12절을 다 아시지요?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곧 그분을 믿는 것이 신분 상승의 기회란 말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종이었고 공중권세를 잡은 악한 영인 사탄의 종이었습니다.(엡2:2) 그래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던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생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신분 상승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세상에서 그 어떤 신분 상승보다 확실하고 빨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신분 상승시키시는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권세를 힘입어 왕 같은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왕이십니다. 나는 그분의 왕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람 있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분 상승의 체험을 하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 룻을 보세요. 그는 신분이 모압 여인입니다. 우상을 섬기던 민족의 여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올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나오미 집안의 며느리가 됩니다. 그리고는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를 믿기로 작정합니다.   

오늘 본문 16절 하반부를 보세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것은 그녀의 신앙고백입니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 고백 앞에 나오미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데리고 갑니다.   

신약성경 빌레몬서를 보세요.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기록한 성경입니다.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나옵니다.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을 쳤던 사람입니다. 노예가 그냥 도망해도 십자가형인데 돈도 훔쳤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에서 또 범죄하고는 감옥에 갇힙니다. 아직 노예 신분이 탄로 안 났지만 곧 밝혀집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하나님의 종 바울을 만납니다. 

그래서 그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는 생명의 말씀을 열심히 배웁니다. 그래서 그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석방되면서 사도바울의 추천서를 받고 다시 주인인 빌레몬에게 갑니다. 빌레몬이 보니 오네시모는 사형을 당해야 할 신세였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 그의 삶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찾아가 용서를 받고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자유인이 됩니다. 할렐루야!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교회사를 보면 그는 성직자가 되고 에베소 감독으로 대주교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아주 우습게 보일지 모르나 이것은 일생에 최고의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이미 신분의 변화가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 신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말하면 더 이상 상놈이 아니라 양반이 되었는데도 혹시 아직도 상놈으로 살고 계시지는 않나요? 


2. 신앙적 결단과 도전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만듭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뭐가 달라질까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믿고 보니 나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백성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이 달라집니다.  

우리나라를 보세요. 

기독교 신앙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는 양반 상놈 타령으로 수천 년을 보냈습니다. 상놈은 아무리 해도 상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양반은 죽어도 양반이라고 일도 안 합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다 못살게 마련입니다. 비참한 땅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더욱 불쌍했습니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습니다. 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밥도 남자들이 먹고 남은 것을 먹었습니다.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결혼도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가야 했습니다. 

지금도 저 이슬람교나 힌두교 문화권에서 여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죽도록 일에 매여 살아야 하고 남자들에게 매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이 한국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여기 있는 여성 성도 여러분!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사를 보면 교회에서 머슴이 장로가 된 기록이 있습니다. 주인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머슴은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장로님이고 종이었던 분은 목사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상민들 중에 목사가 되고 유학을 하고 독립운동가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수천 년의 우상과 미신에 찌들었던 민족이 세계에 뛰어난 나라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들어온 지 단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세요. 

모압으로 이주했던 나오미 가족은 이제 과부 셋만이 남았습니다. 살려고 갔었는데 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었습니다. 당시에 과부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서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려 하는데 젊은 며느리들이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라고 설득을 합니다. 그 설득에 반응이 다릅니다.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따릅니다. 

떠난 이는 오르바인데 그는 못이기는 척하고 떠납니다. 따라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입니다. 늙은 시어머니 평생 수발해야 하고 모압의 친척을 떠난다는 것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정반대의 결단을 합니다. 16절에 어머니 백성이 내 백성이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된다는 고백도 대단한 고백이지만 17절의 각오와 결단을 보세요. 

17절을 다 같이 보세요.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입니다. 죽는 일 외에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고 신앙적 결단에 의한 선택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룻의 이런 결단은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벌을 내리기를 원한다고 선포합니다.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선언합니다. 제게도 이런 며느리가 들어오길 바랍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왜 아파트 이름들이 그렇게 영어로 길고 어렵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가 시어머니들이 찾아오기 어렵데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고부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달랐습니다.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나 그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그를 새로운 사람이 되게 만듭니다. 그는 베들레헴으로 갔고 얼마 후 그 시어머님의 도움과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상입니다. 하나님과 시어머님을 위한 신앙적 결단을 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그 후손에서 왕이 태어나게 하고 결국 왕가의 조상이 되게 만듭니다. 할렐루야!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어디라고 정해주지도 않고는 떠나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믿음의 결단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섬기면서 어떤 결단을 해보셨나요? 

주님을 위해 신앙적인 모험을 한번 하도록 해보셨나요? 그 도전과 결단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는 삶입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저는 저의 자녀들이 대학을 다닐 때 반드시 1년은 휴학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다 보니 그렇게 하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나가서 선교사님들을 1년 동안 돕게 했습니다. 국가에 부름 받아 군복무도 21개월 하는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1년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중국에서 선교사가 운영하는 국제학교에 1년 동안 교사로 섬겼고, 딸은 필리핀에 가서 바울선교회 선교훈련원에 간사로 1년을 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이 자녀들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주시고 주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한 믿음의 결단을 하면 주님은 우리를 높여 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에 철저한 순종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만듭니다. 

믿음의 사람의 생명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의 양식입니다. 그 말씀은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씀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형편을 앞세우면 순종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주인인 것을 믿으면 내 생각을 접고 내 형편을 접고 순정하게 됩니다. 내가 내 주인이라 생각하니 순종이 어려운 것입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던 룻을 보세요. 
그는 모든 행동과 삶을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데 가서 이삭을 줍는 일을 합니다. 어머님을 봉양해야 하기에 남의 밭에 가서 미이나 보리 이삭을 줍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낮은 자로서의 삶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성경의 계명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낮추어 부모를 공경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일로 인해 소문이 납니다. “거 나오미 며느리 말이야! 시어머니를 잘 공경한다며~ 그 여자 모압 여자인데 아주 잘한데...” 

이러면서 룻은 현숙한 여인으로 소문이 납니다. 그 소문이 보아스에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로 이삭을 줍던 땅 주인인 보아스가 결국 남편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결국 룻은 그 지역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 보아스와 결혼하고 결국 그는 다윗왕의 증조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니 이방여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도 엄청난 복인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왕가의 가문에 이름이 들어가고 영원한 성경 말씀에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받습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1:5~6절을 보세요.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분명 이방인이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기적입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영광중에 영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구약성경에는 룻기라는 성경이 만들어집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영광입니까?   

그 비법이 무엇일까요? 철저하게 성경 말씀을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성경말씀 어디인가요? 십계명 중에 제 5계명입니다. 출20:12절을 보세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녀의 신앙은 오늘 보문 17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는 것은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룻은 베들레헴에 와서도 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말씀을 철저히 따릅니다. 그는 아무 남자하고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지도를 받으며 어머님께 비밀이 없이 말하고 가르쳐주는 대로 행동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시어머님을 어머니처럼 따르고 며느리를 딸이라 부르는 이 고부간계, 어느 한쪽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특히 나오미 입장에서 보면 자기 아들의 아내였던 며느리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욱이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잠들었을 때 그의 발치에 가서 누우라고 누가 코치합니까? 시어머님의 가르침입니다. 어찌 보면 창피한 일이지만 순종합니다. 왜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순종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받을 수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의 신분을 상승시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해도 이런 신분은 누리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도 신앙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시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택의 기회를 주실 때 과감하게 믿음으로 결단하셔야 합니다. 평범하게 믿어서는 우리 신분이 존귀한 신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순간순간 기회를 주실 때 미루거나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안 되면 어쩌나?” “망신당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지 마세요. 안될 것, 망할 것 실패할 것 생각하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선택의 기회에서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룻의 길을 갈 것입니까? 아니면 오르바의 길을 갈 것입니까? 
순간의 선택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신분 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꽉 붙잡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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